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瀛丘(등영구)
石竇呀然處(석두하연처) 뚫어진 바위구멍 입을 크게 벌린 듯
巖花無數開(암화무수개) 무수한 꽃들이 암벽사이로 피어났네.
花間管絃發(화간관현발) 꽃 사이로 퍼지는 풍악소리 따라
鸞鶴若飛來(난학약비래) 신선태운 난 새 학 새 날아오르네.
서기 1939년(己未 首夏) 홍중징 짓다
제주도 오라동 방선문 계곡에 양효공(휘 重徵)께서 제주목사 재임 시 남기신 오언절구 詩
홍중징(洪重徵 1682~1761)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중흠(重欽), 자는 석여(錫餘), 호는 오천(梧泉).
증 좌참찬 홍탁(洪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성현감 홍주천(洪柱天)이고, 아버지는 판돈녕부사 홍만조(洪萬朝)이며, 어머니는 증 참의 권진(權진)의 딸이다.
삭녕군수, 장령, 한성부우윤, 형조참판을 거쳐 호조참판이 되었다. 공조판서에 이르러서는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80세에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고 치사(致仕) 봉조하(奉朝賀)에 봉해졌다.
분무원종공신 1등 공신에 책록.
저서는 『 완악 편(玩樂編) 』 3권, 「경 사증역(經史證易) 』 2권,『좌역참증(左易參證)』 2권 등이 있다.
시호(諡號)는 양효(良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