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장마가 계속되는군요.
올해처럼 긴 장마는 일찍이 없었든 것 같은데... 코로나에 이어 긴 장마
티비에서는 종일 물난리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음성지역이 재난지역이 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안부전화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저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지만
농작물도 과일도 수확할 게 없다는 이웃들의 걱정을 들으면서 함께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관찰과 묘사에 대해 말합니다.
감정은 쏟아내지 말고 묘사해야 한다
앞서 시란 무엇인가?에서 ‘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정의한 사전적 의미를 인용했다. 사전적 의미란 보편적인 생각일 테니까. 그러나 이 말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애매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시를 멀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어쩌면 이 정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어깃장을 놓고 싶어진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은 다른 문학 장르에서도 다 다루는 것, ‘함축과 운율’이 관건이다. 함축과 운율은 시의 형식적 특성을 드러내는 용어이기는 하나 우리 시의 운율적 결속력이 대단히 미미해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운율을 따지지 않는다. 함축이란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인다는 의미 아닌가? 긴 이야기를 짧게 줄여 놓았다 해서 시가 되는가? 아니다. 함축성보다는 오히려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게 더 적절하다.
“긴 이야기를 짧게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의 사용”이 시의 특성에 가깝다는 말이다.
사전적인 정의에 갇혀 있으면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인간의 사상을 한 자루의 펜으로 표현하겠다고 대드는 일은 무모할 뿐이다.
한 편의 시가 인간의 사상적 체계에 관여하고 거기에 기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상을 해설하거나 추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시가 단순히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감정과 유사한 용어인 감성·정서·느낌을 종이 위에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시작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첫 번째는 과장이다.
그리운 척, 혼자서 외로운 척,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 하지 마라. 모든 것을 낭만으로 색칠하지 마라.
두 번째는 감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 눈물 흘릴 일 하나 없는데 질질 짜지 마라.
세 번째는 현학이다.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하지 마라.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들먹이지 마라. 기이한 시어를 주워와 자랑하지 마라. 시에다 제발 각주 좀 달지 마라.
시를 쓰는 사람이 묘사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미술에서 데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두말할 것도 없이 묘사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황동규, <풍장 58> 중에서)
달개비 꽃 속에 코끼리가?
나는 달개비꽃을 많이 봐 왔지만 무심히 지나쳤기 때문에 코끼리를 떠올릴 수 없었다. 실제로 달개비꽃을 찾아 꽃잎 속을 들여다본 후에야 탄식이 절로 나왔다. (믿어지지 않으면 허리를 낮추고 가만히 달개비 꽃잎 속을 한 번 들여다보아라) 관찰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사물을 오래도록 주시하다 보면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없듯 하찮은 사물들도 그 나름 존재 가치가 있어 사물을 오래 주시하다 보면 새로운 시각의 생각들과 마주치게 된다.
새로운 시각의 생각들, 이미지라고 한다. 떠오르는 이미지를 과장하지 않고, 내가 아닌 사물이 얘기하게 하는 것, 이것이 묘사이다.
어떤 시가 언어예술로서의 기본적인 꼴을 갖추었는가의 여부도 묘사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묘사 능력으로 시의 품격을 판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묘사는 시 쓰기의 출발이면서, 또한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절실하게 언어로 그릴 책임이 있다. 내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 드러내면 시가 추해진다. 내 마음을 최대한 정성을 들여 그려서 보여주기, 그게 시다.
필사하기 좋은 시를 추천합니다.
작은 부억의 노래 / 문정희
부엌에서는
언제나 술 괴는 냄새가 나요.
한 여자의
젊음이 삭아 가는 냄새
한 여자의 설움이
찌개를 끓이고
한 여자의 애모가
간을 맞추는 냄새
부엌에서는
언제나 바삭바삭 무언가
타는 소리가 나요.
세상이 열린 이래
똑같은 하늘 아래 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큰방에서 큰소리치고
한 사람은
종신 동침 계약자, 외눈박이 하녀로
부엌에 서서
뜨거운 촛농을 제 발등에 붓는 소리
부엌에서는 한 여자의 피가 삭은
빙초산 냄새가 나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르겠어요.
촛불과 같이
나를 태워 너를 밝히는
저 천형의 덜미를 푸는
소름 끼치는 마고할멈의 도마 소리가
똑똑히 들려요.
수줍은 새악시가 홀로
허물 벗는 소리가 들려와요.
우리 부엌에서는…….
많은 물 / 이규리
비가 차창을 뚫어버릴 듯 퍼붓는다
윈도브러시가 바삐 빗물을 밀어낸다
밀어낸 자리를 다시 밀고 오는 울음
저녁때쯤 길이 퉁퉁 불어 있겠다
차 안에 앉아서 비가 따닥따닥 떨어질 때마다
젖고, 아프고
결국 젖게 하는 사람은
한때 비를 가려주었던 사람이다
삶에 물기를 원했지만 이토록
많은 물은 아니었다
윈도브러시는 물을 흡수하는게 아니라 밀어내고 있으므로
아직 건너오지 못한 한사람
이따금 이렇게 퍼붓듯 비 오실때
남아서 남아서
막무가내가 된다
그림자에도 빛깔이 있네
봄날이네
벚꽃나무 아래
아기가 곤히 잠들어 있네
그림자가 이불처럼
아기를 덮고 있네
이불 위로
벚꽃 송이 떨어지네
수 놓듯
수 놓듯
그림자에 분홍꽃 피네
그림자에도 아름다운 빛깔이 있네
맛을 보다 / 양애경
어릴 적 아버지만 드시던 꿀단지
하얀 자기(磁器) 뚜껑은 끈적끈적
아버지가 찻숟갈로 꿀을 떠먹고
혀를 휘~ 돌려 숟갈을 빨고는
다시 한 숟갈 뜨는 걸 보면
‘더러워라’ 하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혼자 다락에 올라
훔쳐 먹는 꿀맛은
달콤하긴 했지
하긴 꿀은 벌들이 빨아먹은
꽃꿀과 꽃가루를 토해낸 거잖아
침투성이이잖아
아니, 침 그 자체이겠네
키스는,
상대의 침을 맛보는 일
맛을 보고서
‘아, 괜찮네’ 싶으면
몸을 섞기도 하고
몸을 섞는 게 괜찮다 싶으면
아이를 만들기도 하잖아
몸과 몸끼리
서로를 맛보는 일
어차피 침투성이
더러울 것 하나 없겠네
멀리 가는 물 / 도종환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선어대 갈대밭 / 안상학
갈대가 한사코 동으로 누워있다
겨우내 서풍이 불었다는 증거다
아니다 저건
동으로 가는 바람더러
같이 가자고 같이 가자고
갈대가 머리 풀고 매달린 상처다
아니다 저건
바람이 한사코 가자고 손목을 끌어도
갈대가 제 뿌리 놓지 못한 채
뿌리치고 뿌리친 몸부림이다
모질게도
입춘 바람 다시 불어
누운 갈대를 더 누이고 있다
아니다 저건
갈대의 등을 다독이며 떠나가는 바람이다
아니다 저건
어여 가라고 어여 가라고
갈대가 바람의 등을 미는 거다
담쟁이 / 장민정
벼랑을 붙들고 산다
되짚다
기웃거리다
밤마다 온 몸에 별을 다는 여자
왜 허기가 지는 지
몸이 뒤틀리는지
수없이 되묻고 되묻다가
구멍이나 파는 여자
구멍 속에 자신을 비벼 넣고 마는 여자
물 한 모금 주고받을 정情 없이도
바늘구멍만 한 자리
비빌 언덕
쓰다듬고 감싸느라
피멍 든 여자
벼랑에 매달려
밤마다 별 헤는 여자
헤다가 헤다가 몸뚱이 가득
별 새기는 여자
몸 따로 맘 따로
벼랑 타는
담쟁이 여자
열무 삼십 단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