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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5 편
갈릴리 북부를 거쳐서 달아나다
. 중도자 위원회
. 29년 5월 22일 ~ 6월 9일
. 장소 : 갈릴리 북부
155:0.1 사건이 많았던 이 일요일에 게레사 근처에 도착한 직후, 예수와 스물네 사람은 북쪽으로 조금 가서, 벳세다 줄리아스 남쪽에 있는 어느 아름다운 공원에서 밤을 보냈다. 그들은 며칠 전에 들른 이 캠핑장에 익숙했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는 추종자들을 주위에 부르고 바타니아와 갈릴리 북부를 거쳐서 페니키아 해안에 이르는 그들이 예정한 여정 계획에 대해 함께 의논했다.
1. 왜 이교도가 격분하는가?
155:1.1 예수가 말했다: “너희는 시편의 저자가 이 시대에 대하여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하라, ‘왜 이교도가 격분하고 민족들이 헛되이 음모를 꾸미는가? 자비의 사슬을 잘라 버리고 사랑의 끈을 던져 버리자 말하면서, 땅의 임금들이 주(Lord)에 대항하여, 그리고 그가 기름 부은 자에 대항하여, 관원들이 함께 의논하고 있도다.’
155:1.2 “오늘날 너희는 이 말씀이 너희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러나 시편 저자의 나머지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못볼 것이니, 그가 사람의 아들(Son of Man)에 대하여, 그리고 땅에서 이룰 그의 사명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였다. 내 나라는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자비롭게 선포되며 사심 없는 봉사로 세워진다. 내 아버지는 이교도를 비웃으면서 하늘에 앉아 있지 않으며, 크게 불쾌하여 진노하지도 않는다. 아들이 이른바 이 이교도(실제는 무지하고 가르침 받지 못한 형제)를 유산으로 받으리라는 약속은 사실이며, 나는 자비와 사랑의 팔을 펼쳐 이 이방인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승리한 아들이 ‘저희를 쇠막대기로 부수고 도공의 그릇처럼 산산조각 내리라’고 암시하는 기록의 유감스러운 선언을 했어도, 이 모든 친절이 이른바 이교도에게 베풀어질 것이다. 시편의 저자는 ‘두려움으로 주(Lord)를 섬기라’고 너희에게 훈계하였다―나는 너희가 믿음으로 신성한 아들이 되는 높은 특권을 받으라고 말한다. 그 저자는 너희가 떨면서 기뻐하라고 명령하나, 나는 너희가 확신하며 기뻐하라 명한다. 그는 말하되 ‘아들(Son)이 성내지 않도록 그에게 입맞추라, 그의 진노가 불이 붙으면 너희가 멸망할 수 있다.’ 그러나 너희는 나와 함께 살아 왔은즉 진노와 격노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늘나라를 세우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음을 잘 안다. 그러나 이 훈계를 마치면서, ‘이 아들(Son)을 신뢰하는 자는 복이 있다’ 말했을 때, 그 시편 저자는 참된 빛을 어렴풋이 보았다.”
155:1.3 예수는 스물네 사람에게 계속 가르치며 말했다: “이교도가 우리에게 격분할 때 그들에게 이유가 있다. 그들의 시야가 작고 좁기 때문에, 그들의 에너지를 열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그들의 목표는 가깝고 다소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웅적이고 효과적인 실행을 하려고 투쟁한다. 하늘나라로 들어간다고 고백한 너희의 가르치는 행동은 너무 우유부단하고 불명확하다. 이교도는 그들의 목표를 위해 정면으로 공격한다; 너희에게는 너무 많은 고질적인 열망하는 죄가 있다.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면, 이교도가 포위한 도시를 점령하는 것 같이, 영적인 공격으로 왜 하늘나라를 점령하지 않느냐? 대체로 지난날을 뉘우치고 오늘을 불평하며 헛되이 앞날을 희망하는 태도로 너희가 봉사할 때, 너희는 도저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왜 이교도가 맹렬한 위세를 떨치고 있느냐? 그들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왜 너희는 헛된 꿈을 꾸며 시달리고 있느냐? 너희가 진실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헛된 꿈을 꾸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서 하늘나라를 세우는 데 관계되는 일을 용감히 하라.
155:1.4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 일방적이고 지나치게 전문화 되지 말라. 우리의 파멸을 노리는 바리새인들은 진리적으로 자신들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통 때문에 너무 좁아져서, 편견으로 눈이 멀고 두려움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그리스인을 생각하면, 그들은 종교가 없는 과학을 가진 반면, 유대인은 과학이 없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이처럼 좁고 혼란한 분열된 진리를 잘못 받아들이게 될 때, 사람들이 구원받을 유일한 희망은 진리로―조율되어―돌이키는 것이다.
155:1.5 “나는 이 영원한 진리를 강조한다: 만약 너희가 진리와 조화됨으로 너희의 삶 속에서 이 아름다운 온전한 의(義)의 모범이 되도록 배운다면, 너의 동료들은 너희를 따라서 너희가 얻은 것을 그들이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여기며 너희를 찾을 것이다. 진리를 찾는 자들은 너희가 진리의 자질, 의(義)의 정도를 나타내므로 너희에게 이끌린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너희가 전하는 말씀을 가지고 가야하는 정도는, 어떤 면에서, 온전한 삶 또는 의로운 삶, 진리로 조율된 삶을 살았는지를 재는 척도이다.”
155:1.6 사도와 전도사들이 밤 인사를 드리고 베개 위에 잠을 청하기 전에, 주는 다른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2. 전도사들이 코라진에서
155:2.1 5월 23일 월요일 아침에, 예수는 베드로에게 열두 전도사와 함께 코라진으로 가라 지시했고, 베드로는 열한 명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다마스쿠스-카페르나움 길로 갔고, 북동쪽의 케자리아-빌립비에 이르는 교차로 지점까지 가서, 그 도시에서 2주 동안 머무르며 가르쳤다. 그들은 5월 24일 화요일 오후에 도착했다.
155:2.2 베드로와 전도사들은 코라진에서 2주 동안 머무르면서, 작지만 열심 있는 무리의 신자들에게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했다. 그러나 새로운 전향자를 많이 얻을 수 없었다. 온 갈릴리의 어느 도시에서도 코라진 만큼 하늘나라를 위한 혼이 적은 곳이 없었다. 베드로의 지시에 따라서, 열두 전도사는 치유―육체적인 것―에 대하여 적게 말했고, 반면 하늘나라의 영적 진리를 더욱 활기 있게 전도하고 가르쳤다. 코라진에서의 2주간은 여태까지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보람 없는 기간이었으므로, 열두 전도사에게 진정한 역경의 세례였다. 하늘나라를 위해 혼을 얻는 만족을 박탈당한 그들은 각자 자신의 혼을, 그리고 새 생활의 영적 길에서 혼이 얼마나 진보하였는지 더욱 진지하고 정직하게 돌이켜보았다.
155:2.3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더이상 들어갈 마음이 없어 보였을 때, 베드로는 6월 7일 화요일에 동료들을 불러모으고 예수와 사도들과 합류하기 위해 케자리아-빌립비로 출발했다. 이들은 수요일 한낮 무렵에 도착하였고 코라진의 불신자들 가운데서 겪은 체험을 저녁 내내 되돌아보면서 보냈다. 이날 저녁 토론하는 동안에 예수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더 언급했고, 삶을 수행하면서 오는 명백한 실패의 의미에 대해 많이 가르쳤다.
3. 케자리아-빌립비에서
155:3.1 비록 예수가 케자리아-빌립비 근처에서 머무는 2주 동안에 대중을 위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사도들은 그 도시에서 여러 차례 조용한 저녁 모임을 열었고, 많은 신자가 야영지로 나와 주와 이야기하였다. 이번 방문으로 신자 집단에 추가된 사람은 극소수였다. 예수는 날마다 사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하늘나라를 전파하는 일의 새 국면이 이제 시작되고 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했다.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아들 신분을 인정하여 영적 기쁨을 깨닫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155:3.2 케자리아-빌립비에서 머무른 것은 열한 사도에게 진정한 시험이었고 견디기 어려운 2주였다. 그들은 거의 우울증에 빠졌고 열심인 베드로의 열정적인 성격이 주는 자극이 없어서 힘이 없었다. 이 시절에 예수를 믿고, 나가서 그를 따르는 것은 참으로 크고 벅찬 모험이었다. 이 2주 동안 전향자를 거의 얻지 못했어도 주와 날마다 가진 회의로부터 그들은 무척 유익한 것을 많이 배웠다.
155:3.3 진리를 구체적 신조로 만들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영적으로 침체되고 죽어 가고 있으며, 진리가 영적 안내와 진보의 길 표시로 쓰이는 대신에, 혼자만 옳다는 배타적 경계선으로 모습을 갖출 때 그런 가르침은 창조력과 생명력을 잃고 궁극에는 단지 보존만 되고 화석이 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사도들은 깨달았다.
155:3.4 그들은 시간과 영원 속에서, 가능성 면에서 사람의 성격을 바라보는 것을 예수에게서 더욱 배웠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제를 사랑하기를 먼저 배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많은 사람을 최선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바로 이와 관련하여, 동료들에게 사심 없이 봉사하는 것에 대하여, “내 형제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만큼 너희는 그렇게 나에게 행한 것이다” 하는 주의 선언에 새로운 의미가 붙게 되었다.
155:3.5 이 케자리아 체류의 큰 교훈 중 하나는, 신성하지 않은 것들, 일반적인 생각들 또는 일상적인 사건들에 애착을 가지고 거기에 신성불가침의 의미를 용납하는 심각한 위험에 빠지는 종교적 전통의 기원에 관련된 것이었다. 한 회의로부터 그들은 진정한 종교는 그의 가장 높고 진실된 신념에 대한 인간의 진심 어린 충성이라는 것이 이 가르침에서 드러났다.
155:3.6 예수는 만약 그들의 종교적 갈망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늘어나는 과학 지식은 사물의 초자연적 기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점진적으로 갈아치움으로, 궁극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빼앗을 것이라고 그의 신도들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의 종교가 영적이라면, 물리 과학의 발전이 영원한 현실과 신성한 가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결코 방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훈계하였다.
155:3.7 종교가 온전히 영적 동기를 가졌을 때, 종교는 모든 삶을 갈수록 더 가치 있게 만들며, 높은 목적으로 삶을 채우고 초월적 가치로 삶에 위엄을 주며, 훌륭한 동기로 삶을 북돋우고, 그렇게 하면서 숭고하고 북돋아주는 희망으로 인간의 혼을 위로한다는 것을 그들은 배웠다. 참된 종교는 존재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것은 일상생활과 사심 없는 섬김을 위한 믿음과 용기를 방출한다. 믿음은 영적인 생명력과 의로운 결실을 맺도록 촉진한다.
155:3.8 예수는 자신의 사도들에게 어떤 문명도 종교 자체의 최고성을 잃으면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반복해서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종교적 체험 대신 종교적 상징과 예식을 받아들이는 큰 위험을 지치지 않고 지적했다. 그의 모든 지상의 삶은 깨우친 아들들이 물처럼 흐르는 자유 속으로 얼어붙은 종교의 형태가 녹아서 나오도록 하는 사명에 끊임없이 헌신했다.
4. 페니키아로 가는 길
155:4.1 6월 9일 목요일 아침, 다윗의 전령이 벳세다에서 가져온 하늘나라의 진전에 관한 소식을 들은 25명의 진리 선생들은 케자리아-빌립비를 떠나 페니키아 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들은 룻츠를 경유하여 늪지대를 지나갔고, 막달라-레바논산 도로와 교차하는 지점까지 이동한 후, 시돈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건널 수 있는 지점까지 갔으며, 금요일 오후 시돈에 도착했다.
155:4.2 룻츠 근처의 돌출된 바위 그늘 아래에서 점심을 먹으며 잠시 멈추던 중, 예수는 그와 함께한 세월 동안 그의 사도들이 들었던 가장 놀라운 연설 중 하나를 말씀했다. 빵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자마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에게 물었다: “주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모든 것을 아시고, 그의 영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세우는 일에 우리를 지원하시는데, 왜 우리는 적들의 위협을 받고 도망을 가야 합니까? 왜 진리의 적들과 대결하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베드로의 물음에 예수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토마스가 끼어들어 물었다: “주님, 예루살렘에 있는 우리 적들의 종교에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는지 나는 정말로 알고 싶습니다. 저들의 종교와 우리의 종교는 무엇이 정말 다릅니까? 우리 모두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왜 우리의 믿음이 그렇게 차이가 있습니까?” 토마스가 말을 마치고 나서 예수는 말했다: “내가 베드로의 물음을 무시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내가 유대인 권력자들과 드러내놓고 충돌하기를 피하는 까닭을 너희가 오해하기 얼마나 쉬울 것인지 잘 아는 까닭에, 차라리 토마스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선택하는 것이 너희 모두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너희가 점심을 마치고 나서 대답을 시작하겠다.”
5. 참 종교에 대한 말씀
155:5.1 종교에 대한 잊지 못할 이 강론은 현대의 어구로 요약되고 다시 진술되어, 다음과 같은 진리로 표현하였다:
155:5.2 세계의 종교들은 어느 시대, 어떤 한 민족 사이에서도, 이중 기원―자연적이고 계시적인―을 가지고 있지만, 세 가지 분명한 다른 형태의 종교적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종교적 욕구에 대한 세 가지 형태는 다음과 같다:
1. 원시 종교. 신비스러운 기운을 두려워하고 우월한 힘을 숭배하고자 하는 반문화적인 본능적 욕구로서, 주로 물리적 본성의 종교인 두려움의 종교이다.
2. 문명의 종교. 진보하는 종교적 개념과 문명화하는 민족들의 관습―지성을 쓰는 종교―인 확립된 종교적 전통의 권위를 가진 지적 신학이다.
3. 참된 종교―계시 종교. 초자연적 가치가 있는 계시, 영원한 실체들에 대한 부분적 통찰력, 하늘에 계신 아버지(Father)의 선하고 아름다운 무한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것―인간의 체험에서 증명되는 영(spirit)의 종교이다.
155:5.6 자연인의 육체적 느낌과 미신을 믿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종교를 주는 비난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원시 형태의 숭배가 인류에서 지적인 면에 속하는 종족들의 종교 형태에서 너무 많이 지속한다는 사실을 개탄하였다. 지적 종교와 영적 종교의 큰 차이점은, 전자가 교회의 권위로 지탱하는 데 반하여, 후자는 온전히 인간의 체험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155:5.7 그리고 나서, 가르치는 시간에 주는 계속하여 이러한 진리를 뚜렷하게 설명했다:
155:5.8 민족들이 상당히 지적이고 충분히 문명화될 때까지 유치하고 미신을 믿는 많은 의식이 지속할 터이고, 이것은 원시적이고 뒤떨어진 민족들의 진화적 종교 관습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인류가 영적 체험의 현실을 더 높이 더 널리 인정하는 수준으로 진보할 때까지, 큰 집단의 남녀가 지적 동의만 요구하는 권위적 종교를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성향을 계속 보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영의 종교에는 진취적 인간 체험을 겪는 벅찬 현실과 씨름하는 믿음의 모험에 지성과 혼의 적극적 참여가 따른다.
155:5.9 권위의 전통적인 종교의 수용은 인간의 영적 본성의 갈망들에 대한 만족을 찾고자 하는 충동에 대한 쉬운 탈출구를 제시한다. 정착되고 굳어지고 확립된, 권위의 종교는 어지럽고 산란해진 사람의 혼이 두려움에 떨고 불안에 시달릴 때, 도피해도 되는 즉석의 안식처를 마련해 준다. 그런 종교는 만족과 확신을 얻는 값으로 신자들에게 오직 시키는 대로, 순전히 지적 동의를 요구한다.
155:5.10 그리고 오랫동안 소심하고, 두렵고, 주저하는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권위의 종교에 운명을 걸면서 성격의 주권을 위태롭게 하고, 자존심의 존엄성을 떨어뜨리고, 참여권을 완전히 포기할지라도 종교적인 위로를 얻고 싶어 할 것이다. 가능한 모든 인간 체험 가운데 가장 가슴 떨리고 영감을 주는 다음과 같은 체험에 참여하는 권리를 모조리 넘겨준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즉 진리의 개인적 탐구, 지적 발견의 위험에 부딪치는 흥분, 개인의 종교적 체험의 실체를 탐구하려는 결심,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서 최대의 모험―사람이 혼자 힘으로, 또 스스로 하나님을 찾다가 찾아내는 모험―에서 정직하게 얻는 승리, 영적 믿음이 지적 의심을 이기는 것을 실제로 깨닫는 만족, 개인적으로 승리하는 최고의 만족을 얻는 체험이다.
155:5.11 영의 종교는 노력ㆍ투쟁ㆍ분쟁ㆍ믿음ㆍ결심ㆍ사랑ㆍ충성ㆍ진보를 의미한다. 지성의 종교―권위를 내세우는 신학―은 형식을 따르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있는 힘을 다하라고 거의 또는 조금도 요구하지 않는다. 두려워하고 건성으로 믿는 혼에게 전통은 안전한 피난처요 쉬운 길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진취적 인간 지성이 발견하고 진화하는 인간 혼이 체험할 수도 있는, 먼 바닷가의 영적 실체들을 찾아서, 탐구되지 않은 진리의 거센 파도를 무릅쓰고 모험하는 믿음의 항해에서 겪는, 그러한 영적 투쟁과 정신적 불안을 본능적으로 피한다.
155:5.12 예수는 말씀을 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전통적 선생과 지난 시대 선지자들의 여러 신조를 확립된 체계의 지적 관념으로, 즉 권위의 종교로 만들었다. 모든 그러한 종교는 대체로 지성에 호소한다. 우리가 얼마 안 있어 비로소 새 종교를 용감하게 선언할 것이므로,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그러한 종교와 목숨을 건 싸움에 들어가려 한다―이 새 종교는 그 말이 오늘날 뜻하는 종교가 아니라, 사람의 지성에 거하는 내 아버지의 신성한 영에게 주로 호소하는 종교이다. 그 종교는 이를 받아들여 생기는 열매로부터 힘을 얻으며, 그 열매는 이렇게 더 높은 영적 교통이 있다는 진실을 정말로, 참으로 믿는 모든 사람이 직접 겪는 체험에서 아주 확실히 나타날 것이다.”
155:5.13 스물네 사람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는 말했다: “그리고 자, 하늘나라의 영원한 진리와 최고의 장려함을 생생하게 몸소 체험하는 아름다운 현실을 스스로 발견하는 만족을 느끼면서, 너희 중에 누가 사람들을 구원하는 더 좋은 길을 선포하는 사명에 따르는 어려움과 박해를 견디겠느냐? 아니면 예루살렘에 있는 바리새인들이 방어하는 길, 확립되고 굳어진 종교에 순응하는 이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이 더 좋으냐? 너희는 무섭고 연약하고 안일을 찾느냐? 너희는 앞날을 진리의 하나님 손에 맡기기가 두려우냐, 너희는 누구의 아들이냐? 너희는 아들이어든 아버지를 믿지 못하느냐? 너희는 전통적 권위의 종교가 주는 확신과 지적 안정으로 이끄는 쉬운 길로 돌아가겠느냐, 아니면 몸을 가다듬고서, 영의 종교의 새로운 진리,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미래, 확실치 않고 어지러운 미래를 향하여 나와 함께 가겠느냐?”
155:5.14 이것은 예수가 일찍이 하신 몇 번 안 되는 이러한 감정적 호소 중 하나였고, 말씀을 듣던 스물네 사람이 모두 일어나서, 이에 뭉쳐서 충성한다는 반응을 표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는 손을 올려서 그들을 멈추고 말했다: “이제 너희는 따로 가라, 각 사람이 혼자서 하나님과 함께, 거기서 내 질문에 대하여 냉철한 대답을 찾아내고 그러한 참되고 진지한 혼의 태도를 찾고 나서, 그 대답을 내 아버지요 너희 아버지께 거리낌 없이 용감히 대답하라. 무한한 사랑의 생명인 아버지는 우리가 선포하는 바로 그 종교의 영(spirit)이다.”
155:5.15 전도사와 사도들은 잠시동안 자기들끼리 따로 갔다. 그들의 정신은 격려를 받고 지성은 영감을 받았으며, 감정은 예수의 말씀에 힘차게 움직였다. 그러나 안드레가 그들을 함께 불러 모았을 때, 주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여행을 다시 떠나자. 우리는 페니키아로 가서 한동안 머무르고 너희는 모두, 너희의 육체와 지성의 감동을 더 높은 지적 충성으로, 그리고 더욱 만족스러운 영의 체험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155:5.16 길을 따라 여행하면서 스물네 사람은 말이 없었지만, 금방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날 오후 세 시가 되자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들은 멈추었고 베드로는 예수에게 가서 말했다: “주님, 당신은 우리에게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듣고자 합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더 말씀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6. 종교에 대한 둘째 강론
155:6.1 그래서, 산허리의 그늘에서 멈춘동안, 예수는 영(spirit)의 종교에 관하여 계속 가르쳤는데, 이런 내용으로 말씀하였다:
155:6.2 너희는 지성의 종교에 만족한 채로 있기로 작정한 너희 동료들 사이에서 뛰쳐나왔고, 그들은 안전을 몹시 바라고 전통에 순응하기를 더 좋아한다. 너희는 권위적 확신의 느낌을 버리고, 모험적이고 진취적 믿음을 주는 영(spirit)의 보장을 선택하였다. 너희는 제도적 종교의 모진 속박에 감히 저항하고,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는, 기록된 전통의 권위를 거절하였다. 우리의 아버지는 정말로 모세ㆍ엘리야ㆍ아모스ㆍ호세아를 통하여 말씀하였으나, 이 옛 선지자들은 말씀을 끝났어도 그는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계속하여 주신다. 내 아버지는 진리의 말씀을 한 시대에 허용하고 다른 시대에 허락하지 않으면서 민족이나 세대를 차별하는 분이 아니다. 완전히 인간적인 것을 신성한 것으로 부르는 어리석은 것을 인정하지 말며, 소위 영감을 받았다는 전통적 신탁을 통한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는데 실패하지 말라.
155:6.3 나는 너희에게 다시 태어나라, 영에게서 태어나라 요구하였다. 나는 권위의 어두움과 무기력한 전통으로부터 너희를 끌어내어, 인간의 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발견―혼자 힘으로, 자신 속에서,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내며, 자기 개인 체험에서 하나의 사실로서 이 모두를 행하는 하늘의 체험―가능성을 실현하는 초월적 빛 속으로 인도하였다. 그것은 너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통의 권위에서 하나님을 아는 체험으로 건너가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너희는 어둠에서 빛으로, 물려받은 민족의 신앙으로부터 실제 체험을 거친 개인적 신앙으로 옮겨갈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 너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성의 신학으로부터, 영원한 재산으로서 너희 혼 안에서 세워질, 참된 영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진보할 것이다.
155:6.4 너희의 종교는 전통적 권위를 믿는 단순한 지적 믿음에서, 하나님의 실체 그리고 아버지의 신성한 영과 관련되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의 실제 체험으로 바뀔 것이다. 지성의 종교는 너희를 과거의 절망으로 묶어 놓지만, 영의 종교는 점진적 계시에 있고, 영적 이상과 영원한 실체에서 더 높고 신성한 성취를 향해 계속 가도록 늘 너희에게 손짓한다.
155:6.5 권위의 종교가 즉시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너희는 그러한 일시적인 만족감에 영적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잃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아버지께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대가로 영적으로 혐오스럽고 거룩하지 않으며 거짓된 믿음에 억지로 가입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낡은 종교적 형태와 예식 체계에 굴복함으로써 너희 자신의 자비, 공정, 진리가 모욕받을 필요가 없다. 영의 종교는 영의 인도가 너희를 어디로 데려가든 영원히 자유롭게 진리를 따르도록 한다. 그리고 누가 판단할 수 있느냐- 아마도 이 영은 다른 세대들이 듣기를 거부했던 것을 이 세대에게 전해줄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155:6.6 갈급한 혼들을 어둡고 희미한 먼 과거 속으로 끌고 가서 그들을 버리고 떠나는 그 거짓된 종교 선생들을 부끄럽게 하라! 그리고 이 불행한 사람들은 그렇게 모든 새로운 계시에 겁을 먹고, 동시에 진리에 대한 모든 새로운 계시에 당황한다. "하나님께 마음이 머무는 자는 완전한 평안을 유지하리라"고 한 예언자는 권위 있는 신학의 단순한 지적 신봉자가 아니었다. 진리를 아는 이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냈다; 그는 단지 하나님에 대하여 입으로만 말한 것이 아니다.
155:6.7 나는 너희가 항상 옛 예언자들을 인용하고 이스라엘의 영웅들을 찬양하는 관행을 버리고, 대신에 최고자(Most High)의 살아 있는 선지자가 되고, 다가오는 하늘나라에서 영적 영웅이 될 포부를 가지기를 충고한다. 하나님을 아는 과거의 지도자들을 기리는 것은 정말로 가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왜 너희는 인간 존재의 최고의 체험, 즉 스스로 신을 찾고 자신의 혼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을 희생해야 하느냐?
155:6.8 인류의 모든 종족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그들만의 정신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성의 종교는 다양한 인종적 관점에 늘 충실해야 한다. 권위의 종교는 절대 통일이 될 수 없다. 인류의 통일과 필사자의 형제 사랑은 오직 영의 종교를 위에서 부여함으로,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종족의 지성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인류는 같은 신성한 영원한 영이 깃든다. 인간의 형제 사랑에 대한 희망은 권위의 다양한 지성 종교들의 영이 통일되고 고귀한 종교, 즉 개인적인 영적 체험의 종교로 가득 차게 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155:6.9 권위의 종교는 오직 인간을 분열시키고 서로에 대해 양심적으로 맞서는 대열에 서게 한다; 영의 종교는 점진적으로 사람들을 함께 모으고, 서로 이해하는 태도로 공감하게 한다. 권위의 종교는 사람들에게 교리로 한결같기를 요구하지만, 이것은 현재의 세계 상태에서 실현이 불가능하다. 영의 종교는 오직 체험의 통일성―운명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의 다양성을 위한 완전한 허용을 필요로 한다. 영의 종교는 지적 관점의 통일성이 아니라 통찰력의 통일성만을 요구한다. 권위의 종교는 생명이 없는 교리들로 굳어진다; 영의 종교는 증가하는 사랑의 봉사와 자비로운 사역의 고귀한 행위 속에서 기쁨과 자유로 성장한다.
155:6.10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전통적으로 무력한 이러한 불운을 만났다고 해서 너희 중 누구도 저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경계하라. 우리의 조상은 하나님을 집요하게 열심히 찾느라고 헌신했고, 아담 시절 이후로 어떤 다른 민족도 저들이 찾아낸 만큼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나,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므로 이를 많이 알았다. 내 아버지는 모세의 시절 이후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투쟁, 길고도 지칠 줄 모르는 이스라엘의 투쟁을 놓치지 않고 주목해 왔다. 지친 여러 세대 동안에, 유대인은 그침 없이 수고하고, 땀 흘리고, 신음하고, 진통을 겪었고, 오해받고 경시당한 민족의 고통을 견디고 서러움을 겪었으며, 이 모두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발견하는 데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온갖 실패와 실수를 겪었어도, 점진적으로 모세로부터 아모스와 호세아 시절까지, 우리의 조상은 온 세계에 영원한 하나님의 그림, 갈수록 더 맑고 참된 그림을 늘 드러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더 큰 계시를 받기 위하여 길이 준비되었으며, 너희는 그 계시를 함께 가지라고 부름 받았다.
155:6.11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만족스럽고 떨리는 모험이 오직 하나 있음을 잊지 말 것이니, 곧 신성한 뜻을 행하려고 정직하게 애쓰는 최상의 체험이다. 땅에서 어떤 직업을 가져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어떤 부르심은 거룩하지 않고 어떤 부르심은 세속적이다.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삶에서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 진리에 종속되고, 사랑에 의해 고귀해지고, 자비에 의해 지배되고, 정당함-공정함에 의해 통제된다. 내 아버지와 내가 세상으로 보낼 영은 진리의 영일 뿐 아니라, 또한 이상주의적인 아름다운 영이다.
155:6.12 너희는 신학적 권위가 가진, 오래된 기록들의 페이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것을 멈춰야 한다. 하나님의 영에게서 태어난 자는, 어디에 기원이 있는 듯 보이는가에 상관없이,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것이다. 말씀을 주신 경로가 인간을 통한 듯 보인다고 해서 그 신성한 진리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너희의 형제 중에 다수가 하나님에 관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지성을 가졌어도, 영적으로 하나님의 계심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진지한 어린아이와 같은 영적 태도를 얻어야 하늘나라를 최선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너희에게 그리 자주 가르친 이유이다.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정신적 미숙함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 믿고 완전히 의지하는 어린아이의 그러한 영적 단순성이다. 하나님의 사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는 능력이 점점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155:6.13 일단 너희가 혼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할 때, 곧 너희는 다른 사람들의 혼에서 그리고 마침내 강력한 우주의 모든 생명 존재와 창조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실체에 대한 사려 깊은 생각에 시간을 거의 주지 않는 사람들의 혼 속에서 아버지가 최상으로 충실하고, 신성한 이상을 가진 하나님으로서 나타날 기회가 어디 있겠느냐? 지성은 영적 본성의 거처는 아니지만, 지성은 정말로 영으로 가는 관문이다.
155:6.14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하려고 하는 실수를 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두 가지 긍정적이고 강력한 증거가 있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너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의 열매이다.
2. 너의 전체 삶의 계획이 때에 맞추어 네가 미리 맛보았던 존재, 영원의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소망을 좇아 너의 모든 것을 걸었고, 죽은 뒤에 살아남는 모험을 한다는 긍정적인 증거를 마련해 준다는 사실이다.
155:6.17 이제는 실수하지 말라, 내 아버지는 꺼질 듯 가물거리는 아주 가냘픈 믿음에도 늘 반응하실 것이다. 그는 원시인의 육체적, 미신적 감정에도 주목하신다. 믿음이 너무 약해서 권위의 종교에 수동적으로 찬성하는 태도, 지적 순응에 지나지 않는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 정직해도 두려워하는 자의 경우에, 아버지를 향하여 손을 뻗으려는 어떤 그러한 미약한 시도까지도 허락하고 길러주려고 아버지는 늘 깨어 계신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빛으로 부름을 받은 너희는 온 마음을 다해 믿어야 한다; 너희의 믿음은 몸과 지성, 영의 결합된 태도를 지배할 것이다.
155:6.18 너희는 나의 사도요, 너희에게는 종교가 신학적 피난처가 되어 영적 진보와 이상적 모험이 있는 험난한 현실에 직면하여 도망칠 수 없다. 오히려 너희의 종교는 하나님이 너희를 발견하고, 이상으로 만들고, 고귀하게 하고, 영답게 변화시켰음을 증거하며, 이렇게 너희를 발견하고 아들 삼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영원한 모험에 동참했음을 증명하는 실제 체험의 사실이 될 것이다.
155:6.19 말씀을 마치고 나서, 예수는 안드레에게 손짓하고 페니키아를 향하여 서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우리의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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