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이신부님이 신학교사역을 마치고 태백으로 수도원동체를 만들어 들어가신 이유 중 하나는, 그분은 이미 53년 전에 성령세례를 받으셔서 갖가지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는데, 당시의 분위기상 이를 이야기하였다가는 이단으로 오해받기가 십상이라 오순절성령세례를 아는 동역자들과 함께 수도원 공동체를 계획하신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60-70년대 조용기목사님과 오순절교회에서 방언과 은사를 강조할 때, 장로교에서는 이를 이단시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미혹되지 말 것과 이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던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기에 도저히 도시에서 일반 목회에서는 이를 말할 수 없어 수도원을 계획하시고 들어가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세례는 외적은사와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의 역사와 함께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교회이다. 이 교회의 특징은 영적, 물적 생활공동체라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오면 사도들은 이를 각자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사용하는 것으로 가장 성경적인 원형의 교회를 보여준다. 성령이 임하면 능력과 표적이 나타남과 함께 공동체 교회가 나타난 것이다. 고로 가장 성경적인 교회는 공동체교회이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가? 이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며 또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 다르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 중의 하나는 공동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냥 교회에 와서 목사 앞 얼굴보고, 앞 사람의 뒤 머리만 보고, 설교시간 머리 몇 번 끄덕이며 은혜 받았다고 돌아간다. 돌아가다가 트래픽문제로 서로 삿대질하고 싸우다 경찰을 불러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다 보면 서로 같은 교회의 집사, 권사다. 서로 누가 누가인지, 목사도 자기 교회 집사 권사 얼굴 심지어는 장로의 얼굴 이름조차 잘 모르는 교회가 과연 교회인가?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 배워야 할 교회인가?
아파트생활의 장점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철저한 개인주의다. 과거 대가족제도 시대의 팔촌이 함께 모여 서로 상부상조하며 함께 정을 나누고 살던 것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가 된 것이다. 성도들 가운데 누가 아파도, 힘이 들어 고통 가운데 있어도 심지어는 죽어가도 그냥 그런가벼~ 하며 넘겨버리는 교회 이것이 과연 바른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
대형교회를 자랑하며 대형교회를 다니는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좋은 교회 괜찮은 교회에 다닌다는 자부심을 가진다. 그 자부심의 이면에는 성도로써의 의무인 봉사와 헌금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 도피가 있지 않는가? 내 생활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그냥 편하고 자유롭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의 지도도 거부하고 자기가 만든 자기의 신앙, 자기중심의 신앙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닐까? 이것을 과연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은 종교인은 될지언정 신앙인은 될 수 없다. 종교학자들은 종교는 인간이 두려움으로 인해 안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인간이 만든 종교 이것과 그들의 종교생활이 무엇이 다른가.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나를 버리는 것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다.
또 오순절에 탄생한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교회생활을 했다.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떤가? 목자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오히려 목자를 자기들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양과 목자의 관계가 역전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교회가 사도성이 없는 교회가 되어버렸다. 오직 인간의 아집과 자기주장만 가득할 뿐 하나님의 음성도 목자의 가르침도 거부하는 교회가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초대교회의 가장 성경적인 교회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신앙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신앙과 삶의 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는 성도들의 신앙고백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원의 영성은 가난과 불편함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수도원공동체영성을 보여준다. 성령이 살아서 역사하는 성령공동체성을 보여준다. 지난 시절은 예수원이 세속에 물들고 탐욕에 빠진 세계교회와 한국교회를 기도했더라면 토레이 신부님이 돌아가신 지금 일시적 지도력의 공백이 생긴 예수원을 위해 이제는 한국교회가 기도해야 할 때이다.
현제인 사모님, 벤 토레이 신부님, 권요셉 형제님, 최요한 형제님 모두 힘내세요! 여러분의 곁에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있습니다.
2010. 8. 29(주일) 오후4:48 오후예배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