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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원문굴과 사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십시요.ㅠㅠ
https://blog.naver.com/ktusjye/221555127186
15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어 한림항에 도착하여
14코스를 계속 역방향으로 걷는다.
정방향으로 걷는다면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서 시작하여
한림항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총길이 19.1킬로미터, 난이도는 중급이다.
한림항이다.
한림항 비양도 도항선 승선장이다.
국토의 막내로 불리는 넓지 않은 섬,
뱃시간이 맞다면 잠시 다녀올까, 대합실로 들어선다.
현재시각이 8시 반이다.
9시 배가 있으니 30분 후 출항이다.
하루 네 편 왕복운항하는
나오는 배 가장 빠른 편이 12.15분 이다.
오늘 14-1코스 완주를 목적으로 했으니
앞으로 28.4킬로미터 더 걸어야 한다.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비양도를 오가는 선박이다.
그리 크지않다.
일반 관광객은 승선장에서 대기중인데
마을 주민인듯한 아주머니는 짐을 옮기고 있다.
평일, 첫 배 시간임에도
관광객들이 대합실을 가득 메웠다.
한림읍 상대리에서 발원하여
9.26킬로미터를 흘러 한림리 바다로 스며든다.
한림항교 안쪽 일부 구간을 복개하였다.
한림 1리 마을 이름 유래가 소개되어있다.
'숲이 많다는 '다림동'이라는 옛이름과 함께
선비가 많이 배출되어 '한수풀'이라고 불리웠다.'
한림수협 경계 철조망을 지난다.
가릴것 없는 태양이 다소 부담스럽다.
바다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숨비소리다
옹포천 하구 앞 바다에
해녀들이 자맥질을 하고있다.
고려시대 원나라에 항복한 조정에 반대하여
항전을 벌였던 삼별초군이 남쪽으로 후퇴하아
1271년 탐라로 들어왔다.
고려와 몽고연합군 일만 이천여명이 정벌에 나서
1273년 삼별초 항쟁은 끝난다.
이 후 몽고는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를 두고
1,500여 명을 주둔시키고 약 100년 동안 지배한다.
고려 공민왕은 최영장군에게 명을 내려
1374년 전함 314척, 군사 25,605명을 동원하여
제주도에서 몽고인들을 몰아낸다.
명월천 하구에 있던 명월포,
지금은 농토로 개발되면서 토사가 밀려와 포구가 없어졌지만
삼별초군과 최영장군의 군선이 도착했던 곳이다.
옹포천으로 명칭이 바뀐 명월천 하구 옆 바다다.
비양도가 순하다.
마을 뒷쪽 밭에 누렇게 익은 보리가
계절을 기만하고 있다.
올레길이 오른쪽 골목으로 꺽어진다.
천주교 관련 인물, 지역, 사건을 별칭으로
묵주기도가 지향하는 네 가지 신비,
빛, 영광, 고통, 환희의 길에 화해와 은총의 길을 덧붙여
제주도 천주교구에서 순례길을 만들었다.
바다로 접어든다.
마을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보이거나
한지형의 기가 허한곳에 쌓아
부정과 악귀를 막는 돌탑, 방사탑이다.
위에는 돌하르방이나 동자석같은 석상,
또는 새 모양의 자연석이나 석상을 올려 놓는다.
전체적으로 사람 키 높이 이상으로 쌓으며
탑속에는 밥주걱이나 솥을 묻어둔다.
주걱으로 밥을 긁어 담듯
외부의 재물을 마을로 담아들이라는 뜻이고
솥이 무서운 불도 이겨내듯
마을의 재난을 막아달라는 뜻이다.
옹포포구 입구 해안에 방사탑이다.
돌지붕을 인 쉼터다.
고인돌을 형상하는 것 같다.
협재해수욕장이 건너다 보인다.
하얀 모래가 까만 화산석과 대비를 이루고,
수심에 따라 달라지는 물빛,
파란 하늘과 하얀구름이 대조를 이룬다.
비양도가 가깝다.
짙어지는 물빛이 아름답다.
곳곳에 야트막한 모래언덕,
풀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해조류가 걸친 풀등에
해산물을 찾는 사람이 보인다.
밤새 바닷물이 만들어놓은 경계가 허무하다.
조금씩 패퇴한 자욱이
간밤의 치열한 전투를 말해준다.
백전백패, 이길수 없는 싸움이지만
내일, 다음 날, 다다음 날 밤, 영원히 몰려들테다.
비양도에 닿을수록
물빛이 짙어진다.
5월도 중순으로 향하는 날,
태양은 거칠것 없이 내리치지만
섣불리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은 없다.
모래밭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모래사장 뒤로 야자수, 종려나무가 줄지어선 곳에
텐트와 캬라반이 자리잡고 있다.
돌담 뒤로 초가를 인 전통집이 보인다.
입구에 놓인 의자 하나,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일까?
단물깍이다.
용천수임에도 '물'이 아니다.
해변에 물이 빠져나가는 간조에는
소금기가 많아 마실 수 없었으나
만조가 시작되면 단맛이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해수욕 후 간단하게 씻는 장소다.
앞 쪽이 시끌벅적하다.
막 바다에서 나온 해녀가
태왁과 망사리를 메고 마당으로 오른다.
관광객과 해산물을 흥정하는가, 싶다.
싱싱한 해산물에 막걸리 한 잔쯤 하는 호사는
잠깐 누려도 괜찮겠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채취한 전복, 소라 등 해산물을 분류, 수집하고 있다.
아쉽지만 입맛만 다시고 돌아선다.
어촌마을을 벗어나 일성제주비치콘도 뒤,
해안가 풀숲으로 길이 이어진다.
한림바다목장 뒤 담 밑으로 연결된다.
크고작은 돌들을 평평하게 놓았지만
울퉁불퉁 걷기는 불현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걷기 편하도록 돌을 놓은 수고에
깊이 감사할 뿐이다.
해녀콩 서식지 안내문이다.
꽁깍지는 강낭콩과 비슷하지만
독이 있어서 먹을수 없단다.
물질하는 해녀가
원치않는 임신을 했을 때 먹었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단다.
올레꾼을 만난다.
잠시 들로 이어지던 길은
다시 암석을 깔아놓은 길로 이어진다.
역방향으로 가는 길이니
14코스가 11킬로미터 남았다.
바다로 뻗은 바위섬 건너는 다리가 보인다.
올레길을 잠시 벗어난다.
목책을 한 돌다리다.
규모가 작은 주상절리다.
다시 마을길로 나온 올레는
해안 목책 산책로로 들어선다.
좌우로 선인장이 자생하는 야생 군락이다.
'제주 월령 선인장 군락',
씨앗이 원산지 멕시코에서 해류를 타고 이곳으로 밀려와
모래땅이나 바위틈에 자리잡아 자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주민들은 뱀이나 쥐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선인장을 돌담 앞에 심기 시작했다.
검푸른 바다, 화산석을 점령한 모래가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다.
올레는 월령리, 월령천 하구에서
바다를 떠난다.
일주서로를 건넌다.
월령천을 따라 마을을 지나
산간으로 올라간다.
지역 특산물이 된 선인장이
너른 밭을 빽빽히 메웠다.
잎이 종이 한 장 가까운 넓이도 보인다.
봄이 이른 제주에
한껏 키를 키웠던 풀이 깨끗히 정리되어
말끔하게 길을 잇고있다.
월령천 따라 이어지는 길은
다리를 건너며 좌우로 이어진다.
고삐 묶인 말이 길을 차지하고 있다.
왠만한 이들, 특히 여성분들은
말이 비켜설 동안 한동안 어쩔줄 모를 것 같다.
다가가자 말이 비켜선다.
콧잔등을 쓰다듬으려 다가서니
얼굴을 돌린다.
말똥 쌓인 광경을 자주 보게된다.
문제는 말똥이 아니라
거기에 꼬여드는 날벌레다.
사람이 다가가면 흩어지면서 날아오르는데
여간 불쾌하지 않다.
3킬로미터 내외 천을 따라 이어지던 길이
숲속으로 들어간다.
기대와는 달리 바닥은
화산 쇄석이 촘촘히 박혀있다.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나선다.
다시 숲길이 시작된다.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들리는 기계음,
배합사료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선인장 마을에서 한동안 들어왔는데도
넓게 재배되고 있다.
세월의 풍상이 부스러트린
까만 흙 위로 길이 돌아간다.
남총낭, 종려나무가 키를 높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해도 믿겠다.
남총낭을 종려나무를 이르는 제주도 방언이다.
왼쪽에 민둥산이 보인다.
벤지 오래지 않은 풀들,
올레지기들의 수고로 짐작된다.
들판과 숲, 밭으로 이어지는 길이 계속된다.
'굴렁진 숲길'을 지나왔다.
움푹 패여 굴곡진 지형을 이르는
제주도 사투리다.
민둥산 비탈에 포크레인이 작업중이다.
쓰레기 매립장이 아닐까, 싶다
밭을 일구며
가운데 동산을 그대로 두었다.
찔레가 지천이다.
코에 대어보지만 향기가 맡아지질 않는다.
포장도로로 나선다.
누렇게 익은 밀밭이다.
청보리도 빛깔을 숙성시킨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도록 놓은 발판이다.
수확을 포기한 양배추에서
노란 꽃이 피어 올라 씨를 맺으려 한다.
육지와는 많이 다른 풍경이
마음을 끌어 당긴다.
농업용 급수탑으로 보인다.
한림읍을 벗어나는 곳,
어서오시라는 인사가 멋쩍다.
다시 숲길을 지난다.
특별히 큰 소나무를 지난 기억이 없는데
'큰소낭숲길'로 명명하였다.
올레길을 새롭게 이으며
길을 개척해 이름 붙였다는데
많은 세월이 흘러 걸맞는 환경으로 만드는 것도
제주올레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낭'은 '나무'의 제주도 사투리다.
숲길을 나와 갈림길에 선다.
지도를 오른쪽으로 방향을 표시하는데
길림길에 서서 보면
정면으로 밭이 보이고 철조망을 엮어
통행을 막아놓았다.
순간 드는 생각이
극소수 올레꾼의 지각없는 행동이
사유지를 내어 준 지주의 심경을 건드려
길이 폐쇄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멘트포장도로로 나서
50 여 미터를 지나도 이정표를 찾을수 없다.
혹시나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철조망 앞에 다다르니 밭에 붙은 샛길이 보인다.
수확을 포기한 양배추밭에
노란꽃이 지천이다.
한경면 저지리를 통과하는
용금로로 나선다.
다시 마을 길로 접어드는
봉긋한 봉우리가 솟아있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생명상)'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마음이 끌린다.
만약 코스에 없다면
조금 돌더라도 오를 요량을 한다.
잠시 후 시작할 14-1코스에는 없지만
13코스 구간으로 표시되어있다.
감귤 농장으로 짐작되는 비닐하우스를 지난다.
보호수 팽나무다.
2002년 지정당시 350년 이었으니,
수령이 360살을 훨씬 더 넘겼다.
회색 밑둥 높지않은 곳에서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넓은 그늘을 만들었다.
저지예술정보화마을,
13코스가 끝나는 곳,
14코스, 14-1코스 시작점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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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즈음은 전국일주를 날개를 단듯 훨훨 다니시는 파르라니님이 제일 부럽네요
학교 다닐때는 세계일주를 하시는 김찬삼씨가 부럽더니...
저는 15코스를 완주하신 걸로 읽었더니.....???
ㅋㅋㅋ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정리하려니 많이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