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16-18금식에 대한 교훈,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고훈목사님은 위암, 췌장암, 십이지장암, 임파선암이 온 몸에 거미줄처럼 퍼져 의학적 생존 가능성이 0%에 불과했던 목숨이었습니다. 8년차 말기 암 투병 중에 패혈증 합병증으로 5일 동안 의식을 잃고 모든 장기는 기능을 잃고 부패하기 시작할 때. 아이부터 장년까지 모든 성도가 금식과 철야 중보기도에 땀과 피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때 고훈목사님은 성도들의 기도 물방울 위에 서 있었고 목사님이 본 것은 바다의 작은 물고기와 공중의 작은 새 길섶의 보잘것없는 들풀을 먹이시고 키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게는 주님밖에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 그 무한한 힘과 능력 누구에게 주시려고 갖고 계십니까. 그 힘, 많이도 말고 제가 일어나 걸을 수 있게 조금만 주십시오. 나의 힘이신 하나님, 나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제가 쓰러지면 주의 곁에 있어 좋으나 저 어린 양무리는 나처럼 주님의 힘과 지혜와 은혜가 절실할 때 낙심하고 실망하여 감히 기도하지 못 할 것입니다.” 고훈목사님은 5일 동안 이 기도만을 드리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일어나 현재 목회를 안산에서 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금식에 관한 교훈입니다.
1-18절안에는 세가지 종교적 의무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2-4절에서 나오는 구제에 대한 부분, 5-15절에는 기도에 대한 부분,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금식에 대한 부분입니다. 금식은 유대인들의 의무였습니다. 하나님앞에서 겸손을 나타낼 때(느9"1,2, 시35:13), 하였고 하나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 호소하기 위하여 금식을 했습니다.(출24:18,삿20:26), 그리고 신앙 훈련을 위해서 유용하게 사용을 했습니다.(고전9:24-27)이런 개인적인 용도외에 하나님은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는 전 민족적으로 금식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레16:29-31, 민29:7) 또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가 40일 금식기도를 하였고 예수님도 40일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되어서 예수님께서 기도문제를 설명하시고 나서 금식을 별도로 다루셨을까요?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금식을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하기도 합니다.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하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받기 위하여 금식을 합니다. 능력받기 위하여도 개중에는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슨 명목으로 금식을 했는가?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회개할 때에 금식을 했습니다. 요나서에 보면 요나의 설교를 듣고 온나라안에 백성뿐 아니라 짐승까지 회개하고 금식하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11한지파와 베냐민지파가 싸울때 금식을 했습니다(삿20:26), 또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죽음이 있었을때도 금식을 했습니다(삿31:13), 나라가 힘들때 사무엘의 지도아래 국가적 부흥을 위해 금식기도를 했습니다.(삼상7:6), 그런가하면 다윗이 아들을 위하여 금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겸손히 회개할 때 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간이 경과할 수록 타성에 젖게되고 경건의 능력은 없고 모양만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에 책망을 듣는것을 보게 됩니다. 사58장에 보면 금식을 했는데 왜 응답을 주시지 않는가 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대답을 합니다. 너희가 금식을 하면서 오락을 하고...논쟁하고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어찌 이것이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냐? 말씀하시기를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한 결박을 풀어주고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헐벗은자를 입히며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언급하시는 금식에는 축하의 자리에서 금식하는 일은 없고 죄를 회개함으로 변화되는 삶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금식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을 합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는가'(마9:14-15), 주님은 답하시기를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슬퍼할 수 있느냐' 말씀하시면서 금식이 슬픔과 연관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기쁨과 관계가 있으므로 지금은 금식하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금식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금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경건하다고 나타나내려고 이용하는데 쓰고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슬픈기색'이란 단어는 '스퀴드로포스'인데 이 단어는 두단어의 합성어로 뜻이 '음침한, 침울한'등의 의미를 가진 '스키드로스'와 '보이다''나타내다'의 의미를 가진 '옵타노마이'와 합성이되어 이는 의도적으로 남에게 보이기위한 금식임을 지적하시며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을 지적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 너는 금식할 때에 반대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원어대로 한다면 너의 머리에 너의 얼굴을 씻으라는 것입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므로 평소처럼 몸단장을 해서 표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너에게 공개적으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분명하게 하나님의 보상이 있음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작할 때 고훈 목사님의 간증을 소개를 했는데 온교회가 그렇게 금식기도를 드렸더니 그렇게 분명하게 치유하셨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에 그리스도인의 금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약에서는 죄와 관련된 금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죄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용서를 받았으므로 재를 머리에 뿌리고 베옷을 입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신약에 사도들과 성도들은 금식을 했습니다. 금식을 한 목적이 구약의 성도들과 다릅니다. 신약에서는 사명을 위하여 햇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주의 일을 하기 위하여 금식을 했습니다.(행13:2), 고넬료는 금식을 통해 베드로를 초청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방에 열리는 것을 알게 되어었습니다(행19:30-32), 또 바울도 하나님의 계시 하신 뜻을 알기 위해 금식을 했습니다.(고후6:4-5)
구약에서는 머리에 재를 뿌리고 했는데 예수님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기름은 성령의 임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금식은 성령의 임재, 충만함으로 인끌림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얼굴을 씻으라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잘 씻어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갚으신다는 것은 바로 임재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심령의 전이 깨끗하여야 성령께서 임재하십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금식은 몸을 복종시키는 훈련의 수단이 아니고 사회에 어떤 기관에 항의를 하는 수단도 아니고 나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인격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상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 상이 무엇일까요?, 성공일까요? 물질일까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금식의 가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식은 우리에게 절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금식은 음식의 공급을 끊음으로 자신의 간절함을 주님께 올리는 수단입니다. 음식은 생명을 연장하는데 필수품입니다. 그 음식을 절제하고 기도한다는 것은 생명을 걸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된다면 그것은 도리어 책망만 돌아 올것입니다.
금식 한다고 하면서 텔레비젼 앞에서 오락을 즐긴다면 그 금식은 이미 실패입니다. 금식은 곡끼를 끊는 것 뿐 아니라 오락도 끊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끊어야 합니다. 이 말은 필요한 것 외에는 외출도 삼가하고 여행도 삼가하고 오직 주를 향해 기도하는 것과 말씀묵상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단지 음식물에 국한 것이 아니고 시간도 사람관계도 향락과 사치도 잠자는 것도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금식한다고 하고 잠만 잔다면 역시 의미가 없어지고 단지 굶는 행위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으로 인한 그 음식은 가난한자에게 돌려야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외칩니다. "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58:6-7)
스가랴 선지자도 외쳤습니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슥7:5)
우리의 금식은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해야할 것입니다. 꼭 필요한 중보가 있다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생활속에서 세상에 대한 나의 욕심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고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고 돌보는 것, 그 무엇보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좋은 열매 맺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될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이웃을 돌아 보고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참된 참 된 금식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