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한충(黃漢忠)
자는 양좌(良佐). 호는 우수(愚叟) ․ 백운거사(白雲居士). 훈도(訓導) 창(瑒) 아들, 서승(署 丞) 전(躔)의 증손. 연산군2년(1496) 生員시 합격. 출세를 단념, 우계(愚溪) 기슭에 정자를 짓고, 林泉에 숨어 학 문과 행실을 닦아, 생애를 자적(自適)했다. 그가 山水의 수려함을 즐겨 서식 소요(逍遙)하던 우계는 바로 지금 부석면 소재지에서 남쪽 5 리쯤에 있는「우수골」이란 마을이다. 여기는 낙화암천(落花岩川)이 골짜기를 누비며 절벽과 냇물이 어울려 굽이굽이에 볼 만한 경치를 펼치고 있어, 옛 詩人 소객(騷客)들의 유상(遊賞)하 던 자취가 남아 있다.
황한충의 아호가 우수(愚叟)였기에, 그가 살던 마을이라 하여「우수골」이라 이름했다 한다.
일찍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가 그를 찾아 와 詩를 주었으니
峨峨小白與天齊, 客到桃源路不迷. 我亦己成歸去賦, 莫誇君獨有愚溪.
드높을사 小白은 하늘에 닿고, 나그네 찾아드니 별천지로세. 風塵떠나 갈매기 벗한 나여니, 그대만 愚溪있다 자랑을 마소.
그는 詩文에도 능하여 <화당시고취(和唐詩鼓吹)> 2권을 지었는데, 주세붕(周世鵬)이 발문 (跋)을 썼다. 도고서원(陶皐書院)에 제향(祭享).
三判書 거쳐 右贊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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