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지만 부드러운
-달라이 라마와 넬슨 만델라-
1. 20세기 후반, 세계인들은 두 명의 특별한 지도자들의 행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거대한 힘을 가졌던 권력과 맞섰으며, 권력이 자행한 폭력에 의해 고통받던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들이 맞선 상대는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지배하는 영역이었으며, 힘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무력감이 팽배하던 공간이었다. 그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물러나지 않는 투쟁의 시간을 지속하였다. 인간이 지닌 강인함의 증명이었고 무너지지 않은 존재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투쟁의 형태는 비폭력적이었으며 여유로웠고 시간의 압박감에도 파괴되지 않는 부드러움을 지닌 모습이었다. 최고의 투사였음에도 우리가 그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온화한 웃음과 미소였다. 성자에게서 발견되는 평화로 이끄는 손길이었다. 바로 티벳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이다.
2. 달라이 라마의 적대자는 엄청난 힘을 보유한 20세기 후반 역사의 새로운 강자 ‘중국’(중국공산당)이었다. 중국은 티벳을 전격적으로 침략하여 라싸의 포탈라궁을 비롯하여 전통적인 불교 사원을 파괴하고 불교 문화를 말살하였으며, 티벳인들을 강압적으로 복속시켰다. 티벳의 독립은 사라진 것이다. 티벳인들은 중국에게 살육당했으며 시위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티벳은 죽음의 땅으로 변모하였다. 티벳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인도 북부에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중국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외교적 노력과 더불어 티벳의 전통 문화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달라이 라마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의 끔찍한 상황을 세계에 정확하게 알리는 일이었다. 그는 그를 받아들이는 어떤 곳이라도 찾아가서 진실을 이야기했고, 자유와 평화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3. 만델라의 조국 남아프리카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심각한 인종차별이 진행되고 있던 장소였다. 흑인에 대한 지독한 차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파르트 헤이트’(인종차별정책)가 법적으로 도입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흑인들은 일상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철저한 차별과 이등국민으로서의 수모를 감당하여야 했다. 이런 상황에 저항한 것은 ANC(아프리카 민족 회의)였다. 만델라는 처음에는 협력적이고 온건적인 ANC 투쟁 방식에 불만을 품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투쟁은 정부의 탄압에 의해 실패했고, 만델라 또한 남아프리카 최악의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 이후 3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간다. 그 곳에서 만델라는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자신과 흑인 동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유와 해방에 대한 희망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도 비굴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결코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간수들에게까지 존경을 이끌어 낸 것이다.
4. 1970-80년대는 인권의 중요성이 회복되던 시대였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흑인 인권 운동’은 남아프리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남아프리카 백인 정부는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급진적인 변화는 자칫 백인들에 대한 테러와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박일 수 있었다. 과도기를 이끌어 낼 흑인 지도자가 필요했다. 흑인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는 만델라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감옥에서 풀려난 만델라의 일성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였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의 만델라는 오랜 시간의 수감에도 결코 증오의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관용과 용서였다.
5. 달라이 라마의 투쟁도 결코 증오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미소짓고 깊은 울림을 지는 목소리로 티벳의 자유를 역설하였다. 필요하다면 독립을 포기하면서도 독자적인 티벳 문화를 지키는 타협책도 받아들일 각오를 천명하였다. 서방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유머와 따뜻함을 지닌 음성으로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이야기했고, 티벳의 정신적인 가치를 세계에 보여주었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과 신념을 지지하였고, 티벳의 독립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티벳은 전 세계에 ‘자유’의 상징으로 부각된 것이다.
6. 하지만 두 사람의 부드러운 미소가 모두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만델라는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 헤이트’를 철폐하고 정상적인 국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랜 ‘증오’ 대신, ‘진실과 화해’를 바탕으로 한 ‘용서’로 대체하며 어떤 나라도 쉽게 이루지 못했던 국민통합을 이끌어내었다. 비롯 완전하지는 못할지라도 남아프리카의 사례는 20세기가 이뤄낸 인간의 선한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였다. 반면 달라이 라마의 티벳은 이제 완강한 제국의 힘에 의해 잊혀져 가고 있다. 오히려 중국은 다른 지역(신강 위구르)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으며 서방 국가들은 2022년 중국 동계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코트’를 통해 반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사이에 티벳은 완전히 중국의 땅이 되었으며, 달라이 라마의 모습은 실종되었다.
7. 21세기를 묘사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스토롱맨의 시대’이다. 이 말은 거칠고 공격적인 지도자들의 난립을 풍자하는 말이다. 21세기는 20세기의 전쟁과 폭력의 시대로부터의 교훈을 통해 더 나은 변화를 이끌어야 했다. 하지만 변화의 시도는 20세기 후반 반짝하다 사라지는 일종의 해프닝처럼 변모했다.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는 20세기 후반 연이어 발생한 경제적인 대재난과 정치적 불안의 파장으로 무너져 버렸다. 오히려 증오와 배제가 일상적인 상황이 되었고 불안을 바탕으로 강력한 통제와 차별를 주장하는 정치가들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온화한 ‘미소’ 대신에, 잔혹한 ‘눈매’가 정치적 얼굴로 대체된 것이다.
8. 어쩌면 달라이 라마와 만델라의 미소는 아직도 인간의 가능성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시대와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여유였는지 모른다. 그것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언젠가는 비참한 현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비롯된 확신의 미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얼굴은 불안과 증오에 사로잡혀 상대에 대한 여유와 미소를 잃어버린 천박하고 날이 선 경직된 얼굴들 뿐이다. ‘증오’와 ‘배제’는 이제 인간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익숙한 언어가 되었다. 그것은 ‘증오’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언어에도 똑같이 담겨있다. ‘증오’를 담고, ‘증오’를 공격하는 아이러니가 반복되는 것이다. 갑자기 달라이 라마와 만델라의 여유로움과 온화한 미소가 그리워지는 것은 미소에 동참할 수 있었던 시대와 사람들의 여유과 가능성에 대한 그리움때문인지 모른다.
첫댓글 - 화해와 용서, 사랑과 평화! 모든이들의 바람이지만 항상 권력 앞에 이용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역사는 힘의 논리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