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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9일 안동시 이송천동 제비원옆 일죽재( 내자 옥자) 판서공파 20세 할아버님의 시제를 올렸습니다 안동지방에서는 문인으로 알려져있는 큰 어른신 입니다. 일죽재 (내자 옥자) 할아버님의 자손께서는 연락 하여 주시면 고맙겠 습니다. 011-9573-2006번 일죽재 할아버님의 내력 1525년(중종 20)∼1616년(광해군 8).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계이(啓而)이고, 호는 일죽재(一竹齋)이다. 본관은 영월이고, 출생지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南面)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조부는 신세전(辛世筌)이고, 부친 행 충좌위부사직(行忠佐衛副司直) 신중곤(辛仲坤)과 모친 정부인(貞夫人) 광주김씨(光州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으로 신내임, 신내종. 신정업이 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친하게 교유한 인물로 동문수학한 겸암(謙菴) 유운룡(柳雲龍)‧송암(松菴) 권호문(權好文) 등이 있다. 그 밖에 풍암(楓菴) 문위세(文緯世)‧윤강중(尹岡中)‧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등과 학문적 교유를 나누었다.
1558년(명종 13) 식년시 진사 1등 5위로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매진하였으며, 뜻을 같이하는 문인들과 함께 경광서당(鏡光書堂)을 지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순수한 성품과 덕을 갖췄고, 넓은 기량을 품었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사후에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슬하에 아들 신홍입‧신의입.신정입.신덕입을 두었다. 후손들의 주거지는 신홍입,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한골) 거주 신의입, 예천군 감천면 미석1리(석남) 거주
신정입, 충북 단양군 적성면 거주 신덕입, 경북 영주시 평은면 평은리 거주 저서로 필사본 『일죽재집(一竹齋集)』이 있는데, 훗날 아들 신홍립의 『추애집(秋厓集)』과 신의립의 『죽옥집(竹屋集)』을 함께 엮은 『낙양세고(洛陽世稿)』에 실려 전한다
신홍립(辛弘立)할아버님에 대하여 1558년(명종 13)∼1638년(인조 16). 조선 중기 문신‧학자. 자는 공원(公遠)이고, 호는 추애(秋厓)이다. 본관은 영월이다.부친 진사 신내옥(辛乃沃)과 모친 충순위(忠順衛) 남구수(南龜壽)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 사이에서 태어났다.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12년(광해군 4)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춘추관기사관이 되었다. 외직으로는 무안(務安)‧용인(龍仁)의 수(守)를 지내고 귀향하여 가훈(家訓)을 전수하였다. 이후 동문(同門) 40여 명과 함께 스승 권호문선생을 재사하면서 추모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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