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준비
2022. 1. 9. 주일오전예배
오늘은 주님 모시고 ‘참된 준비’라는 제목으로 받은바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작년 10월부터 이 조국을 마음으로부터 품고 밤낮 줄기차게 기도로 준비해왔습니다. ‘우리 다시 함께 기도해요’라는 기도 성회를 이제 주님과 함께 이번 주 수요일 저녁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항상 세세하게 준비하시고 일을 진행하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제 주님의 돕는 자로 하나님의 일을 신실하게 섬기고자 한다면 이렇게 주밀하게 준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구약성서에서 두 군데, 신약성서에서 두 군데를 잠시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큰일을 앞둔 주님의 백성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생각한 준비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애굽 왕 바로에게 보내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명령을 내리셨지만 애굽 왕 바로가 강퍅한 마음으로 듣지 않으니까 열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셨습니다. 피 재앙부터 흑암 재앙까지 아홉 가지 재앙을 보내셨지만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끝내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최후에 장자의 죽음을 내리셨습니다. 그 재앙에는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도 포함되기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피할 길을 주신 것이 유월절이 된 것입니다. 일 년 된 어린 양의 피로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피 바른 집 안에서 불에 구운 양고기를 머리와 내장과 정강이를 먹었습니다. 바로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을 먹었지요! 예수님의 마음을 먹고, 예수님의 생각을 먹고, 예수님의 힘을 나의 힘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룩 없는 떡, 곧 무교병을 먹는데 순수하신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고 그리고 쓴 나물을 먹으면서 광야에서의 고난은 각오합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지팡이를 잡고 신발을 신고 있는 순례자의 심정으로 민첩한 준비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출애굽의 준비였습니다. 죄와 사망 그리고 세상과는 구별되어 주님의 부활의 생명을 힘입고 언제라도 깨어 일어나 주님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생각한 준비는 여호수아 5장 가나안 정복을 앞 둔 길갈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 전투를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직전에 요단강을 배수진 치고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광야 사십년의 기간 속에서 태어난 순수한 믿음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육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기 때문에 할례를 행하므로 육을 베어버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로 나를 넘겨버리는 자기 부인은 우리가 천국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전투에 앞서서 홀로 빈들에서 주님을 묵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사람들 곁을 떠나 홀로 주님을 묵상할 때 빈들에서 칼을 들고 마주선 주님의 군대대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당신은 우리 편이요, 적군 편이요?”라고 물어보지만 주님의 군대대장은 “아니다. 나는 주님의 군대대장으로 이제 왔다”고 하시면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이기적인 진영 논리가 아니라 뚜렷이 주님의 편에 속하기를 원하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사울 왕 같은 이는 다가오는 전쟁에 다급한 마음으로 먼저 주님의 백성 된 자세를 갖추기보다는 하나님을 억지로 자기편으로 끌어당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짓이었고 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세상과는 구별되고 주님께 온전히 속한 주님의 백성, 주님의 사람으로 서가는 것이 참된 준비일 것입니다.
세 번째로 생각한 준비는 바로 마태복음 26장과 다른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행하신 기도입니다. 겟세마네 기도의 중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기도로서 십자가를 짊어질 준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가 실패하면 갈보리의 십자가도 실패했을 것이고, 주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로 승리했기에 갈보리에서도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자신의 속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인격적인 고민이 저에게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떠한 십자가라도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달게 지겠지만 주님의 귀중한 일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심히 고민하여 죽고 싶은 심정이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그래도 달리 방법을 찾거나 피하기보다는 보좌의 주님 앞에 기도하고, 기도로서 힘을 얻고, 기도로서 주님께 은혜와 위로를 받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는 해답이 되는지요! 주님께서도 간절히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는 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제자들은 그 기도시간에 잠들어버렸고 기도에 실패하므로 곧장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한편 예수님은 그 겟세마네 기도의 중심이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였습니다. 예수님의 원하심은 당신 스스로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순수한 원함이셨겠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원하심대로만 순종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의 전적인 원하심과 그 지시하심에 철저히 순종하시겠다는 것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는 기도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면서도 자신의 원함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원함은 다 버리시고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그 목적과 방법까지 다 아버지의 원하심과 뜻대로만 순종하셨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순종이 오늘 우리에게도 절실한 참된 준비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살펴본 준비는 사도행전 1장의 예루살렘의 성전과 그 다락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사십 일간 이 땅의 제자들 곁에 계시다가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과의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기도에 잠들어버리고 마침내 주님을 배반하여 떠났던 제자들이 이번에는 살기등등하고 자신들의 주님을 못 박아 죽였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전심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것도 공적인 장소인 성전에서,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다락방에서 말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요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물론 세상의 위협이 두려운 자들은 떠나버렸지만 백 이십 명의 성도들은 하늘로 가신 주님을 간절히 그리워하고 앙망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기다리며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십 일간의 끈질긴 기도 끝에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 각자에게 임하여 오신 그리스도의 영은 바로 예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몸 된 교회는 시작되었고 그들은 바로 땅 끝까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된다”고 말씀하셨듯이 그대로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그렇게 기도로 알차게 준비되어 하늘보좌로부터 출발되었고 지금도 이 땅 곳곳에서 마찬가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삼일 앞으로 다가온 기도 성회를 앞두고 우리가 갖추어야 할 준비는 전적으로 내 주님과의 관계가 살아 있는 유월절의 그 밤과 길갈에서의 헌신과 구별된 자세 그리고 전심으로 기도했던 겟세마네와 예루살렘의 다락방이 우리 안에 살아 있어야 하고 한시도 기도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큰일이든 아니면 평범한 우리의 일상생활이든 하나님은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준비시키십니다. 주님의 일은 매사에 순간적이고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일꾼들을 통해서 미리 세밀하게 계획하시고, 알차게 준비하시면서 힘 있게 일을 진행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맡기신 작은 일에도 신실하게 섬겨가는 자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큰일도 주님 곁에서 돕는 영광이 있을 줄 압니다. 이제, 이번 주간에 주님이 우리 가운데 친히 오셔서 역사하시는 기도 성회에 참여하시는 몸 된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