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작가들의 폐끼치지않는 작업으로서의 축제이기를
2003-10-22 오전 11:07:17
축제나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작가나 예술가들 혹은 기획자들에 의해
준비되고이뤄지는작업은
어찌보면 그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민폐를 끼치는 작업으로 일관되어있는 느낌이든다.
예술가들의 자기작업을 보여주거나 드러내기위해서
그 일방적인 당위성으로 인해서
서슴없이 민폐를 끼치고 그 민폐를 통해서
하나의 이기적인 축제가 이뤄지곤한다.
민폐는 여러종류다.
우선 원치않는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
극장과 거리 공연장소를 찾는과정과
후원과 협찬 스폰등을 찾는 과정에서
끼치는 민폐.
그리고 공연과정을 통한
이 축제를 원치않거나 무관심한 불특정다수의 비관객에게
끼치는 민폐.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끝까지 보게하는
작품이란 강요로 끼치는 민폐.
플라타너스페스티벌은
이 모든 민폐를 유의하면서
세상에 가장 낮는 사람으로서의 겸손한 자세로
자신이 들려주고싶은 얘기를 준비해서
들려주고 가는 제안자 혹은 순례자의 태도를
찾아보려는것.
그래서 작업은 자기를 버리는 작업
즉 자신의 얘기가 아닌
나아닌 남을 위한 얘기를 만들어서
그들을 위해 그들의 아픔이나 슬픔을 위해
예술가가 해줄수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업을 모아서
아무런 욕심도 없이 자만도 없이
세상의 공기를 전환시켜주기위해
서있는 이름없는 들풀이나 나무같은 자세로
존재해보는것.
그것이 모이면
진정 세상에 필요한 축제 즉 페스티벌이
만들어지지않을까?
플페를 준비하면서 작가들에게
이런제안을 하고
이런 이유로 작업하고자 동의하는사람들이
그런 이유와 화두에 합당한 작품을 준비해서
아무런 포장이나 광고도없이
어느곳에 나타나 겸손하게 얘기하고
추스려 돌아가는 작업을 하자고
얘기하고싶었다.
작가들이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읽어주고
다가온다면
우린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폐끼치는 일없이
조용히 다가와 바라볼 사람들만을 위한
그런 고운 기다림을 담을수있을것이다.
나의 감정이나 나의 현실적문제에 대한 고뇌는
공연화되면 또다른 이기심을 충족시키고
또다른 불만의 집단을 공유확대시킬뿐
세상을 아름답게하는 가치를 지니지못한다.
구도자나 순례자의 몫을 맡은 예술가들의 길은
나아닌 다른사람들의 아픔과 공동체로서의
우주안에 소외층을 찾아서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기억하고 사랑을 찾아 실천하는
자기버림의 작업이었으면한다.
매년 10월29일 하루만이라도 그랫으면한다.
그리고 그 얘기에 스스로 절실히 공감한 사람들이
자기버림으로 스스로 다가와서
자기를 버리고 세상의 다른 생명체들만을 위해서
아름다운 존재의 방식을 제안하는 작업이
축제를 이루었으면한다.
올해도 그 얘기를 공유하며
가슴아픈 얘길 나눌 사람을 찾지못한채
또한번의 외로운 페스티벌이 진행된다.
내년엔 일년간의 자기일상에서 해방되어
이 축제를 진정으로 준비하는 과정을 함께할
작가가 한명이라도 함께했으면 좋겠다.
여러축제를 다니면서 가슴아픈것은
작가들은 수십편의 아름다운 얘기를
축제기간동안에 쏟아내지만
그 공연시간이 끝나면 아무도 그 아름다움으로
존재하지못한채
술과 방담으로 축제기간을 지세거나
경제적 기획면에 열중하면서
자신이 그린 얘기를 소외시키고있다는것이다.
겸손하고도 아름다운 자기버림의
세상에 대한 사랑만을 갖고다가와서
그날내내 그 얘기만 서로나누며
그리워하고 존재의 방식을 논의하다돌아가는 날이
1년에 하루만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날 아무것도 먹지못하고
관객도 없는 외로운 길거리에서
그저 추운바람안에 쪼그리고 앉아있엇더라도
그날을 축제의 날이었다고
얘기할수있을것이며
또 다음해의 그날을 기다리며
또다른 화두로 조금이라도 진화하여
다시만날 만남의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