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세이제출 세월의 눈빛. ( 20643077 이만규 )

[이만규]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이 되고 싶은 우상이나, 만나고 싶은 이상형이 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이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이나, 만나기도 싫은 반(反)이상형도 있을 것이다. 내게 그 반(反)이상형이란 흔히들 말하는 나이 값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철이 약간 들기 시작한 후부터 나이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다. 나이를 먹었으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아이는 아이답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영악한 아이는 소름끼쳐 싫었고, 철이 너무 일찍 든 아이는 불쌍했다.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른은 안쓰러웠고, 어른스럽지 않은 행동을 하는 어른은 역겨웠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던 9월의 어느 날. 전날의 과음으로 인한 쓰린 속을 부여잡고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위해 마지못해 집을 나섰다.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택시 타는 것이 습관이었던 나는 그날 역시 몇 걸음 못 가 택시를 찾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내게 손짓하며 반갑게 다가오던 택시는 한 대도 눈에 띄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택시를 찾던 나는 9월임에도 아직 사그라지지 않는 더위에 점점 지쳐갔다. 그런 더위에 지친 내 눈에 띈 건 얼마 못가 서 있는『버스 정류장』이었다.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겠지만 현재의 내게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내가 바라보고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서는 버스 한 대. 마치 자신이『금방 출고된 버스』라고 과시라도 하듯이 위풍도 당당히 내 앞에서 멈춰서더니 그 큰 입을 쩌억하고 벌렸다. 이윽고 그 입에서 나오는 차가운 바람. 여기가 바로 천국이었다. 이 버스와 내 목적지가 같다면 더위와 술에 지친 내 몸을 달래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천국의 버스를 운전하는 천사에게 내가 갈 목적지를 묻자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감격에 벅찬 나는 버스에 거의 날다시피 뛰어올라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러나 공기는 시원했지만 에어컨 특유의 냄새에 새벽까지 마신 술이 다시 입 밖으로 나올 것만 같았다. 산 넘어 산이었다. 정말 빨리 앉지 않으면 엄청난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혈안이 된 눈빛으로 앉을 자리를 찾았다. 그러다 눈에 띈 한자리. 비록 의자 옆에 노약자석이라고 붙여져 있는 자리긴 했지만, 내 몸 상태가 이미 중환자 수준이었기에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노약자석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한편으론 뱃속에서 요동치는 술을 조금씩 달래는 사이, 버스는 하염없이 시내를 내달렸다.

그렇게 몇 정거장이 지났을까, 한 정거장에서 머리를 뽀글뽀글 볶은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를 안고 버스에 올라타셨다. 그 아주머니는 버스에 오른 뒤 빈자리를 찾았지만, 결국 빈자리가 없어 내가 앉아있는 앞자리 의자의 귀퉁이를 한손으로 잡고 한손엔 아이를 안고 서 계셨다. 그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며 평소 같으면 양보를 할까 고민이라도 했겠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환자였기 때문에 고민조차 하지 않고 모르는 척 태연히 앉아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조금 더 나아갔을 때, 내 앞에 있던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주머니, 여기에 앉으시죠.”

아주머니와 눈빛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해 두고 있던 난, 그 목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온 몸에 찌들어 있던 취기가 전부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그 누군가는 어린 학생도 아니었고, 젊은 회사원도 아니었고, 연약한 여자도 아니었다. 바로, 백발이 성성한 예순은 훌쩍 넘기셨을 어르신이셨다. 시선을 돌려 어르신을 뵌 순간, 난 얼굴이 벌개져서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적어도 내 인생의 세배는 사셨을 어르신이 양보를 하는데 젊디젊은 내가 자리에 앉아있는 게 당최 말이 되질 않았다.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수군대며 손가락질 하는 것만 같고, 가시방석도 아닌 대못을 박아놓은 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시내 한복판에 발가벗겨진 채로 내던져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참담한 기분과 양보를 할 걸 그랬다는 후회를 하고 있는 사이에, 앉지 않겠다는 아주머니와 아직 서서 갈 힘은 있다며 앉으라는 어르신의 실랑이가 끝나고 마침내 아주머니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내 앞자리에 앉았다.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던 난 더 이상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서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해드리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이었다.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할아버지, 이쪽에 앉으시죠.”

“할아버지, 여기요.”

거짓말처럼 동시에 가지각색의 목소리가 버스 가득 메아리쳤다. 목소리가 난 쪽을 훑어보니 나 말고도 다섯 명쯤 되는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서류가방을 든 아저씨.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장을 보러 나오신듯한 아주머니, 내 또래나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있을법한 남자.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어르신과 나. 어르신은 지그시 그들을 바라보시더니 입을 여셨다.

“허허, 고맙지만 난 서서가도 된다우. 이 노인네 아직 젊어요. 다른 사람들이 더 타면 그 분 들께 양보를 해주시오.”

어르신은 말을 마치고 일어난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다 하셨다. 아마 일어선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일어섰으리라. 사람들을 지나 이윽고 내게 돌아온 시선. 그 눈빛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손자의 귀지를 파준다는 외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무려 세 시간을 잤던 적이 있었다. 그 세 시간동안 당신은 행여나 내가 깰까봐 꼼짝도 하지 않으시고 날 바라보고 계셨었다. 그리고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나를 보며 불편한 표정은커녕 잘 잤느냐고 웃어주시며 바라보셨다. 그때의 그 눈빛이었다. 한없이 자애롭고, 한없이 따스한 눈빛. 난 눈빛을 바라봤을 뿐인데도 어르신이 베풀면서 사셨을 인생들이 짐작이 갔다. 그리곤 차마 그 눈빛을 고스란히 받을 자격이 없어 어르신을 자리로 이끌며 말했다.

“어르신, 여기 앉으시죠. 제가 도저히 앉아있을 염치가 없네요.”

“허허, 학생 그게 웬 말인가. 나도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내가 앉아서 갔을 거네. 하지 만 난 오늘 아주 좋다네. 그리고 서서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네. 어린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한테 무조건 양보해야 되는 건 아닐세.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양보를 받게끔 해야 받는 걸세.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먹게 되는 것이 나이인데, 그 나이가 무 슨 벼슬도 아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땡"하고 경종이 울렸다. 나는 어느덧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만 편하길 바라고, 다른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 겉모습만 20대이지 정신수준은 딱 초등학생 수준밖에 되질 않는 철부지 어른. 나이 값 못하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였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다."

난 행동하지 않았다. 내 몸 하나 편하자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모르는 척 했다. 세상 물정 다 아는 어른이 되었음에도, 어른스럽게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지 못했다. 그런 악인(惡人)이 되어 의미 없이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내게 어르신은 눈빛과 한마디 말뿐으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양보를 극구 사양하는 어르신을 젊은이 하나 살리는 셈치고 앉아주시라며 말도 안 되는 억지로 자리에 앉힌 나는 어르신의 옆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가지지 못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할아버지가 되면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게 인생을 살자고, 그래서 나같이 철없는 어른들에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자고. 그리고 나이만 많은 어른이 아니라 나이에 걸맞은 누군가가 존경하고 싶을 어른이 되자고.

[이만규]

출제했습니다-_--------------------ㅋㅋㅋㅋㅋㅋㅋㅋ 감동ㄳ

[박수영]

전 이것때문에 난 버스탈때 뒤에쪽에 앉자요 요즘 애들은 양보 잘 안하던데.. 형은역시 노인공경하는군요

[이만규]

아니 ㅋㅋㅋ 노인공경은 무슨~ 노인공격안하면 다행이지

[김기사~운~전해~]

ㅋㅋㅋ 호 만규도 이런 기특한 생각을~!?ㅋㅋㅋㅋ

[이만규]

이건뭐..칭찬인지 욕인지 구별이 ㅋㅋㅋㅋㅋㅋ

[S2헌터S2]

씁씁하구만 난 착해서 바로 비켜준다 ㅋㅋ

[이만규]

이건 뭥미 ㅋㅋ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원주]

나도 바로 비켜준다. ㅎㅎ 몇살정신연령까지 끌어올렸냐.ㅋㅋㅋ

[이만규]

이제 12짤!!

[kara]

ㅋㅋㅋ 난 버스안타고다녀서 모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만규]

너도 나이먹어봐라......택시비 후달릴때가 올거다 ㅋㅋㅋ

[서진민]

만규야 니한테 어울리는글을 쓰라 이게므꼬 ㅋㅋ

[이만규]

제게 딱 맞는글인데요...왜그래요 형~

[담당교수 : 강병훈]

민호하고, 만규는 이번 과제를 '착하고 알흠다운' 청년으로 주제를 잡았는가 보네.. 생활문은 자연스러움이 글의 가치이거든. 글을 자연스레 생활언어로 쓸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