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백마사단 봉로만의 굴욕

[박경석]

   베트남전 백마사단 봉로만의 굴욕

                                                                         박경석

                                                             맹호제1진 초대 在求大隊長(예 육군준장)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통일 신라 문무왕 13년(서기 637년), 김유신 장군이 노환으로 눕자 문무왕이 직접 병석을 찾아 장군의 쾌유를 위해 위로했다. 김유신 장군이 병석에서 왕께 진언한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리더에게 있어 되새겨야 할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에 잘못하는 임금이 드물고 끝에 잘하는 임금이 적어서 애써 쌓아 놓은 공적을 하루아침에 망쳐 놓은 예가 많습니다.』

바로 노장군이 죽음에 처해 임금에게 충언한 글의 일부분이다. 이간단한 진리는 ‘유종지미(有終之美), 즉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해야 결과가 좋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면서 끝까지 이를 지키는 리더들이 흔치 않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서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은 큰 업적을 쌓고서도 끝에 실패해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던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가면 오만해지고 탐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유신 장군은 삼국통일의 주역이면서도 권력을 탐하지 않고 끝까지 정도(正道)를 지킨 위대한 장군이었다. 물론 그 성웅 반열에 정유재란 마지막 해전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순국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의 끝을 이렇게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사르고 승전한 예는 흔치 않다. 당시 적국이었던 일본인들도 가장 위대한 해장(海將)으로 이순신 장군을 추앙한다.

전투 시 적의 목표를 탈취한 후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적의 역습에 대비, 철저한 경계태세를 갖추는 일은 어느 나라 군대에서나 필수적인 야전지휘관의 리더십에 속한다. 즉 모든 군사 활동에서 끝마무리에 대한 중요성은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열쇠가 된다. 월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 종전무렵에 들어서면서 이 상식적인 진리를 일탈한 사건 사고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맹호사단에서는 19번도로 안케패스전투의 치욕을 들 수 있고, 백마사단은 1번도로 붕로만 사고를 빼놓을 수 없다. 이무렵, 이세호 장군의 주월한국군사령부는 지휘기능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었다.

1968년 1월, 월맹군과 베트콩의 구정공세를 계기로 시작된 미국과 공산군측의 평화협상으로 미군이 월남전에서 감축되기 시작했으며 주월한국군 또한 철수 문제가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주월한국군의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자질구레한 스캔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미국은 정치적인 이유로 휴전을 위한 대책을 차근차근 진행시키고 있었다. 월남전이 심상치 않은 기류를 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휴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미국은 마침내 1973년 1월 27일 자정(현지시간 1월 28일 08시)을 기해 휴전이 결정되었음을 공표하였다. 이에 따라 주월한국군의 철수 또한 확정되었다.

미군과 한국군의 철수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한국군의 제1단계 철수에 이어 제2단계 철수에서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철수 과정에서 베트콩이 1번도로를 차단한 탓이었다. 험준한 봉로만 고개는 백마사단 제29연대의 북단에 위치하여 이곳을 넘어 북쪽으로는 투이호아에 이르고 반대쪽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면 나트랑에 이른다. 이 1번도로는 우리나라 서울과 부산 간 1번도로와 비견되는 중요성을 갖는다. 당시 이 도로의 험준한 봉로만 고개에 대한 경계책임은 백마사단 제29연대 제1대대가 담당하고 있었다.

휴전을 하루 앞둔 27일 밤 23시경, 투이호아 남방 17km 지점인 제1대대 2중대 지역에 있는 봉로만 고개의 목교가 베트콩에 의해 폭파되면서 이 교량을 경계하던 소대진지가 적에게 유린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귀국에 들떠 경계를 제대로 안하다가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베트콩은 ‘현상 동결의 휴전협정’에 따라 그들의 지배지역을 증명하기 위하여 베트콩기를 휴전 전날 밤 전국적으로 게양하라는 월맹의 비밀지령에 의해 기습을 계획했던 것이다. 이 비밀지령에 따라 제29연대 책임지역의 베트콩들이 1번도로의 관할권을 선점하기 위해 1번도로 상의 봉로만 고개의 목교를 휴전 직전에 탈취하여 휴전 발효와 함께 베트콩기를 게양하기 위해 감행된 사건이었다.

백마사단의 소대초소가 베트콩에 의해 유린되고 소대 책임하에 경계를 하고 있었던 교량에 베트콩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는 보고는 이세호 주월한국군사령관, 김영선 백마사단장, 배원식 제29연대장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사단장과 연대장의 질책을 받은 제1대대장 유재민 중령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날이 밝자 자신이 직접 현장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3중대에서 1개 분대를 차출하여 함께 장갑차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 도착시간은 06시 55분이었다.

휴전 발효 불과 1시간 5분을 남겨 놓은 아슬아슬 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대장 일행은 베트콩을 우습게 알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장갑차에서 내렸다. 대대장과 분대 병력은 교량에 게양된 베트콩기를 발견하였다.

“웃기는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베트콩기를 달아.”

코웃음 치며 교량에 다가갔다. 맨 앞에서 경계도 않고 깃발을 끌어내리기 위해 교량에 접근한 심재철 중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문제의 베트콩기를 뽑아가지고 장갑차로 돌아가려고 할 때 부근에 잠복하고 있던 베트콩이 일제히 사격을 가하며 B-30적탄통을 발사했다.

순식간에 대대장 유재문 중령과 심재철 중사 등 6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

연대장 배원식 대령은 보고를 받고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그 일대에 포병사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베트콩은 암석지대의 천연동굴에 몸을 숨겨 아군의 포병화력에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지금 연대가 당면한 문제는 적의 제압이 아니라 숨진 시체의 회수에 있었다.

특공조까지 투입하며 시체 회수 작전에 돌입했으나 적의 저항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사단장은 시체를 회수하고, 이 적을 격멸하기 위해 사단 수색중대와 제29연대 제2대대 등 4개 중대를 투입하는 작전계획을 세웠다.

이 사고로 흥분해 있던 이세호 주월한국군사령관은 소탕작전계획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저녁무렵 작전이 개시되려는 시점에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세호 사령관이 하찮다고 생각했던 베트콩에 의해 아군이 희생된 것에 흥분해서 작전을 승인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휴전이 발효된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가 휴전이 발효된 것을 깨닫고 취소시킨 것이었다.

김영선 사단장은 적의 응징보다 부하의 시체 회수의 긴박한 사정이 있었으므로 재차 승인을 요청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세호 사령관과 김영선 사단장은 티격태격 언쟁하는 낯부끄러운 리더십의 맹점을 그대로 표출하는 추태를 부하들에게 보였다.

이 목교 외에도 계속 사고가 이어졌다. 제28연대 지역 교량 4개가 폭파되었고, 제30연대 지역에서는 1번도로상의 중요 대교가 폭발되었다. 계속해서 29연대 지역의 6개 교량이 파괴되었다. 이로써 부대의 철수작전에도 큰 문제가 생겼다. 교량이 끊어져 철수로 확보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베트콩기가 게양된 곳은 봉로만 목교뿐만이 아니었다. 제28연대지역의 8개소, 제29연대 지역과 제30연대 지역, 심지어 사단사령부지역까지 무려 15개소에 44개의 베트콩기가 게양되었다. 마치‘ 땅 뺏기 게임’에서 무저항 상태의 일방적 게임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이제 속수무책이었다.

이 지경에서 상황 국면 전환은 어렵지만 장병의 시체만은 회수해야 했다. 연대장 배원식 대령은 닌호와 군청에 파견했던 연락장교 이형관 대위에게 확성기가 달린 장갑차를 빌려 오도록 하여 백기를 달고 현장에 보냈다. 그리고 확성기를 통해 적측에 방송을 했다. 베트콩을 우습게 보고 승승 장구하던 주월한국군이 백기를 달다니, 굴욕적인 장면이었다.

“우리는 휴전협정을 지켜 공격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리는 숨진 장병의 시체를 찾아야 되고 그래야만 철수를 할 수 있다. 시체를 돌려 달라.”고 애걸하였다. 아마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자세로 베트콩에게 사정 사정한 예는 이 경우가 유일한 경우일 것이다. 이렇게 확성기를 통해 2일간에 걸쳐 그들을 설득시켜 겨우 시체를 회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굴욕적인 과정을 겪어가며 백마사단 제29연대는 1번도로를 사용하지 못하고 미군 수송기를 이용하여 도망치듯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제29연대는 2월 3일부터 6일 사이에 C-130 수송기로 3,900명의 병력을 39회, 화물 3,080톤을 77회 움직여 나트랑 공항으로의 철수를 완료하였다.

주월미군과 주월한국군이 철수하자 월남은 곧바로 위기로 치달았다. 당시 월남군에는 월맹군과 베트콩의 공격으로 궤멸되어 없어져버린 사단이 계속 늘고 있었다. 모든 전선에서 최악의 상태로 고전하던 월남군에게 1975년 4월 21일 티우 월남 대통령의 사임 소식은 더욱 충격적인 문제를 야기했다. 수도 사이공은 마치 무정부 상태의 혼란한 도시로 변했고, 노골적인 집권층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월남 정부의 위계질서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이 혼란의 와중에 1975년 4월 28일 두옹반민 장군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민Minh의 해결안’이라는 새 대통령의 협상안은 공산주의자와 타협한다는 것이었다. 민 대통령은 자기가 영도하는 정부는 공산주의자의 지지를 받을 것이며 그들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협상해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는 민 대통령의 뜻대로 해주지 않았다.‘ 우리가 왜 군사적인 승리를 앞두고 꼭두각시와 협상하겠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때서야 민 대통령은 꿈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공산주의자 손에 넘어간 뒤였다.

이렇게 하여 사이공 정부는 공산주의자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민 대통령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공산주의자에게 굴복했다.

1975년 4월 30일 10시, 민 장군이 대통령에 취임한지 48시간 만에‘ 자유월남’이라는 국가는 흘러간 역사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야전지휘관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리더는 승리의 끝자락에서 또는 어려운 국면에 부닥쳐 있을 때 최후까지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여기에 남긴다. 세계가 맹호사단, 백마사단, 청룡여단의 주월한국군을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전투부대라고 극찬하던 그 끝자락에서 맹호와 백마의 비극적 굴욕적 추태는 승리감에 도취하고 있었던 지휘관의 리더십 결여에 있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조국 대한민국은 전진에서 발군의 전공을 세운 장수 채명신은 멀고 면 수웨덴 대사로 유배 아닌 유배했고 굴욕의 장수 이세호는 승진시켜 육군참모총장으로 기용했다.

[박경석]

실패를 교훈으로 삼을 때 되풀이되지 않는 방책이 선다.

여러 군사관련 매체에서 봉로만전투에 대해 문의가 옴으로 오래전에 쓴 평론을 게재한다.

[박경석]

역전의 명장 채명신 장군을 수웨덴 대사로 유배 아닌 유배시키고 패장 이세호 장군을 육군참모총장으로 기용한 인사는 우리의 軍史上 최대의 인사 패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