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 여러 형제들께
함석헌
주 안에서 경애하는 지우(誌友) 여러 형제들, 형제들을 대하는 것이 오랜만입니다. 변함없는 주의 사랑이 형제들 위에 풍성하신줄 믿사오며, 그 사랑을 받아 평화를 가지시기 원합니다. 지난날 제가 잠깐 괴롬을 당하였을 때는 많은 염려와 기도로 도와주시어서 감사의 말씀을 다 못하오며, 이 모든 것이 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것인 줄 알아 기뻐합니다. 우리가 다 어려운 세상에 처했습니다. 악은 점점 더 유혹과 위협으로써 우리의 평화를 빼앗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그 안에 거하여야 하겠습니다. 주를 사랑하면 평화가 우리게 있고, 사랑하지 않으면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능히 주를 사랑하겠습니까? 사욕이 없는 시간만 이것이 가능합니다. 욕심이 없으면 생명이 건전하고, 건강한 생명은 평화를 누립니다. 외적 조건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아니건마는, 이것만이 유일 절대의 조건인 듯이 뵈여서 항상 근심이요 무서움입니다. 형제들이여 믿음으로 주의 은혜를 입어 능히 이 욕심을 이기고 씩씩한 생명으로 자랍시다, 그렇게 해줍시사고 기도합시다.
성서조선이 만 열네 돐을 맞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손꼽기질이 무슨 소용 있아오리까 마는 우리들의 일로 생각 할 때 감개 다시 한번 더 깊어집니다. 미처 볼 새 없이 모든 것이 흘러가는대로 걷잡을 새 없이 났다가는 뽑히는 대. 주께서 오늘날까지 우리게 요만한 등잔이라도 이날껏 허(許)하셨습니다. 인사로 하면 주필 김교신 형의 수고하고 애태이는 것을 들어내 말해야 할 것이나 가도(訶謟)이 될까하여 그만 둡니다. 그러나 마땅히 하였을 책임을 제가 지지 않은 것이 많았든 죄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필을 했던 일인으로서의 고백은, 속이 너무 메었던 것입니다. 이 갈대 토막 같은 것을 가지고 주가 원하신 것은 자기의 생명의 말씀을 노래하잔 것인데, 속을 깨끗이 비게 하였던들 그의 미묘한 음악이 나왔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여서 도무지 소리가 날 수 없었습니다. 이 거칠은 인생을 하나님은 혹은 봉(峯)으로 올라가시며 혹은 골짜기로 내려가시며, 슬픈 곡조 기쁜 곡조를 맘대로 부시어서, 죽은 것 위에 생명을 고취하자는 것입니다. 아해들이 이 갈대 토막을 잘러 불어보고 던지고, 또 저것을 짤러보고 하는 모양으로 주는 행여 잘 뚫려 당신의 생명의 진동을 제대로 전하는 자가 있을까 하시는 것입니다.
갈대 제 자신에 무엇이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닌 것을, 있는 줄 알아 염려함으로 항상 메였었습니다. 인간의 말이 다 되는 점이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되는 점인 것을, 제 말을 해볼 양으로 늘 고집 했습니다. 회개합니다. 그러나 주가 자기 말씀을 하시는데 김모가 무엇이고 함모가 무엇이오리까? 저가 애쓴다 해서 이날껏 있는 것도 아닐 것이오, 이가 둔(鈍)해서 자기의 하실 것을 못 하실 것도 아닙니다. 저의 하고 싶은 대로 입니다. 저가 요만하게 우리게 오늘까지 두시는 것입니다. 그럼 말씀을 주시는 날은 들을 것이오, 거두시는 날은 재를 쓸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어지이다.
1941년 6월 28일
성서조선 1941. 7 150호
저작집30; 없음
전집20;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