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특수부대사 - 所謂 "공화국의 불사조" 이재영
1965년 7월18일 일요일 오후 6시.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송추유원지
백색 남방 셔츠에 양복 바지를 입은 네명의 사내가 두리번거리며 송추유원지 입구를 나서고 있었다. 노성집, 이재영, 우명환, 그리고 방금 이들 3명과 합류한 낯선 사내 1명이었다.
저녁 6시. 서울로 가는 버스 막차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하나둘 유원지 입구를 나설 시간이었다. 일요일이었으므로 유원지 입구는 제법 도회처럼 사람이 북적이고 있었다.
일행이 송추유원지 입구 금수장을 지날 무렵이었을까? 양복 차림의 건강한 사내 대여섯명이 이들의 앞길을 막았다.
"잠시 검문 좀 하겠습니다!"
노성집은 검문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수원 사는 노성일이라고 합니다. 일요일이라 후배들과 만나는 길입니다만"
"그래요?"
노성집은 상대방의 말끝이 올라가는 뉘앙스가 이상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일행 세명이 길가에 나뒹군 것은 거의 동시였다. 자기 이름이 노성일이라 밝힌 사내-즉 노성집은 땅바닥에 쓰러져 순식간에 포승줄에 묶여 버렸다. 이재영과 우명환도 뒷통수를 권총 손잡이에 맞아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재영은 이내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이미 그의 등에 사복 경찰 1명이 올라와 앉아, 포승줄을 메려하고 있었다. 방금 접선한 낯선 공작원이 변절했던 것이 틀림 없었다. 한국 경찰이 미리 포위망을 쳤던 것이리라. 어차피 죽은 목슴이다. 이재영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뒤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섰다.
"저 새끼 일어선다. 잡아"
이재영은 등뒤의 경찰을 뿌리쳤다.
"잡아. 저 놈 저쪽으로 도망간다"
이재영이 권총을 들이미는 또다른 사복 경찰의 손목을 걷어차며, 숲쪽으로 방향을 돌려 뛰었다.
-탕. 탕 타앙.
귓가로 새앵하고 탄환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재영은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탕
30미터. 이제 왠만큼 경찰을 따돌렸다고 생각했을 찰나. 뱃가죽에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권총 1발이 이재영의 뱃가죽을 뚫고 지나간 것이다. 이재영은 앞으로 푹 고꾸려져 쓰러졌다. 이재영은 잠시 주춤했으나 이내 배를 움켜 쥐고 다시 뛰었다. 뛰는 길만이 살 길이었다. 이재영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총소리와 고함소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재영. 이 자의 정체는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특수정찰부 소속 소좌(少佐)였다. 노성집은 역시 민족보위성 정찰국 특수정찰부 소속 소좌로 침투조 지휘관인 조장이었고, 소좌 이재영과 대위 우명환은 조원이었다.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임무를 띄고 침투한 정찰국 계열의 특수요원이었다.
이재영은 경찰을 따돌리고 정신없이 북으로 달렸다. 저녁 8시가 되자 기나긴 여름 해도 마침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서쪽 산 너머로 사라졌다.
이재영은 잠시 냇가에 멈춰섰다. 남방 셔츠는 배에서 흘러 내린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관통상은 입지 않았지만 권총 탄환이 뱃가죽을 찟어놓아 창자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쓰러졌을 때 흘러나온 창자에 흙과 풀이 엉켜붙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재영은 고통을 참으여 창자를 냇물로 씻었다.
그 길로 이재영은 계속 달려, 노고산, 검악산을 차례로 돌파하였다. 그리고, 창자가 흘러나오는 몸으로 임진강을 헤엄쳐 건너 남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을 차례로 돌파했다.
(과연 이 인간 인간이긴 한건가..?복부에 총상을 입고도 2개 산을 넘어서 강을 헤엄치고
초병이 지키고 있는 경계선을 돌파했다....허허 보통 군인들이면 총 맞았음 쓰러지는게 정석인디...)
1965년 7월19일 월요일 새벽, 휴전선을 경비하던 북한 민경부대 초병이 초소 앞에 쓰러진 이재영을 발견했다. 이재영이 부상을 입은 상태로 하루 밤 사이 무려 150리 길을 달려 출발지점으로 복귀한 것이다. 조장 노성집은 결국 생포되었지만, 이재영 뿐만 아니라 조원 우명환도 탈출에 성공했다. 이재영이 격투를 벌이는 사이 우명환도 도망을 친 것이다.
이재영은 민경초소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즉시 후송되었다. 이재영은 평양 10호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정찰국 군관이 창자가 튀어나오는 중상을 입고도 탈출에 성공하여 복귀했다는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공산주의 사회는 영웅 만들기에 능한 법, 더구나 선전효과가 있는 인물에 대한 대접은 누구보다도 철저한게 북한 사회의 특징이다. 김일성은 "이재영 동무는 공화국의 불사조"라고 격찬하면서, 영웅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일거에 3계급 특진(소좌에서 중좌, 상좌를 건너 뛰어 대좌로 임명)시켜 이재영을 대좌로 임명했다. 산삼을 비롯한 약제를 "하사"하기까지 했다.
관저로 이재영을 초대한 김일성은 "리재영 동무는 혁명의 불사신이야. 동무처럼 배알이 꿰져 나와두 살아 돌아 올 수 있는 불사조들을 양성하는 특수부대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재영은 "수령 동지의 모습이 태양처럼 밝게 길을 밝혀 주셨고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신념과 의지를 북돋아 주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일성의 말마따나 "배알이 꿰져 나와두 살아 돌아 올 수 있는 불사조로 구성된 특수부대"가 바로 제124군부대다.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이재영은 새롭게 창설된 제124군부대 대장이 되었고, 부부대장은 역시 탈출에 성공한 우명환 상좌가 임명되었다. 1.21 청와대 습격 도발을 일으킨 제124군부대가 이렇게해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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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 www.militaryreview.com SF707SMB님의 글입니다.
첫댓글 그냥 죽지..
이재영... 너 인간 맞냐;;
맞습니다. 저도 한번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일이 아마 실미도 부대창설과 1.21 사태의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124군은 북조선 민족보위성 특수정찰국 소속으로 31명으로 구성되어 1.21 사태를 벌였습니다. 아, 김신조 씨는 저기 어딘가에서 목사하고 계십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이재영 인간이긴 한거야?? 무슨 영화도 아니고..
이걸 누가 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