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끼리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서 양기가 점점 위로 올라온다고 한다. 젊어서는 몸의 중심부에 양기가 충만해 있다가 나이가 들면 입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그래서 온갖 여자 이야기를 말로는 잘해도 막상 실천하라고 하면 뒤로 뺀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더 나이가 들면 양기가 눈으로 올라와서 예쁜 여자를 눈으로만 보고 싶어할 뿐, 막상 만나면 말도 못 붙인다고. 그러다가 더 늙으면 양기가 머리로 올라와서, 예쁜 여자를 생각으로만 좋아할 뿐이라는 것이다. K교수도 이제는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마도 양기가 입에서 눈으로 올라가는 단계인가 보다. 예전에는 여자 이야기라면 누구에게라도 지지 않고 열심이었는데, 이제는 말보다는 그저 눈으로만 여자 보기를 좋아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어느 날 점심식사 후 학과 회의가 열렸다. 학과 회의는 1주일에 한번 수요일에 열린다. 학과 회의에서는 별로 중요한 내용은 없지만 학과 교수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정보도 교환하고 교무회의의 전달사항도 듣는 회의였다. 회의가 대충 끝나고 커피 마시면서 식당 여주인 이야기가 다시 나왔는데, 다른 교수들도 비슷한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종합해본즉 소문의 주인공은 실제로 1978년 미스코리아 진이라는 것이다. 사실 K교수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TV를 통해서만 보았지 가까이서 미스코리아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다고 비판하는 여성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2002년부터 공중파 중계방송이 폐지되었다. 아쉬운 일이다.)
K교수는 발동하는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었다. 1998년부터 20년 전인 1978년 미스코리아(이하 미스K라고 줄여서 표기함)라면 이제는 나이가 40을 넘었을 터인데, 아직도 20대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을까? 우리 마누라는 40 넘더니 눈가에 잔주름이 보이던데, 미스K는 어떻게 늙어갈까?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은 마침 야간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강의를 해야 했다. ㄱ교수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자기도 논문 쓰는 일이 밀려 있어서 저녁식사 하고 늦게 갈 예정이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미녀식당에 같이 가서 미스K를 만나보기로 했다. 연구실이 한 건물의 다른 층에 있기 때문에 현관에서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는데, 현관에서 마침 ㄴ교수를 만났다. ㄴ교수도 저녁 식사를 하러 간다기에 자연스럽게 세 사람이 같이 가게 되었다.
학교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K교수가 식당 문을 열려다가 멈추더니 말했다. “아니, 여기 제비꽃 좀 보세요.” 나무로 지은 식당 입구 벽과 보도 블록 사이의 작은 틈에 보라색 제비꽃이 여러 송이 피어 있었다. 허리를 굽혀야 보일 정도로 작고 예쁜 제비꽃이었다. “오랑캐꽃 아니에요?” ㄴ교수가 물었다. “아, 같은 꽃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즈음에 핀다고 해서 제비꽃이라고 하지요. 오랑캐꽃이란 옛날에 북쪽에 있던 유목민 오랑캐들이 보릿고개 무렵 식량이 떨어지면 남쪽으로 쳐들어오곤 했는데, 그때 쯤 핀다고 해서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평소에도 식물에 관심이 많은 K교수가 대답했다.
식당에 들어가 보니 실내장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식당에는 전에도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데, 칼국수와 김치볶음밥을 주로 하는 평범한 식당이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건물의 외벽에도 하얀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실내장식도 새롭게 단장하여 전혀 다른 식당이 되어 있었다. 마치 세수 안 한 여자가 세수하고 화장하고 예쁜 옷 입으면 전혀 새 사람이 되는 그런 식이었다.
식탁에 앉아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니, 걸려있는 사진들이 예사 사진이 아니었다. 곳곳에 걸려있는 사진은 마르린 몬로의 선정적인 사진을 비롯해서 영화 ‘피아노’의 포스터 사진, 그리고 미국 모델들의 야한 사진들이었다. 사실 야하다는 것은 주관적일 것이다. 관점을 달리한다면 예술적이라고 잘 봐 줄 수도 있으련만, 예술에 별로 관심이 없는 K교수에게는 그저 야하다는 느낌이 우선적으로 들었다. 아마도 알바생인 듯, 여대생 느낌을 주는 아가씨가 주문을 받으러 왔는데, 종업원 역시 주인을 닮았는지 미인이었다.
“이 식당이 완전히 달라졌네. 그런데, 여기서는 무엇을 잘 하나?”
“여기는 스파게티 전문점입니다. 스파게티 종류는 무엇이든지 맛있게 잘 합니다.”
종업원은 메뉴판을 열어 보이며 불고기 스파게티를 권했다. 불고기 스파게티는 사장님이 특별히 개발한 스파게티로서 한국 사람 입맛에 맞아서 추천할 만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불고기 스파게티를 주세요. 그런데, 사장님은 계시나?”
“네, 주방에 계세요.”
“한 번 나오시라고 해. 미인이라던데 정말이니?”
“그럼은요. 미스코리아 출신이세요.”
“정말이야? 지금 좀 보고 싶다고 전해줘.”
첫댓글 드디어 소설이 본격 펼쳐지니 독자로서 흥미로운 주제가 주옥같은 글에 담겨 더욱 매료되l고 절로 빠져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