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시민권을 박탈당한 주체가 다시 시민권 회복을 청구하는 심사과정에서 사법부가 임상의학적 소견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임상의학적 소견이란 그 주체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계산적인가 항목들의 평가 결과에 기반하고 있었다. 덧셈과 뺄셈을 묻고 기억력 테스트를 통해 이성적 판단력을 평가하는 정신과 전문의의 질문은 내가 보기엔 결국 그 주체의 노동력 활용이 가능한가의 여부를 묻는 것으로 보였다. 충격이었다. 러시아라고는 하지만 혹은 러시아이기 때문이라 그런 것이라 나름대로 판단했지만 의문과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관련하여 질문을 했다. 다큐에 관한 이야기와 공동체 구성원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시민권 판단의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다른 사례들이 있는지. 그러나 활동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답변하지 못했다. 한 나라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하는 과정이 분명히ㅡ필요하기는 하겠지만 러시아의경우처럼 결국 그것이 노동의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국가는 여전히 스스로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는 혹은 못 할 것 같은 주체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어진 질문과 대화 속에서 진행자도 인권운동가도 정신적 장애우와 육체적 장애우들과 구분하지 않고 탈시설만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아 조금 의아했다. 탈시설나 시설 자체의 하드웨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시설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소프트 웨어의 문제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장애를 지닌 주체들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실천적 조치들을 국가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마련, 수행하고 공동체들의 또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공동체 구성원이자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 아닐까.
왜 살아남은 이들이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느껴야하는가. 대체 누가 이 아이들이기 이런 비극을 경험하게 만들었던가.
첫댓글 다큐를 불 커진 실내 영화관에서가 아니라 야외에서 상영하는 건 의미 있다고 봐. 그건 결국 우리들 주변의 이야기니까, 단절된 공간에서 특별하게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말이지.
하늘이 눈부시게 맑다. 햇살은 따끈하지만 큰 은행나무 그늘 아래 불어오는 바람은 눈 감고 음미하게 한다. 뒤쪽에서 "먼지가 되어" 노래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