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어둠의 빛』(푸른사상 소설선 58). 2024년 6월 20일 간행.
부조리한 상황과 대면했던 기억 속의 인물들은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삶을 말한다.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대조하고 성찰하며 기억을 한 번 더 기억하는 것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를 어떻게 감당했는지 성실하게 기록한 것은 부조리한 현재의 삶에 대한 치열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 작가 소개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침의 동행」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작가회의 및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며 소설집으로 『사설우체국』이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행운이자 불행이다. 늦은 밤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다가 피로한 눈을 비비는 것도 행복이자 불행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 씨름한 머릿속은 이제 텅텅 비어버린 것만 같다. 공허하기도 하고 개운하기도 하다. 과거의 기억을 담보로 써 내려간 작품들을 묶어 두 번째 소설집을 낸다.
■ 작품 세계
한승주 소설의 화자에게 추억이란 결코 과거의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야기하고 삶을 말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현재와 이어져 있는 과거의 끈을 놓치지 않으면서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끊임없이 대조하고 성찰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승주 소설은 “기억을 한 번 더 기억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할 때, 정확하게 그에 부합한다. 뿐만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자전적 글쓰기 과정을 통해 자아 정체성을 새삼스레 확인하면서 그가 살았던 시대를 어떻게 감당했었는지 개인적 기억을 문화적 기억으로 기록해두고자 하는 성실함의 태도(부조리한 삶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기록)로 읽을 수 있겠다.
― 심영의(소설가, 문학평론가)
■ 작품 속으로
사실 나는 아내의 죽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형님 부부의 버스 추락 사고사, 그해 일어난 누이의 자살과 연이은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 혼자 충격을 버텨냈다. 하지만 내면을 찢은 상처까지는 어쩌지를 못했다. 기자로서 승승장구하던 내가 오보와 낙종을 했고, 그건 신문기자에게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늘 입사 동기들보다 앞서 나가던 나는 그해 승진과 보직인사에서 처음으로 물을 먹었다. (「의왕 가는 길」, 95~96쪽)
20평대의 서민아파트이긴 해도 관리비와 각종 공과금, 생활비와 차량 유지비까지 합치면 못해도 한 달에 150만 원은 있어야 할 텐데, 평생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한기호가 그만한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의혹이 뿌리의 실체였다. “고정간첩일지도 몰라. 평생 아무 일도 안 하는데 멀쩡하게 살고 있는 게 이상하잖아.” (중략)
“친구는 고사하고 가족이 드나드는 걸 본 사람도 없잖아. 그렇다면 고아? 근데 고아에게 무슨 유산이 있어 평생 놀고먹는 거야?” (「어둠의 빛」, 104~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