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산이 광시 성의 산간 지대로 점점 깊숙이 들어가며, 마치 전설 속의 성자가 걸어갔다는 발자취를 따라잡는 행보를 하고 있을 동안, 홍수전은 관록포의 마을에서 다시 일상생활로 되돌아 왔습니다.
한동안의 여행에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아이들을 다시 가르치면서 생활비를 벌던 홍수전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장을 더 홍보할 수 있는 책자를 작성하는데 전념했습니다. 양아발의 권세양언이 불교의 영향을 ─ 그가 의도치 않았더라도 ─ 받은 반면에, 홍수전은 역으로 예기나 주역같은 고대 경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옛 성인들은 고대 중국이 자비로웠으며, 국지적인 배타성이 없어 가진 자든, 없는 자든 서로 자비를 베풀었는데, 지방주의적 면모와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가 결국 "편협하고 천박한" 이기심의 지배를 받게 했다는 의견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가 저 나라를 미워하고, 저 나라가 이 나라를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이 성(省), 이 부(府), 이 현(縣)이 저 성, 저 부, 저 현을 미워하고, 저 성, 저 부, 저 현이 이 성, 이 부, 이현을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서는, 같은 성, 부, 현 안에서도 이 마을, 이 동네, 이 성씨가 저 마을, 저 동네, 저 성씨를 미워하고, 저 마을, 저 동네, 저 성씨가 이 마을, 이 동네, 이 성씨를 미워하는 일이 일어난다."
"쇄도와 인심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서로를 욕하고, 서로의 가진 것을 빼앗으며, 서로 싸우고, 서로 죽여서, 함께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홍수전을 글을 쓰고, 또한 묘한 신앙을 가져 선교 활동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해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광저우 내의 몇몇 사람들은, 홍수전에게 로버츠라는 인물을 만나볼 것을 권했습니다.
로버츠는 광저우 외곽에 살고 있는 서양인으로서, 중국 옷을 입었고, 작은 예배당을 지었으며 하카 방언을 구사할 줄 알았습니다. 그의 옆에는 약간의 중국인 개종자들이 있었고, 미국의 선교단체와 연줄이 있었습니다.
홍수전이 저 로버츠라는 인물을 만나볼 것을 권유당한 것은 1846년이었습니다. 광저우 출신의 개종자가 홍수전이 살고 있는 곳으로 와서 그에게 권한 것입니다. 홍수전은 그 당시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바빠 나서지를 못했지만, 1847년 로버츠의 수석 조수인 개종자가 정식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방문을 정중하게 청하자, 홍수전은 한번 가보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혼자 나서는 대신, 사촌 홍인간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로버츠는, 홍수전을 처음 만났을 당시의 인상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3, 4일 전에 두 명의 구도자(홍수전과 홍인간)가 광저우로부터 20, 30마일 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찾아왔다. 그들은 한 편의 문장을 써서 자신들의 심성 수련 과정과 가르침을 받기 위해 이곳으로 자신들을 오게 만든 계기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들의 문장은 간명하고도 평이하였고 서술은 명백하고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그것을 읽은 후 나는 주께서 이미 이들의 마음을 감화하여, 이들을 움직여서 우상을 버리고 구세주를 찾게 하였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 가운데 한 사람(홍수전)의 진술은 그야말로 백부장 고넬로가 본 이상(꿈을 꾸고 베드로를 찾아 나서 개종한 최초의 이방인)과 거의 같은 것이었다."
또 그는 홍수전이 165cm 정도의 키를 가지고 체격은 건장하며, 둥그런 얼굴의 미남인데다 태도가 안정된 군자였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서술에서 인상적인것은, 로버츠가 홍수전에 대해 어떤 '이단적' 인 모습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홍수전의 종교가 보이는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로버츠는 그때까지의 홍수전의 사상에 대해 심각한 오류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런 면은 있습니다. 로버츠는 홍수전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 이유에 대해 홍수전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홍수전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성경을 보았습니다. 물론 중국말로 번역된 성경이니 약간의 오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온전한 텍스트를 홍수전이 본 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홍인간은 중간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홍수전은 2개월 가량 로버츠의 교회에 머물면서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로버츠에게 "정식" 으로 세례를 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로버츠는 자신의 옆에 있던 중국인 개종자 두 명을 관록포로 보내 홍수전의 평판을 알아보게 했습니다. 또한 홍수전은 자신의 신앙이 진실되었다는것을 입증하는 소명서를 썻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잘될걸만 같았습니다. 조사를 나갔던 사람들도 홍수전에 대한 별다른 악평을 듣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로버츠를 위해 일하던 중국인 개종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홍수전이 로버츠에게 고용되면, 자신들이 직업을 잃을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독한 함정을 꾸몄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에게는 개종하러 온 사람들 외에, 구걸하러 오는 중국인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로버츠가 돈이나 얻으려고 세례받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한다는 점을 역이용했습니다.
이 중국인 개종자들은, 홍수전을 만나 아주 친절한 태도로, 미래의 재정적인 부분에 대해 보장해줄것을 로버츠에게 말하라고 권했습니다. 홍수전은 그들이 선의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믿고, 순진하게도 로버츠에게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홍수전에 대한 로버츠의 인식은, 그 한순간에 모조리 산산조각 나고, 박살이 나고, 부서졌습니다.
만약 홍수전이 사정을 파악했다면,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는 진정한 믿음을 더욱 추구하기 위해 로버츠에게 왔지만, 한순간의 속임수로 인해 돈푼이나 노리고 접근한 중국인 얼치기와 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심리에서 인지 파악할 수는 없지만, 홍수전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대신, 또다시 멀고 먼 광시로 이동했습니다. 풍운산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역사의 스냅 샷에서 문득문득 보이는 분기점은 자못 흥미로운 부분들입니다. 만약 홍수전이 로버츠에게 정식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그리고 그의 옆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일을 했다면? 아마도 그는 양아발처럼 되었을 수 있습니다. 별다른 문제 없이 전도하고, 광저우에서 자리를 잡고, 배상제회도 별다른 번창없이, 일반적인 전도자 집단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정은 모두 불필요한 것입니다. 홍수전은 로버츠를 떠났습니다.
당시 홍수전은 동전 몇닢 정도 밖에 없었으며, 다만 애지중지하는 참요검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뱃삯 조차 없는 그는 굶어가면서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광시 성의 경계까지 절반가량 남은곳을 지났을때, 갑자기 순검 복장을 한 여남은 명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홍수전을 포위하고 칼과 총을 뽑아들었습니다. 정부 관원을 사칭하는, 그 시대에는 흔한 범죄였습니다.
만약 홍수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하늘을 나타냈다면,
또 두번째 단추를 풀어놓은 옷을 입고 있었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인사를 하면서 세 개의 손가락을 함께 모아 펼쳤다면, 자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 는 사실을 말했다면, 암호화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면, 그들은 홍수전을 놓아 보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퍼진 천지회의 비밀 규약 따위는 전혀 알지 못하는 홍수전은 가지고 있는 남은 모든 돈, 참요검 등을 전부 빼앗겼고, 갈아입을 옷 한벌만이 남겨졌습니다. 지독한 일이었으나, 어떻게 생각하면 목숨을 건진건만 해도 다행입니다.
그야말로 대타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수전은 결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가까운 부의 지부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했지만, 지부는 홍수전이 당한 곳이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홍수전의 처지가 매우 불쌍하므로 동전 한 관을 주기는 했습니다. 홍수전은 그 돈으로 배를 탔습니다.
광시로 가는 배 안에서, 홍수전은 여러명의 학자를 만났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들은 홍수전의 사정을 안타까워하면서 음식을 주거나, 차를 대접하고, 현금을 주기도 했습니다. 홍수전은 그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과거 머물렀던 왕씨네 집에 돌아왔고, 그들로부터 풍운산의 거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씨네 집안은 풍운산이 1년 전쯤에 이곳에 들렸으며, 지금은 북쪽 산악지대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더 지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홍수전은 풍운산을 만나러 따라나섰는데, 그 옆에는 과거 홍수전이 석방을 도와준 왕씨 집안의 젊은 아들도 동행했습니다.
풍운산을 다시 만나게 해준 '하늘의 보살핌' 때문에, 홍수전은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1847년 8월 28일, 홍수전은 드디어 깜짝 놀란 풍운산과, 그리고 그가 집합시키 배상제회 회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의 하느님은, 그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날부터 그들의 역사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당시의 일을 기록하는 이름없는 이 아무개라는 사람의 공술서에 따르면, 당시 홍수전을 처음만난 사람들은 그를 '홍선생' 이라고 불렀으며, 그가 병을 치료하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배상제회의 최고 수령은 풍운산이며, 이인지가 홍수전이라고 말했습니다. 풍운산이 배상제회를 조직했으니, 당시 지켜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풍운산이 헌신적이라는것은, 그런 입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홍수전이 나타날 시점부터 분명하게 교주가 아닌 조력자로서 행동했습니다.
1847년의 가을, 홍수전과 풍운산이 다시 재회한 한달 동안, 그들은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이 집필은 의미가 있는데, 홍수전이 과거 꾸었던 꿈의 세부 내용을 정교하게 더 다듬고, 그 풀이에 대한 '신성한' 의의를 정리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어 그들의 교리는 조금 더 체계화 되었습니다. 비록 2개월이나마 성경을 실제로 본 홍수전으로 인해 몇가지 막힌 부분이 풀리면서 그들의 문장은 상당히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새로운 희망, 그리고 자신감으로 가득찬 홍수전은 그동안 꿈꾸던 "요마를 퇴치하는" 일을 마침내 벌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지역 사람들이 '엄청난 효험' 을 발휘한다고 믿은, 감왕(甘王)을 처단하는 일입니다.
감왕은 그 근처에만 적어도 다섯 곳의 사원 또는 사당이 그를 위해 세워진 존재로, 홍수전은 이 신령의 효험, 그리고 유례가 어떻게 되느냐고 지역 주민들에게 묻자, 감왕은 자신의 모친을 살해했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며, 그 힘도 대단하여 지나가는 지방관도 감왕에게 용서를 빌어야만 지나갈 수 있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감왕을 숭배하여 그의 사당에 가는 사람들 조차도 큰소리로 징을 치며 '실수로라도' 감왕과 마주치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여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홍수전은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분명 요괴이고, 나의 첫 번째 임무는 공동체 안의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에 홍수전은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 풍운산, 왕씨, 최근에 사귄 노육(盧六)이라는 사람과 함께, 손에 대나무 몽둥이를 쥐고 만 하루가 넘는 길을 나섰습니다. 감왕을 기린 사당의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낸 일행은 다음날 아침 사당에 도착했습니다.
홍수전은 용포를 입고 수염을 기르고 있는 감왕의 상에 고래고래 욕을 퍼붓으며 꾸짖었고, 감왕의 상을 두드려 패면서 그가 저지른 열가지 큰 죄악을 열거했습니다. 홍수전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습니다.
"이제 너는 짐을 알겠느냐? 네가 짐을 알겠다면, 너는 하루 속히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곧 홍수전의 충실한 조력자들은 감왕을 제자리에서 끌어내렸고, 상의 모자를 벗겨버렸으며, 수염을 잡아 뜯고 용포를 갈기갈기 찢어 두 눈을 뽑아 완전히 박살을 내버렸습니다. 홍수전은 난장판이 나버린 사당에 승리의 시를 걸어놓고, 감왕을 욕하는 포고문을 벽에 붙인 다음, 별로 거리껴하지도 않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았습니다. 다음날이 되어 일행은 다시 귀환했습니다.
홍수전이 천하의 감왕을 두들겨 패면서, 그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지역 내에서 치솟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풍운산도 유명해졌고, 배상제회의 존재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곧 반발 역시 강력하게 나왔습니다. 신성모독이라는 것ㅇ비니다.
지방의 신사들은 하나같이 분개하면서 홍수전과 풍운산에게 현상금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계평 현 지현은 골칫거리 같은 문제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만약 계평현의 지현이 괴팍한 사람이라면, 그래서 홍수전을 큰 위협으로 보고 조기에 그를 잡아들였다면 어떻게 됬을까. 역시 시시한 가정에 불과하지만, 상상해보면 묘한 일입니다.
어찌되었건 지금 보면 어린아이의 못된 장난같은 이 일이, 결국 종내에는 태평천국 운동의 제 일보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이 문제였습니다. 지현의 무사안일주의에 분개한 왕직신(王作新)이라는 한 신사는, 마을의 단련(團練), 곧 비정규군을 산으로 출동시켰습니다. 단련은 곧바로 풍운산을 "체포" 했습니다. 그는 지역의 한 사원에 감금되었습니다.
지도자나 다름없는 풍운산이 단련의 손에 떨어지자, 그와 같이 감왕을 박살낸 인물인 노육은 즉시 배상제회 신도들을 규합해서 재습격을 감행, 풍운산을 구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왕직신은 생각보다 독한 인물이었고, 지원병력을 더 보내 한번 더 공격을 가하고, 이번에는 풍운산과 노육 모두 붙잡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그 둘은 모두 계평 현 지현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들에게 첫번째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첫댓글 태평천국 에피소드가 재밌네요
지금은 저렇게 작은데 어떻게 나중에 전중국을 휩쓸게될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