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눈
박혜선
귀는 없고
입도 없고
눈만 있는
쌀은
배고픈 사람 보면
그냥 못 지나치고 밥이 된다.
ㅡㅡㅡㅡㅡㅡ
책소개
저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어린이가 ‘문을 닫는’ 때가 찾아온다. 방문을 닫기도 하고, 말문을 닫는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어른들은 으레 사춘기라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 쉬운 단정은 자칫 어린이라는 존재, 어린이의 마음을 단순하고 납작하게 정의한다. 하지만 어린이에게 닫을 문이 생겼다는 것은 자기만의 세계가 생겼다는 의미다. 닫아건 문의 안쪽, 언뜻 고요해 보이는 그 마음속에는 수많은 말과 감정들이 가득하다.
『바람의 사춘기』는 한국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수상 작가인 박혜선 시인이 오랜만에 내놓는 동시집이다. 박혜선 시인은 십여 년간 전국의 어린이들이 보내온 동시를 읽고, 함께 읽을 작품을 골라 어린이신문에 싣는 일을 해 왔다. 그런 그가 보여 주는 ‘사춘기’ 언저리의 시적 화자는 종일 마음에 바람이 부는 듯한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위로하기도 한다. 또한 어른들이 구획한 일상 속에서도 오롯이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사는 존재들을 생각한다.
『바람의 사춘기』에는 수년간 어린이들을 바라보고 이야기 나누며 체득한 이해와 존중의 태도,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고르고 고른 시어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같은 경험을 가진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시에 공감하고, 그 시를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공감’이 얼마나 큰 위로와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도서 내용]
우리가 나누는 말과 말 사이에는 수많은 감정이 있다. 어린이들의 말에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은 말과 말 사이에 수많은 생각과 마음을 넣어 본다. 기뻐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동화작가이자 동시인인 박혜선의 새 동시집은 행간을 짐작하고 예민해지는 사춘기 어린이를 시적 화자로 한 작품들이다. 온종일 바람을 맞는 듯한 시기인 ‘사춘기’ 독자들은 시에 담긴 심상에 공감하며 위로받고, 시의 행간을 음미하는 ‘시 읽는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작.
첫댓글 '이 책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같은 경험을 가진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시에 공감하고,
그 시를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정말이지 문학만이 가능한 경험을 갖게 해주는 동시이네요.
동시 읽는 눈을 밝혀주는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분천 분교, 글 참 좋아요.**
분천분교 / 박혜선
아이들과 선생님은 떠났지만
학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로 했다
책 읽는 소녀가 학교 화단에 남아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고
이순신 장군이 큰 칼을 차고 소녀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군님, 장군님. 무거운 갑옷 입고 얼마나 더우세요?”
화단에 난 풀들은 덩굴손 칭칭 감아 옷을 입혀주었다
“장군님, 장군님. 큰 칼도 내려놓으세요.”
큰 칼이 푸릇푸릇 나뭇가지가 되었다
풀벌레들이 장군님 몸을 오르내리며 놀았다
참새가 어깨에 내려앉고 칼끝에 잠자리가 쉬었다 갔다
드디어 오늘,
책 읽던 소녀는 나팔꽃 원피스를 입었다
꽃무늬 원피스 나풀거리며 고무줄놀이하기 딱 좋은
초가을 아침이었다.
한편의 짧은 동화를 읽는 것처럼 이야기가 풍성한 맛깔스러운 동시죠.
하얀 도화지를 펼쳐놓고 분천분교의 풍경을 그려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