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포도주 (잠 23:32-33)
32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이 시간에 “세속의 포도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술에 대한 교훈이 많은데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부분이 더 많습니다. 그만큼 술은 중독성이 강하고 위험한 식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포도주를 여러 비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기도 하고, 성령의 은혜를 상징할 때도 있는데, 계시록 18장에서 포도주를 해석해 보면 세상 세속 세상정욕에 비유하여서도 사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포도주에 취한 모습은 세상에 도취된 타락한 인생의 모습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포도주를 세속 세상사랑에다 비유하면서 교훈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세상을 사랑하면 심령을 괴롭히고 죽이기 때문입니다.
32절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참고로 이런 문장을 대구법 문장이라고 합니다. 대구법이란 어조나 어세가 비슷한 어구를 둘 이상 짝지어 내용을 강조하거나 보완하는 수사법으로 성경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독특한 화법입니다.
그러니까 대구법으로 해석해 보면 포도주가 뱀처럼 물기도 하고 독사처럼 쏘기도 한단 말입니다. 뱀은 한 번 물면 이빨의 구조 때문에 뱉어내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 뿐 아니라 제 몸보다 더 큰 것도 삼킵니다. 이처럼 술은 한 번 시작하게 되면 중단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중독성이 강합니다.
그리고 독사가 쏘면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듯이 독주에 취해 살면 결국에는 그만큼 큰 상처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술 마시는 자는 재물을 잃습니다. 건강을 잃습니다. 분쟁을 일삼습니다. 악한 성품을 쌓습니다. 곧잘 분노합니다. 지혜를 잃습니다. 그래서 "술은 범죄의 아버지요, 추한 것의 어머니이다." 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죄악에 도취되면 우리 심령은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딤전5:6에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심령이 죽습니다. 이 말씀은 특히 과부에게 한 말씀인데 외로울 때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해야지 다른데 마음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마음 주지 말고 마음의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세요. 삼손과 같이 하나님께 능력으로 크게 쓰임을 받던 사람들도 머리카락이 베일 때 능력을 잃음과 같이 마음으로라도 세상을 사랑하면 우리 심령은 독사나 전갈과 같이 쏘임을 당하여 죽게 됩니다.
그래서 딤전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렸도다” 했고, 고전15:56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했습니다.
죄의식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범죄해도 모르고 살다 지옥에 떨어지지만 성도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회개하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죽은 자나 같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666이 뭐냐고요? 베리칩이 아니라 죄입니다. 6은 세상수로서 완전수 3개니까 단순한 세상이 아닌 세상적인 것을 말합니다. 땅의 짐승을 여섯째 날 만드셨듯 짐승의 수이기도 합니다. 육신적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 임금이 사탄이니까 6은 사탄의 수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럼 세상적이고 육신적이고 마귀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약3:15-16에도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그러니까 세상을 사랑하고 죄 가운데 사는 것이 666입니다. 그래서 범죄한 심령이 회개치 않는다면 666과 같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정죄의 불길이 그 심령에 세세토록 타오르는 것입니다.
2. 세상을 사랑하면 영의 분별력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33절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술 취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상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말로 괴이하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말이고, 구부러졌다는 것은 망령되고 비이성적이고 반도덕적인 것을 뜻합니다. 술 취하면 판단력이 떨어져서 실수를 저지른다는 말입니다.
아라비아에 전해지는 이야기인데 하루는 악마가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 "너의 죽을 때가 다가왔다. 세 가지를 제시할 테니 그 중에 어떤 것이든 한 가지만 선택하면 너는 살 수 있다. 네 어미를 죽이든지 네 누이를 팔든지 그렇지 않으면 큰 술잔으로 술 열 잔을 먹든지 선택하라."
그래서 이 사람이 "잔이 아무리 크더라도 술 열 잔을 먹고 말지 어떻게 어머니를 죽이고 누이를 팔겠느냐?" 그런데 이 사람이 술에 취하여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제 누이를 팔았고 나중에는 제 어머니까지 죽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술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잠31:4-5에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했습니다. 가장 판단을 잘해야 할 왕과 재판장이 술에 취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고 도취되면 영분별을 상실합니다. 세상 것이 좋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죄가 죄로 보이고 악이 악으로 보이고 지옥이 지옥으로 보여야 사는데 죄가 좋게 보이니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이 록음악에 빠져 사탄을 노래하고 악을 노래하는 광란의 음악과 춤을 춥니다.
사탄은 음악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음란, 마약, 폭력, 자살, 우상, 사탄 등에 빠지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 권위에 도전함에서 찌릿한 맛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록음악 스타들이 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처럼 마음의 세상이 남아 있으면 사탄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보게 하고 듣게 하고 말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의 소리를 들려준다는데 내용이 그럴듯해도 그것은 악령에 접신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들에게는 피의 복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도 마귀가 시험했는데 세상을 사랑하는 심령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3. 세상을 사랑하면 대단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34절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이런 일은 서커스 하는 사람들도 어려울 것입니다. 마술사들도 눈속임으로만 보여줄 뿐 바다에 누우면 빠져 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바람 불고 흔들리는 돛대 위에 어느 누가 누울 수 있겠습니까? 술에 빠져 있는 것이 그렇게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속담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며, 술이 사람을 마신다.”했습니다. 시루스는 말하기를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보다 사자보다 술이 더 위험합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골3:5-6에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고, 약4:4에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두들겨 맞을지 불안 불안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법을 사랑해야 합니다. 시119:165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4. 세상을 사랑하면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35절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즉 술에 정복당한 자는 육체적 도덕적 감각을 잃어버리고 더욱 깊이 술에 빠져든다는 말입니다. “다시 술을 찾겠다.” 이 말씀은 구제불능이라. 이렇게 술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잡히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주지 않으려고 함과 같이 세상은 그 사람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세상 사랑에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직도 마음에 세상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더 십자가 복음에 서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성령의 은혜로 온전히 이 패역한 세대에서 출애굽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이 죄악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이지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세상이 얼마나 악한 것임을 깊이 깨닫고 예수님의 이 승리의 복음에 서서 온전히 믿음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고 승리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