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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의 사회적 관심-에큐메니칼 진영과 비교하여
이명재 목사(덕천성결교회 목사)
복음주의의 사회적 관심을 살펴봄에 있어서 에큐메니칼 진영과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이 빠른 이해에 도움이 된다. 사회문제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이는 사회를 보는 관점, 즉 서로 다른 선교관에 기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각자가 전파하고자 하는 복음, 더 좁게는 구원관에 대한 이해가 서로 상이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구원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한정지어서 보지 않고 사회적, 정치적 차원까지 확대해서 보고 있다. 이에 반해서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을 개인적 차원으로 한정해서 보고 있으며 이러한 입장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회와 개인 구원의 우선권 문제가 이들을 뚜렷하게 구분 짓고 있으며 상호 배타적 관계로까지 치닫게 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구원의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하면서 실제에 있어서는 사회적, 정치적 구원에 더 관심을 두고 토론하면서 개인적인 구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다. 복음주의자들의 구원은 분명하다. 그들은 로잔언약 이후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했지만, ‘사회 활동이 복음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것이 양보할 수 없는 그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하지만 복음주의 진영에 변화에 대한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변화의 목소리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목소리와 함께 복음주의자들에게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워주었다. 1966년 미국의 세계선교대회(the Congress on the Church's Worldwide Mission)를 마치면서 복음주의자들은 ‘휘튼 선언’(the Wheaton Declaration)을 채택했다. 휘튼 선언을 통해서 복음주의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고 소홀히 한 것을 인정하고 인식전환을 다짐했다. 이 선언은 복음주의 선교 지평을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의 사회구원으로의 관심은 복음주의가 가진 다양성과 역동성에 근거하고 있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에 대해 쉽게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복음주의권의 다양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범주로 묶여 있는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에 대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경계의식이 있다. 그것은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이 복음의 진리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계이다. 즉 회개의 강조가 미약하고 하나님의 나라 구현 방법에 있어서 인본주의적 색채가 있다는 것이다. 또 교회의 사회적 책임 수행을 강조한 나머지 혁명적인 방법을 지지하거나 시도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런 성향이 에큐메니칼 진영에 부분적으로 발견된다고 해도 그것을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혁명 이론은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도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극히 적은 수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1974년 로잔 세계복음화 국제대회는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이 대회에서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복음화의 성서적 기초’라는 주제 강연에서 선교란 더 이상 전도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세상 속으로의 아들의 파송, 즉 봉사를 포함하기 때문에 선교는 복음전파와 함께 사회적 행위가 포함된 사랑의 봉사임을 밝혔다. 그의 사상은 로잔대회의 결과물로 정리된 ‘로잔언약’(LausanneCovenant)에 그대로 담겨 있다.
‘로잔언약’ 은 복음주의자들의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분명한 선언이었다. 그러나 로잔언약에서는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 간의 관계를 명백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 두 가지 책임 간의 논란이 야기되자 1982년 미국의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드즈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에 관한 협의회(CRESR)가 열려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그래서 그랜드 래피드즈의 보고서는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선교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로잔언약에 기초한 이 보고서는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 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신학적 근거와 행동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
그랜드 래피드즈에서 열린 회의에서 토론된 내용은 『복음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여기에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그 어느 것 하나도 기독교인이 포기할 수 없는 기본적인 의무임을 밝힘으로써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포괄적인 선교와 사회윤리를 정립하였다. 래피드즈 보고서에서도 사회책임과 복음전도 중 후자의 우위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복음주의 정체성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사회적 관심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활동은 사회봉사와는 달리 정치적 활동과 행동에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서 보수주의자와 참여주의자로 나뉘게 된다. 보수주의자들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가난한 자의 구제나 치료 등의 봉사에 한정되어야지 정치적인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와는 다르게 참여주의자들은 더 깊은 참여를 요구하며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참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시민 사회가 성숙되어 가는 상황에서 주의 백성이자 동시에 국가의 시민인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는 피할 수 없는 문제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사회구원의 문제, 참여의 문제는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전파되어 왔다. 9차에 걸쳐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중 독일 빌링겐(Willingen) 대회는 사회구원의 측면에서 중요한 회의였다. 1952년 회집된 빌링겐 대회는 몇 가지 차원에서 선교의 이해를 새롭게 했다. 즉, 교회 중심적인 입장에서 세계 중심적으로, 인간 중심적인 견해로부터 하나님의 선교 사상으로 전환하였다. 선교는 인간의 선교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뿐임이 빌링겐대회에서 강조되었다.
1954년의 미국의 에반스톤(Evanston) 세계교회협의회는 1952년의 빌링겐 대회의 선교신학을 이어받는다. 즉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강조와 확인이다. ‘교회 중심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의 전환을 강조하며 ‘하나님-교회-세상’의 순서가 ‘하나님-세상-교회’의 순서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1968년 스웨덴의 웁살라(Uppsala)에서 열린 4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는 선교의 목표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상적인 인간을 모델로 설정한 ‘인간화’에 두게 되었다. 인간화란 모든 인간, 특히 가난하고 약하고 억압당하고 고통당하는 그래서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모든 이웃을 위하여 사랑으로 돕고, 그러한 부조리를 초래한 구조적인 모순을 제거하는 노력을 말한다. 낮은 데로 임하셔서 약자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자는 운동이다.
세계교회협의회 교회들의 사회참여에 대해서 강력하게 도전받은 복음주의자들이 로잔언약을 발표했듯이, 복음주의자들의 기독교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한 강조가 세계교회협의회를 자극했다. 1973년 방콕(Bangkok)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복음전도위원회(CWME)의 ‘교회와 사회분과’는 복음과 개인구원의 중요성을 재인식했다. 웁살라 이후로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선교는 정치 신학적이고 참여 신학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 전도, 개종, 교회 설립, 예배보다는 사회 정의, 인권, 인종, 교육, 인간 복지, 기근 문제 등의 세상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다. 복음과 개인 구원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한 방콕회의는 에큐메니칼 진영 활동의 유연성을 보여주게 되었다.
1989년 산 안토니오(San Antonio) 세계선교와 복음화위원회는 ‘그리스도 방식에 따른 선교’를 주제로 멜버른 대회의 포괄적인 선교를 더욱 발전시켰다. 특히 1982년에 있었던 WCC 중앙위원회는 ‘선교와 전도:에큐메니칼 증언’이라는 선언을 통해서 ‘선교와 전도’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며, 전도와 사회 참여 활동을 갈라놓는 이분법을 극복하고 ‘영적인 복음’과 ‘물질적인 복음’은 예수 안에서 하나의 복음임을 주장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초기 선교사들이 사회봉사를 통해서 선교를 열심히 전개했지만 이들의 기본적인 신앙은 보수적 신앙관이었고, 이들의 신앙관이 자연 초기 조선 기독교인들의 신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개인의 신앙을 강조하면서 사회봉사를 전개해 나간 것이 사실이었다. 일제의 강점 하에서 기독교는 여러 다른 방법으로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했다. 특히 일제의 강압에 전 민족이 봉기한 3.1운동에 기독교인들은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교회는 일제 탄압의 핵심적 대상이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교회의 신앙 형태가 말세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신앙 형태로 가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후 보혁 갈등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가운데 기독교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보수와 진보의 양 진영으로 나뉘었다. 장로교는 보수 진보라는 신학 노선으로 통합과 합동으로 갈라졌고, 성결교는 WCC 가입 문제로 기성과 예성으로 나뉘어졌다. 따라서 일반적인 인식이 보수는 개인 구원에 그리고 진보 쪽은 사회 구원에 무게를 두고 사역을 펼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최근의 연구는 보수라고 일컬어지는 복음주의 쪽에서도 사회 선교에 결코 등한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김균진 교수는 한국적인 관점에서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여기는 이유를 지적했는데, 물질적 축복, 사회적 출세, 병 고침을 하나님의 축복과 동일시하고 이것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교회는 이 시대와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외면하게 된다고 했다. 신앙이 개인주의화 기복화될 때 교회의 사회적 참여는 소극적이 된다는 지적이다.
이상 복음주의의 사회적 관심에 대해 살펴보았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어느 일방이 선이고 다른 한쪽이 악인 관계가 아니다.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이루어나갈 과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양 진영은 양보 없는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전도와 사회 활동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쪽이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다른 한쪽이 약해진다면 교회의 영적 생명력이 약해지거나 또는 교회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사라져 선교에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전도와 봉사는 기독교 선교의 두 개의 축과 같다. 기독교 사회봉사의 관점에서 전도는 사람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사회봉사는 결핍된 자들을 기본적인 권리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적인 삶으로 인도한다. 이 두 가지 사역은 내용과 형태는 다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획일적 사회가 기능적으로 얼마나 취약하며 고립과 정체를 면하지 못했는지는 이전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보여주었다. 다양성을 통해서 편견이 시정되고 획일이 가져오는 정서적 나태를 막아주며 창의적 문화 창출의 단서가 될 것이다. 닫힌 사회와 열린사회의 다른 점은 구성원 상호간의 생각의 소통일 것이다. 상호 수용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곳은 숨막히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좀 더 열인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신학을 연구하면 어떨까? 내년 부산 WCC 총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뚜렷이 나누어진다. NCCK는 세계적 기독교 행사를 유치한 데 기뻐하고 있는 반면 보수권 일각에서는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소견으로는 굳이 반대할 것까지 없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 전쟁의 주적은 우리 안에 있다기보다 분명히 우리 밖에 있기 때문이다. 사단의 조종을 받는 이단들의 집회에 쏟아 부어야 할 동력을 엉뚱한 곳에 집중하는 것은 낭비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지녀야 하는 열린 마음, 그리고 천성을 향해 손잡고 나가는 모습,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실 것이고 우리 사람이 보기에도 좋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첫댓글 귀한글월 많은 생각을 하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