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박영돈 교수의 평가
고신대 신대원 교수인 박영돈은 2010년 2월 22일 손 장로의 치유집회에 참석하여 그가 본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8시가 다 되자 손 장로가 나와서 설교를 시작했다. 전에 왔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손 장로가 설교하는 도중에 어디가 아픈 사람이 지금 치유를 받았다는 감동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셨다고 선포했다. ‘오른쪽 복사뼈가 아팠는데 통증이 사라진 사람은 나오라’고 하니 한 젊은이가 앞으로 나왔다. 손 장로는 그를 단상 앞에서 뛰게 했다. 그리고는 젊은이를 향해 ‘주님, 영광으로 임하소서! 더! 더! 더!’라고 나지막하게 말하니, 그가 뒤로 벌렁 넘어져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자 회중의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다소 진부한 설교가 계속되는 동안 지루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다시 열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은 말씀의 능력이 아니라 신기한 현상의 위력이었다. 손 장로는 매번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치유되거나 치유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혹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다’고 말했다. 이번 집회에서 호명한 병자들은 다음과 같다. 치매가 있는 이, 얼굴에 흉터가 있는 이, 오른쪽 다리의 정맥류에 이상이 있는 이, 자궁근종, 안구건조증, 생리통, 변비, 폐기종, 식도염으로 고생하는 이, 오른 쪽 옆구리에 통증이 있는 이들이다. 손 장로가 그런 이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는 또 다시 그들을 향해 ‘성령님, 임하시옵소서! 더! 더! 더!’ 하고 외쳤다. 그러자 어떤 이들은 무슨 능력에라도 압도된 것처럼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거나 쓰러져 버렸다.”(박영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한국교회 성령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88-89).
여기서 박영돈은 손기철 치유사역의 전시성과 위험성을 지적한다. 종교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있다. 신의 모습이 종교라는 매체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스러운 존재를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사역자는 이 장면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신적 존재로 착각하는 위험에 노출된다. 여기서 사역자는 하나님과 직통하는 신비스러운 초자연적인 영험한 존재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사역자는 청중을 압도하고 교묘히 조종할 수 있는 신비로운 도사(道師), 영매(靈媒) 내지 마술사(魔術師) 같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손 장로는 설교가 끝난 후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서게 했다. 그리고는 아무도 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다. 기도도 하지 말라고 했다. 갑자기 교회당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는 한 손을 들고 ‘성령님, 임하소서! 더! 더! 더!’라고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용했던 회중 가운데 일어섰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퉁퉁거리며 들려왔다. 손 장로가 ‘성령님, 더! 더! 더!’라고 말할수록 자리에 주저 앉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쪽에서는 어떤 여자가 괴성을 지르며 히스테릭하게 울부짖었고, 저자가 앉아있던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자리의 한 할머니는 온몸을 뒤흔들며 발작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이 집회의 트레이트 마크인 ‘하늘의 터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영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한국교회 성령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90-91.).
여기서 박영돈은 손 장로가 행하는, ‘성령님, 임하소서! 더! 더! 더!’라는 읊조리는 행위가 성령이 주권적으로 역사하는 ‘하늘의 터치’라기보다는 인위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인간적인 터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성령의 사역보다는 사역자의 전시행위가 더 부각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치유사역자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시작하다가,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여기에 타성이 생겨 처음의 감격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유지하기 위한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지닌 연약성이고 한계성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종교가 지니는 취약성이라는 점이다.
3) 현요한 교수의 평가
장신대 신대원 교수 현요한은 2012년 4월 기독교학술원 30주년 기념 영성포럼에서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에 대한 연구발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는 주기도문의 구절을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하나님 나라 신학에 대하여는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모든 사람의 치유는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된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했는데, 하나님 나라에는 질병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치유는 당연한 질서일 뿐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에는 질병이 없습니다.’(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128.) 그러나 정말 모든 사람의 질병은 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이미 해결되었으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치유를 원하시므로, 이제 우리는 단지 치유를 믿고 나가기만 하면 모든 질병은 치유되는 것인가?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의 모든 질병을 모든 시점에서 다 보장하는 것인가? 그 자신도 자신의 집회에서 많은 사람의 병이 낫지 않은 채로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위의 책, 234). 그래서 그 자신도 ‘하나님, 왜입니까?’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질문이 자신이 교만해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날마다 더 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위의 책, 235). 여기에 얼마간 혼동스러움이 있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질병을 고치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고, 질병이 생긴 데에는 어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대한다”(현요한,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과 신학에 관하여”, 기독교 학술원 30주년 영성 포럼, 2012. 4.6. 자료집. 14.).
현요한은 손 장로가 모든 질병이 치유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손 장로 자신도 그의 치유사역에서 병을 고치지 못하고 돌아가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손 장로가 모든 질병이 치유된다고 믿는 이유는 그의 치유사역이 실현된 하나님 나라론에 근거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손 장로의 실현된 하나님 나라론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 차원을 도외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손 장로의 ‘왕의 기도’론도 이러한 실현된 하나님 나라론에 근거하며, ‘왕의 기도’는 간구가 아니라 하나의 선포로 실행된다.
현요한은 다음과 같이 손기철의 치유사역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생소한 모습을 지적한다.
“그가 소위 ‘왕의 기도’를 하는 방식은 매우 생소하다. 그는 집회에서 병자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한 후, 그야말로 선포를 감행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질병은 떠나갈지어다, 치유될지어다!’ 그리고 그는 집회 중에 치유받은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거나 손을 들어 보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기도한다. 그 기도 방식은 더 생소하다. 그는 그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거나 혹은 안수를 하면서 기도한다. ‘성령님! 더, 더, 더, 더… touch!’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거기서 쓰러진다. …이런 식의 기도는 마치 손 장로가 성령님을 마음대로 명령하고 주장할 수 있는 존재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현요한,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과 신학에 관하여”, 21.).
현요한은 이러한 ‘왕의 기도’는 기도자의 신격화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손 장로 사역에서 자기 신격화 조짐은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그 위험성은 내재하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첫댓글 귀한 자료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