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배운 지혜
얼마 전 지리산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두 팀의 산친구를 만났다. 한 팀은 등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충분히 갖춘 전문산악인이었고, 다른 한 팀은 그야말로 완전 초보로 뒷산 오르는 기분으로 상식적인 선에서 준비를 해 오셨던 분들이다.
첫날은 전자의 분들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아는 것이 너무 많고 지식이 너무 많으니 대화를 나누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걷다가 좋은 경치가 나오면 고민할 것 없이 그냥 주저앉아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일텐데, 이 분들은 대충 50분을 걷고 10분 쯤 쉬어야 몸에 좋다면서 그 경치를 마다하고 걷는다.
또 저녁 때 별빛이 너무 고와 도무지 잠이 들 수 없어서 한참을 별을 바라보며 흠뻑 감상에 젖어 있었더니 내일 아침 몇 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출발해야 한다며 꽉 짜여진 일정 때문에 일찍 잠에 드는 것이 좋을 것이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후자에 만났던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싱그러웠는지 모른다. 상식선에서 3일 산에서 머물려면 이정도면 되겠다 싶어 마음 가는대로 가방을 꾸렸고, 딱히 일정을 잡지 않았다 보니 경치 좋은 곳에서는 한참을 앉아 느끼기도 하고, 밤하늘 별빛을 바라보며 여유 있는 별자리 여행도 하고 말이다.
그 뿐 아니라 산행을 하며 모든 부분에서 전자의 분들은 지식이 많으니 그 지식에 내 몸을 의지하는 일이 많아지고, 후자의 분들은 사소한 지식들이 없다보니 그저 마음 가는대로 산을 느끼고 걸을 수 있었다. 과연 어떤 분들이 산을 더 정감있게 느끼고 온 존재로써 산 길을 거닐을 수 있었을까.
아는 것이 많고, 지식이 많으면 그 지식으로 인해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기 쉽다. 보기 위해 지식이 있는 것인데, 오히려 산을 보고 느끼는 일보다 지식이 앞서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발 한 발 바로 다음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이며, 그 매 순간 산과 함께 한 자리 하고 있음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산을 볼 때는 그냥 보고 느끼면 되지 거기에 무슨 지식이 필요하겠는가.
세상 모든 일들이 이와 같다. 수행하는 일도 잡다한 지식과 알음알이가 많다보면 수행에 대해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바빠 정작 직접 실천을 하는 일은 뒷전이 되고 말 때가 있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텅 빈 맑은 시선을 가리고 왜곡시킬 때가 많다.
어떤 문화재 전문가께서 ‘아는 만큼 본다’고 말했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아는 만큼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는 만큼 본다는 것은 지식대로 본다는 뜻이며, 지식에 의지해서 알음알이대로 본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과연 지식이 필요할까. 지식은 곧 판단과 시비를 낳고 그랬을 때 우리 마음의 평화는 깨지기 쉽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아무런 분별 없이, 지식으로 거르는 작업 없이 다만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온전히 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몸에 병이 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병이 들면 온갖 지식을 총동원하게 마련이다. 감기에 밀가루 음식은 안 된다더라, 어떤 음식은 먹으면 안 되고, 또 어떤 음식은 찾아서 먹어야 한다더라, 아플수록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더라, 혹은 아플 때는 굶으면서 단식을 해야 빨리 낫는다더라 하는 등등 수많은 지식들, 때로는 상반되는 지식들까지 동원시켜 몸의 병을 치료하고자 애쓴다. 아무리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음식이 병에 좋지 않더라고 하면 절대 안 먹고, 아무리 먹기 싫은 것도 몸에 좋다고 하면 기를 쓰고 먹으려고 안달이다.
지식이 많으면 해야하는 것들,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 그만큼 얽매이는 것도 많아진다. 그만큼 우린 부자유하다. 우리 몸이란 다 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자연치유의 능력이 있으며, 바깥에 의지하기 보다, 지식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고 턱 맡겨 놓는 것이 더 근원적인 치료방법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치료한다는 것도 일종의 심리적 효과인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약이 병을 고치는 것 보다 마음이 병을 고치게 하는 더 근원적인 처방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 지식이란 우리 안에 있는 자연치유의 능력과도 같은 내적인 삶의 지혜를 가로막기 마련이다.
우리 몸은 완전한 하나의 소우주이고 법계다. 그대로 나 자신이 온전한 부처이고 신이다. 배고프면 밥을 찾고, 또 부르면 뒷간을 찾고, 졸리면 자고, 짠 음식을 많이 먹었으면 알아서 물을 찾게 마련이다. 물 흐르듯이 우리 몸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마련인 것이다. 법계의 이치에, 내 안의 삶의 질서에 턱 맡기고 나면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밝은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렇게 살 수 있다.
옛 스님들께서는 '배고프면 밥 먹고, 부르면 똥 누는' 평상심이 그대로 도라고 말씀하셨다. 근심 걱정이며 욕심과 집착, 알음알이를 다 놓아버리고, 다만 근본 불성佛性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물 흐르듯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 평일 07:50 ~ 08:00 ) 방송중에서
첫댓글 좋은 법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