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 정말 힘들다.
나는 주말이면 영농체험을 하고 있다.
농사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어제와 오늘 괭이와 삽으로 힘들었으니
어깨 아프고 허리 뻐근함은 당연한 사실일터
노동의 강도에 비례한 수익을 견줌은 아니며
서툰 농심으로 농촌의 현실을 바라다 보았다.
경운기 머리 돌림에 허리가 따라 휘청이고
20킬로 묵직한 퇴비를 메고 또 메다보면
굽혀진 허리는 다시 굽혀 펴질줄을 몰랐다.
흙묻은 손으로 이마의 땀을 쓸어내리며
논둑에 걸터앉아 먼 들판 바라보며 길게 심호흡만 해댄다.
예로부터 농사짓는 일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로 세상의 근본임을 내세웠었고, 전근대사회에의 사민(四民)들은 직업의 귀천이 곧 신분의 귀천으로 나타나 그 순서매김은 사·농·공·상 순이었다.
결국 노심자(勞心者 : 정신노동자)는 치자(治者)가 되고, 노력자(勞力者 : 육체노동자)가 피치자가 되어 사(士)는 정치를 하고, 그 다음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농(農)이었었다.
그러나 요즘의 농업 가치척도는 직업성 신분이나 산출물의 품질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의 근본이며 소중한 식량생산 명분이 어떻고 하는 것은 어차피 촌스럽고,
땅때기 한평가격이 얼마를 받느냐는 금전환산적 사실이 현실을 지배한다.
까짓 애써지은 푸성귀랑 자가용 탄 사람들이 요리 집서 더 달라면
묻지않고 얼마든 주어버릴 하찮음이 작금의 서글픈 실태이다.
이상기후, 구제역, 조류독감, FTA...
하나같이 농민을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화난 농심은 수확물을 갈아엎고, 볏가마를 불태우며,
음독으로 한많을 세월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곤 정신마져 죽었다.
또 다시 자녀 학자금으로 빌려 쓴 영농자금이 허리를 옥죈다.
엉거주춤 지친 다리에 처진 어깨, 검디검은 주름간 얼굴
농사일 마음 편하다는 말은 그 누구의 넉두리던가?
나 좋다고 농사일 배워도 보지만,
이게 진정 살아가는 농촌의삶의 현실이라면
마음 뒤틀어진 뒤 이 긴 어둠의 터널을 어떻게 지나야할까?
고개 숙여 한숨 내쉬며 체념하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조상을 탓하고, 하늘을 원망한들 모든 것은 내탓임도 안다.
마냥 그리웁고 정쌓이던 호시절은 간곳 없고
내 고향, 마음의 정거장이 너무 먼 하늘가에 있었다.
*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그들은 산다. 고통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해 보면서...
첫댓글 울 방지기님은 정말로 진짜로 부지런하십니다요 부럽습니다
대단합니다 까치밥은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