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항아리같은 유다!
예레미야는 항아리 깨기 퍼포먼스로 유다 왕국의 운명을 선고합니다.
유다 왕국은 깨진 토기장이의 그릇처럼 아무런 쓸모없이 될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도 같은 비유를 통해 민족의 운명을 예고하였습니다.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사 30:14).
하나님의 심판 예고는 마치 항아리를 깨뜨리듯 실감나게 전달됩니다.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시 2:9).
요한계시록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심판 역시 토기를 깨뜨리는 일에 비유하였습니다.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계 2:27).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서 백성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함께 동행합니다.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2).
그곳에서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을 향해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3).
‘이 곳’은 구체적으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이며, 또 예루살렘 전체를 뜻합니다.
백성들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다른 신에게 분향하고, 바알에게 번제를 불살랐습니다.
그들은 이 곳에서 자식들을 제물로 바쳤기에 죽임의 골짜기로 불렸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리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7).
자식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던 그 사람들은 이제 자식들을 잡아먹는 지경에 놓일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동행한 사람들 앞에서 그 옹기를 깨뜨렸습니다.
한번 깨진 토기장이의 그릇은 더 이상 쓸 수 없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11).
깨진 옹기는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예고 역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묵상
1) 토기장이는 터진 진흙 반죽으로 다른 것을 만들 수 있지만(렘 18:4), 깨진 옹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토기장이일지라도 가능성이 없는 셈입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행한 예레미야의 퍼포먼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2) 예레미야의 심판 예언은 선지자 자신을 피할 수 없는 구석으로 몰고 갑니다. 심판 예언의 강도가 쎄면 쎌수록 선지자는 권력의 박해로부터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선지자의 예언활동은 자기 자신을 점점 옥죄는 행위였습니다.
일용할 기도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 2:8)
1) 주님, 우리 시대에서 여러 가지 방식, 현상, 징조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믿음의 눈과 떨리는 가슴을 허락하소서.
2) 나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시 1:1)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