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이 보는 세상의 모습
문화부 기자(김윤덕)님께서 "누가 한국 교회에 돌을 던지나" 글이다.
그는 왕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교회 일부 교회의 아집과 맹신은 오만한 현실 권력 빼닮아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로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했다.
그는 교회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곳이 교회였다" 그리고 "일제의 학살에서 신자들의 집이나 은신처, 차디찬 감옥에서 예배를 드렸다."
한국 교회는 100년의 역사를 통해 놀라운 부흥했다. 하지만 풍요와 안락의 위기 시대를 맞이하고,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복주의와 세습, 물신화로 한국 교회의 군열을 강타했다. 정부는 교회를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낙인찍으면서 신자들이 아탈하고, 국민 열에 일곱이 교회의 코로나 대응을 비난했다.
"혼돈의 뿌리에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근본주의 신학이 있다. 코로나 확산에도 일부 교회가 현장 예배를 강행한 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라는 십계명 때문이었다. 목회자 몇은 '방역은 사기'라고 선동했다. 그러나 페스트가 유럽을 휩쓴 16세기 초반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전염병을 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는 것이다. 나는 소독해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약을 제조해 머을 것이다. 전염병을 퍼뜨리는 일은 마귀의 행동과 같다'고 했다
일부 교회의 아집과 맹신은 놀랍게도 현실권력을 닮았다. '믿습니다'만 외치면 구원받는 다는 반 지성은 '우리 주군은 무오류'라며 맹종하는 무리와 닮았고,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란 구호는 내 편이 아니면 적폐로 응징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회개와 성찰은 없고, 궤변과 요설로 대중을 현혹한다. 우상 숭배, 광기의 집단들이 대개 그러했다.
온라인 설교로 만난 신학자 김경진(소망교회 담임목사)는 '하나님이 이 땅에 전염병을 허용한 것은 이단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독단으로 가득한 교회의 모습을 똑바로 보게 하려는 경고'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과연 세상의 빛과 소금인가?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변화하고 행동하는 신앙의 전환점이었던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은 교회 지도자들의 회개와 눈문에서 시작됐다. 일제 탄압에도 교회가 민족의 소망이 된 것은 병든 자를 치료하고, 주린 자를 먹이며, 십자가 고난도 마다하지 않은 예수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는 대신 독단과 단죄로 치달을 때 교회는 파시즘의 희생양이 된다. 실정을 감추려 코로나를 악용하는 이들에게 또 한번 마녀사냥의 빌미를 주는 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누가 한국 교회에 돌을 던지나" 김윤덕 부화부장
지금까지 현상을 보고 김윤덕 문화부장이 글을 기록한 내용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가?
하나님은 한국 교회에 무엇을 원하시는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는데 "독단과 단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정부의 입장에서만 자신들의 합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일부 교회는 자신의 신앙적인 관점에서 합리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다양성을 뉴스와 신문은 무엇을 위해 편파적인 보도와 사람들을 선동했을까?
사람은 다양하고, 생각은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흔색으로만 만들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한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총과 칼로 대응하고 있다면
누가 한국 교회에 돌을 던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