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하나 둘 하얀 화강암묘비를 적시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묘비들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방울 한 방울…… 마치 서서히 물감이 퍼지는 것 같이 묘비들을 짙은 하얀색으로 색칠하고 있었다.
슈나이더는 팔 쪽에 걸고 있던 우산을 펼쳐 들었다.
아침에 우연히 차 안에서 발견했던 먼지가 여기저기 붙은 검은 우산이었다.
우산의 철 대가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뿜으며 펴지려고 했으나 엄청나게 녹이 슬어 중간도 채 펴지지 않았다.
열심히 힘을 주어도 붉은 녹 가루가 떨어져 나갈 뿐이었다.
그때 노인이 중간 부분을 지팡이로 두 어번 조금 약하게 내려치라고 했다.
이에 슈나이더는 지팡이로 우산 대 중간을 세게 내려친 다음 다시 천천히 펼치니 우산은 수월하게 펼쳐졌다.
그리고는 황급히 우산을 노인에게 씌우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 우산… 오랜만에 펴보는군..”
“네? 그럼..우산을 차 안에다 넣어놓으셨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보내왔다.
“한번 친구와의 추억을..되새기고…… 싶었네……크르륵……비 오는 베를린을……한스와 함께 걸었지....그래……언제나.. 함께..걸었지…콜록…그와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도 이 우산으로 호텔까지 갔지…둘이서 말이야..”
노인의 굳어있던 표정에 약간의 화색이 돌았다.
“막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었지..비가 엄청 쏟아졌고..우리는 비를 가리려고 우산을 앞쪽으로 기울이고 갔어……크흥……”
노인은 가래를 다시 한번 뱉고 약간의 침묵을 지키다 다시금 말했다.
“그러다가 둘이 가로등에 부딪쳐버린 거야……그래… 그때... 그래서...... 이 우산에 이상이 생겨 언제나 비가 ...쏟아질 때 펼치려 하면 이미 온 몸이 젖고 있었지……”
슈나이더는 노인의 얼굴이 다른 때보다도 밝아지다다시금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슈나이더…..자네도 이런 우산이 있는가?...”
갑자기 나온 질문에 약간 당황한 슈나이더는 답을 하려다 노인에게 풍겨나오는 분위기로는 단순한 질문 그 이상이라는 걸 알아챘다..
슈나이더와 노인간에는 약간의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슈나이더는
“저에게도 많은 우산이 있지만..이런 우산은..단 하나도 없습니다..아니 어쩌면 이세상에 선생님만이 지니고 있는 유일한 우산이겠지요…”라고 답을 붙였다.
첫댓글 발지 전투예기하는것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