참으로 감사하다
회사의 신축 물류창고 2층에
식당과 샤워실 그리고 휴게실까지 갖춰진
기숙사가 완공되어 나도 입실할 수 있었다
1인 1실의 아주 쾌적한 공간이다
원래 외국인들을 위한 기숙사지만 방이 남아
사장의 허락을 받아 입실하게 된 것이다
우리 회사에 납품하는 도금 업체의 환갑이 넘은 기사는
'나이 들어 기숙사 생활하는 것같이 초라한 것은 없어요.
기름값 들더라도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드시며 출퇴근하는 것이 좋지 않아요?'라고 말을 건넸었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이 물리적인 공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신문도 TV도 아무런 간섭도 없는, 이 자유롭고 고독한 공간이
나에게는 더없는 독서와 성찰 그리고 詩作을 위하여 재창조된 공간임을 그가 알 턱이 없다
이 공간이야말로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어디라도 흙만 있으면 찬란하게 생명을 틔우는 풀처럼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우며 생동하는 내 삶의 여백인 것이다
벌써 10일이 넘었다
외국인들은 밥과 찬을 조리하여 해결하지만
나에게는 세탁은 물론 조석으로 식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여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는 공장 근처의 식당에서 배달시키는 방법으로 매식을 했는데
갈수록 하얀 쌀밥과 매번 비슷한 서너 가지 반찬이 입에 물려 넘어가지 않는다
당연히 내가 감수해야 할 식사의 불편함이지만
조금이나마 그 불편을 해소하는 방법을 지금 찾는 중이다
결혼 후
직장에서 퇴근하면 아내는 으레
따뜻한 잡곡밥과 맛있게 조리한 소찬을 상에 올려놓았었다
지금 돌아보니 가부장적인 사고에 젖어
염치없이 아내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끼의 식사 때문에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줄 몰랐으니 말이다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들어오는 남편이
제일 이쁘다는 여자들의 말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어디 그뿐이랴
날마다 갖가지 옷들을 세탁하여
가지런하게 개어 입을 수 있게 옷장에 정리해 놓지 않았던가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아내의 수고가 많았음을 깨달았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땀에 전 옷가지를 세탁할 때나
맛없는 식사를 겨우겨우 목구멍으로 넘길 때
그리고 달빛이 천보산 그림자를 지우며 작은 창문에 고즈넉이 내려앉을 때
나는 또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금 아내에게 '참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고 있을 것이다
이상원이레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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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매일 점심에 회사 식당 밥을 먹는데 뷔페식으로 여러 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이제 질려서 입에 대기도 싫어.
컵라면도 먹어보고 굶어 보기도 하고 나가서 홈플러스 지하 식당에서 사 먹어도 보고 했는데 궁극적인 해결책은 보이지 않아
집사람이 해 주는 것은 반찬이 없어도 뭐든 맛잇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