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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행기>
40일간의
남아메리카 여행 12
- 칠레의 문화 도시, 발파라이소 -
발파라이소, 문화수도라 불리는 칠레 제1의 항구도시.
원색의 벽화들로 가득찬 도시.
파블로 네루다의 숨결이 깃든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했다.
"천국과 같은 계곡"이라는 뜻의 발파라이소, 그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언덕과 골목들은 환상처럼 화려했다.
이 도시 역시 스페인의 정복자 후안 데 사아베드라가 1536년 스페인에 있는 자신의 고향 이름을 따 건설한 곳이다.
아센소르를 타고 꼰셉시온 언덕을 오르자 이전에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벽화들의 세계였다. |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위에 굴복한다.
<중략>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을 한다.
박남수의 시 '아침 이미지'가 떠오르는 새벽, 발파라이소를 향해 길을 나섰다.
2015년 4월 9일 목요일 아침 6시 반, 산티아고의 칠레대학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알라메다 버스터미널로 이동해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 40여 분을 달려 도착한 발파라이소. 이른 아침 발파라이소 가는 길 들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발파라이소 국회의사당 앞의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낯선 곳에 처음 발을 디딘 여느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프리 투어가 시작되는 소또마요르 광장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헤맸다. 거리에는 쉴새없이 많은 버스들이 왔다가 떠나기를 반복했지만 어느 것이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버스인지를 알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이곳의 버스 정류장에도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를 통해 시내버스를 타고 행정기관과 은행 들이 모여있는 소또마요르 광장 Plaza Sotomayor으로 이동했다.
센트로와 항구 주변을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경사진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발파라이소는 중심지구인 소또마요르 광장에서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발파라이소 가는 길의 아우마다 거리의 새벽. 그 많던 인파는 다 어디로 가고,,,
고무바퀴가 달린 지하철. 예전 파리에서 이런 고무타이어 전차를 본 기억이 있는데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소음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칠레 대학 앞에서 지하철을 타고 발파라이소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행했다.
부지런히 사는 모습은 언제봐도 흐믓하다. 발파라이소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소또마요르 광장으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볼펜 장수.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덕분에 소또마요르 광장에 도착하니 시간이 여유로웠다. 센스있는 우리의 젊은 동반자들이 찾아낸,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칠레 해군총사령부 옆 건물의 2층 카페에 들어가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며 10시부터 시작될 프리 투어를 기다렸다.
소또마요르 광장에는 바다와 접한 북동쪽의 제일 끝에 쁘랏항구Muelle Prat가, 그 맞은편 남서쪽 끝의 언덕 아래에 칠레 해군사령부 Armada de Chile가 있다. 그 중앙에 태평양 전쟁에 참여한 해군 영웅들을 기리는 이끼께 기념탑 Monumento de los Iquique이 있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이 있으니 "멋있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이 없을 리 없다. 발파라이소의 영어 프리 투어를 맡은 가이드가 그랬다. 잘 생기고, 영어 잘 하고, 상냥한 데다 유머 넘치는데 누군들 싫어하겠는가? 돌아서면 잊혀질 인연이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였다. 발파라이소의 투어는 그렇게 멋진 가이드와 함께 쁘랏항구 Muelle Prat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소또마요르 광장에서 프리투어를 준비 중인 투어사 직원들. 발파라이소 프리 투어는 발파라이소의 역사가 담긴 이곳 소또마요르 광장에서 시작됐다. 사진 가운데 있는 밝은색 건물이 칠레 해군 총사령부다.
태평양 전쟁 중의 이끼케 해전에 참전한 용사들을 기념하기 위한 '이끼케 기념탑' . 광장의 중앙에 있다.
쁘랏항구의 선박들. 발파라이소 해상을 둘러보는 관광선들도 보인다.
소또마요르 광장 한쪽 끝에 있는 쁘랏항구는 발파라이소의 대표적인 항구로 거대한 군함과 상선을 비롯하여 작은 어선,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관광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예전에 이곳은 항구를 출입하는 선박들을 관리하던 세관과 여객선터미널이 있었던 곳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시절에는 그 화려함과 영화가 넘쳐 흘렀다고 하는데, 항구 곳곳에는 긴 뱃고동 소리와 멋진 제복에 파이프 담배를 문 마도로스의 정취가 물씬 묻어났다. 칠레 제1의 항구도시다운 면모가 엿보이는 곳이었다.
쁘랏항구의 옛 세관
쁘랏항구를 둘러보고 다시 소또마요르 광장 왼쪽 길을 따라 오르다 해군 사령부 옆의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꼰셉시온 언덕으로 오르는 아센소르 엘 페르알 Acensor El Peral을 타기 위해서였는데, 나라마다 승강기, 모노 레일, 케이블카, 후니 쿨라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이런 유형의 경사형 엘리베이터는 우리 나라의 정선에서도, 일본의 북알프스에서도, 오스트리아의 잘쯔브르크에서도, 그리고 스페인 등등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삐걱거리고 오래된 이동수단을 타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런 아센소르는 시민들이 수시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발파라이소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시내에만 대략 15곳이 있다고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탄 '아센소르 엘 페르알'과 '아센소르 꼰셉시온'(투어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면서 탄 이 아센소로는 1883년에 만들어져 무려 130년 동안 시민들의 발이 되어준 발파라이소의 명물 중의 명물 엘리베이터였다. )으로 좁은 공간 안에 있는 정류소에서 차비를 내고 지하철 입구같은 개찰구를 지나면 낡고 오래된 목재 대기실이 나왔다. 그곳에서 순서를 기다려 두어 차례의 왕복을 마친 아센소르를 타고 꼰셉시온 언덕의 유고슬라비아 거리에 오르자 조금 전 보았던 쁘랏항구와 소또마요르 광장이 멋진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아센소르 엘 페르알 Ascensor El Peral. 꼰셉시온 언덕의 유고슬라보 거리의 바브리싸 저택 Palacio Baburizza으로 오르는 아센소르다.
태평양 연안의 도시답게 햇살이 쨍한 꼰셉시온 언덕의 유고슬라비아 거리Paseo- Yugoslavo에 도착해 맨 처음 가이드가 이끈 곳은 유럽풍의 멋진 저택인 Palacio Baburizza이었다. 이 저택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사업가였던 Pascal Baburizzar가 살았던 곳으로 이탈리아 건축가에 의해 1961년 건축되었는데 후사가 없던 그의 미망인이 최근까지 홀로 살다가 후계자 없이 죽자 지금의 미술 박물관 Bellas Artes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Palacio Baburizza를 지나 언덕을 올라서자 발파라이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지나온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풍경들, 찬란하고 강렬한 색감, 자극적이고 육감적인 표현들을 비롯하여 사람과 동물, 꽃들을 주제로 다룬 이 도시의 그래피티들은 예술가들의 원초적 영감을 아무런 여과없이 드러내는 무대이기도 했다. 이곳에 그림을 그리려면 무엇인가는 규칙이 있겠지만, 그런 규칙들은 때때로, 아니 거의 언제나 예술가들의 지적 세계를 억압하고 짓누르는 제약이 되는 것이니 그마저도 최소한의 윤리적 도덕적 수준에서 그치는 듯했다.
꼰셉시온 언덕 유고슬라비아 거리의 바브릿싸 대저택. 현재는 미술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Casa Crucero 앞 호스텔의 벽면
Casa Crucero. 항해사의 집 쯤으로 해석해야 할까?
강렬한 색감의 고양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눈동자의 하트가 화룡점정이다.
도시를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수없이 많은 벽화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붙이며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눈으로 감상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조차도 벅찰만큼 도시는 온통 크고 작은 벽화들로 가득찼으니 안내하는 가이드인들 그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그저 눈으로 보고 스쳐가자.
1927년 지어진 건물의 가운데 계단 양 옆은 누군가의 그림을 가득했다.
너무나도 정교한 이 그래피티들은 거리의 미술이라기 보다는 전문 화가의 솜씨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계단의 중간에 있는 어느 집으로부터 초콜릿 과자같은 먹을 것이 나왔는데 사진을 찍느라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돈을 주고 산 것은 아니고 샘플행식으로 제공해준 것으로 기억한다.
Casa Aventura
가이드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엇인가 의미있는 작업이 이루어졌음이 분명하지만 알아 듣지 못하는 여행자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예술이란 말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했으니 가슴으로 느껴지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그래피티들은 하룻밤 사이에 뚝딱 그려지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스프레이로 그려지기도 했으므로 누구의 그림인지 어떤 의도인지도 모르는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고대지의 좁은 골목 사이로 다닥 다닥 붙어있는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함석으로 만들어져있다. 이 함석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타고 온 배에서 떼어 내 비나 바람을 막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집을 짓는 재료로 쓰였는데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의 소중한 가치로 보호되고 있다.
아무렇게나 색칠하고 아무렇게나 글을 쓴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이 예술적 감각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화려한 색채로 칠해져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찬란해보이는 이 언덕의 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낡고 닳아 비바람을 견디기에도 힘겨워 보이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볼리비아의 라파즈에서도 보았듯이, 우리 나라의 대도시에 볼 수 있듯이 가난한 서민들이나 빈민들은 언제나 높은 지대로 오르고 올랐다. 천국의 계단이라는 발파라이소는 과연 누구의 천국일까?
화려한 원색의 까페 창문에 매달린 화분이 조화롭다.
무엇을 의미하는 숫자일까? 설마 1837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
독일거리를 가기 전 높은 언덕에서 만난 이 벽화를 그린 인물은 유명한 화가임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가이드가 이곳에서 긴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발파라이소 해변가 도심
발파라이소에는 유럽이서 온 이민자들도 많았다. 독일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독일 거리에는 독일 교회
프리 투어 코스는 정해져 있었지만 모든 코스를 일일이 다 기억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건 능력 밖의 일이다. 여행자에게는 발파라이소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가 필요한 것이지 그곳의 작은 언덕 하나, 골목 하나가 의미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곳에서 건너편 언덕을 바라다본 곳에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인 파블로 네루다의 기념관이 있었지만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었기에그가 남긴 문화적 정치적 업적을 잠시 기리는 것으로 예의를 표했다.
피아노 계단.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강렬한 이미지의 벽화는 가끔씩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 벽화에도 담겨진 이야기가 많은 듯했지만 안타깝게도 기억 나는 것이 없다.
아니발 핀토 광장 Plaza Anibal Pinto. 광장에는 한 무리의 시민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3시간 여에 걸친 프리투어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언덕과 골목을 오르내리면서도 색다른 풍경에 취해 즐기다보니 진정 피곤한 줄을 몰랐는데 막상 평지로 내려서니 더위와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투어의 마지막은 Duoc UC 대학 건물 및 미술관, 햇빛을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잠시 둘러보고 휴식을 하면서 마무리 하기로 했다.
Duoc UC 대학 건물 및 미술관
Duoc UC 내부
Duoc UC 대학 건물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증권가인 쁘랏거리를 걸어 다시 소또마요르 광장에 있는 투어사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래된 전통이 서린 듯한 건물의 2층에는 간단한 다과와 피스코 사워가 마련되어 있었다. 고생한 가이드와 마무리 인사를 나누고 멋진 점심을 먹을 곳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꼰셉시온 억덕의 "La Concepcion"을 알려준다. 다시 아센소르를 타고 꼰셉시온 언덕으로 올라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근사한 곳에 자리를 잡고 와인과 해산물로 훌륭한 오찬을 즐겼다.
소또마요르 광장 인근에 있는 투어사에서 피스코 사워를 마시며 투어를 마무리 지었다.
1883년 나무로 만든 아센소르 꼰셉시온. 삐걱거리기는 해도 아무 탈없이 발파라이소 시민들의 발이 되어 주고 있었다.
프리투어를 마치고 다시 태평양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멋진 레스토랑을 찾아 꼰셉시온 언덕으로 가는 길에 이 아센소르를 탔다.
아센소르 꼰셉시온
태평양이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멋진 레스토랑 "라 꼰셉시온" 훌륭한 요리와 더불어 탁트인 전경이 일품인 곳이다.
발파라이소 어느 기념품점의 판넬
발파라이소에서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길은 시간에 쫒기고 쫒겼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데다 시내 교통이 막히는 바람에 발파라이소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오후 4시 1분에 출발하는 산티아고행 버스를 출발하기 바로 직전에 가까스로 탄 데다,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도 오후 6시 이전에 타야하는 지하철 표 때문에 서둘러 달리기를 해야만 했다. 오후 6시를 넘기면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그런 표를 아침에 샀던 것인데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그 시간을 맞추느라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나이들어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 유쾌한 일이었다.
산티아고에 돌아오자 시내 곳곳에는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산티아고에 머무는 동안에는 현지 음식도 먹었지만 입맛에 맞는 한식집이 있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렀는데 음식도 음식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달콤한 이슬이 때문이기도 했다.
부지런히 발파라이소를 다녀오니 아타까마에서 24시간 버스를 타고온 일행들과 발파라이소에 가지 않은 몇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룻만에 보는 얼굴들이지만 무엇보다도 반가웠다. 긴 시간 버스를 타고 오느라 얼굴이 핼쓱해졌으니 얼른 풀어야했다. 그래서 또 취했다.
첫댓글 여행지에서 만남후배들이 한가족처럼도 느껴지셨겠어요 ㅎㅎ
따뜻한 글과 마음
그리고 멀리서 맛보는 이슬이는
더욱좋을듯합니다
저도 시간이 갈수록 이슬이 좋네요
이슬, 너무 많이는 좋아하지 마세요~
딱 한 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