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신은 지옥신>
밤낮이라는 양면성은 물론이고, 남녀, 선악, 화복, 길흉이라는 양면성은 영원히 인간과 함께 존속할 인간 세상의 운명적 공생자이다. 밤이 없으면 낮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고, 남성이 없으면 여성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고, 선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악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다. 왜 그럴까? 하나뿐이므로 선악이라는 양성 개념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면성을 부정하는 유일성은 세상의 기본원리도 모르는 바보 중의 바보들이 부르짖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도 오늘도 유일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정말 많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양면성과 유일성은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더욱이 상식적 차원에서 볼 때 양면성이 인간 세상의 본질이지 유일성이 인간 세상의 본질이 아니다. 남자뿐인 세상과 여자뿐인 세상, 비오는 날뿐인 세상과 맑은 날뿐인 세상, 범죄자뿐인 세상과 상받을 자뿐인 세상, 그런 세상은 이미 지옥 중에서도 가장 흉측한 지옥이 될 것이다.
맹자(孟子)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惡)을 거부하고 선(善)을 실행하려는 마음씨, 즉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순자는 이와 정반대로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고 전제하면서, 인간사회는 그런 본능적 욕망이 자라나 서로 뺏고 빼앗는 쟁탈전을 벌이게 되므로 도덕과 질서가 파괴된다는 성악설을 주장하였다.
맹자가 말하는 인성(人性)은 사람의 마음씨를 의미하고 선악(善惡)은 도덕적 가치를 의미한다. 순자가 말하는 인성은 욕망을 의미하고 선악은 사회적 치란(治亂)을 의미한다. 순자는 인성이 비록 악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후천적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선한 방향으로 교정(矯正)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 일을 “위(僞)”를 쌓는 일이라 하였다.
여기서 “위(僞)”는 우리가 일상 말하는 거짓이라는 뜻의 허위(虛僞)가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내는 “인위(人爲)”를 의미한다. 인위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욕망과는 구분이 되는 개념으로서 인간의 능동적인 작위(作爲)를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선천적 인간의 본성을 후천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만 있다면 범인(凡人)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부터 작용을 가해 인성을 교정하는 작업을 교육이라고 하였다.
공자는 인(仁)을 강조하고 맹자는 인과 의(義)를 강조하였다. 이는 모두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발하는 요소이고, 천명(天命)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순자의 예(禮)와 의(義)는 외재적(外在的)인 것이다. 즉, 인간이 만든 외재적인 규정으로 인간을 규제하고 인성의 방향을 바꾸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禮)와 의(義)는 법률과 유사한 뜻을 가지므로 한비자(韓非子)의 법가(法家) 이론에 영향을 준 바가 크다.
유가(儒家)는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 근거를 천(天, 하늘)에 두고 천명(天命)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반면, 도가(道家)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지혜와 일체의 작위를 물리치고 자연의 질서에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순자는 도가(道家)의 자연관을 받아들여 유가(儒家)의 천도관(天道觀)을 변질시켰다. 천(天)이 바로 자연이라고 이해하고, 초자연적 존재인 천명을 부정하였다. 또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도가가 주장하는 무위자연도 거부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을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순자는 위와 같은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성악설이라 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가 만악(萬惡)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라는 존재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유일한 존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떤 악도 서슴치 않게 되므로 악(惡)이 만연(蔓延)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일성(唯一性)은 불행과 만악의 근원이 된다.
유일성이 불행과 만악의 진원지가 되는 이유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증명된다. 오직 밥, 오직 빵, 오직 치즈뿐인 세상, 즉, 김치없는 치즈뿐인 세상, 치즈없는 김치뿐인 세상, 그 세상이 얼마나 지겹고, 불행하고, 지옥 같은 세상일지는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혼자 권력을 주무르는 독재자, 혼자만 옳은 독선자, 부모형제가 없는 외톨이 고아, 오직 유일신뿐인 세상, 그런 세상도 지옥같은 세상일 것임은 분명하다.
유일신을 믿는 광신자들이 자기의 믿음과 다르다 하여 인류의 문화유산을 마구 훼손하는 것만 보아도 이는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다. 나의 신만 하늘같은 유일신, 반대로 너의 신만 하늘같은 유일신, 그런 유일신은 지옥신이 되고도 남는다. 오직 하나, 그것은 오직 불행, 오직 지옥일 뿐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신(神)도, 삼라만상도 더불어 사는 세상이어야 할 것이다.
손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