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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매(探梅)' 14首
梅月堂詩集卷之十二. 遊金鼇錄
매화에 대한 김시습의 남다른 사랑은 경주 금오산에 머물 때 적은 글을 엮은 <유금오록(遊金鰲錄)>에 실려 있는
'탐매(探梅)'라는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매화를 찾아서'라는 뜻의 이 시는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깨끗하고
맑은 향기와 꽃을 피우는 매화의 본성을 다양한 표현을 통해 찾아가는 절묘한 작품이다.
모두 14수(首)로 이루어져 있는 이 시에서 김시습은 매화의 본성을 정혼(貞魂), 정백(貞白), 정결(貞潔),
청영(淸影), 정신(精神), 진취(眞趣), 진미(眞味), 청진(淸眞), 고격(高格), 대절(大節), 정명(貞名) 등의
시어(詩語)로 다채롭게 묘사하고 있다.
(註) 김시습의 詩 '探梅' 14首 사이사이에 탐매도(探梅圖).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등
그림으로 피어난 매화를 걸어 보았습니다. 참고하시라고 원문 해설을 두 가지 올렸구요.
梅花書屋圖 ; 소치 허련(小痴 許練1808~1892)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
大枝小枝雪千堆。溫暖應知次第開。
玉骨貞魂雖不語。南條春意最先胚。
크고 작은 가지마다 눈 내리 쌓였다만 가지마다 눈이 천만겹 쌓였지만
따스함을 알아채고 차례로 트는구나. 따뜻해지면 차례로 꽃 피어나리
백골 혼백은 말하지 않았건만 옥골정혼(玉骨貞魂)은 말이 없어도
남쪽 가지에 춘심이 먼저 눈망울 틔웠구나. 남쪽 가지 봄뜻을 먼저 머금었네.
* 백골, 옥골 : 잎사귀 없는 나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았음.
- 2 -
魏紫姚黃摠有名。繁華定被得春情。
那如阿堵心貞白。不與世人高下評。
위자(魏紫) 모란 요황(姚黃) 모란 모두 이름나 자모란 황모란이 유명한 것은
아름다운 자태, 필경은 춘정 받게 되어 있거늘 번화함에 춘정이 이끌린 까닭
저들도 너와같이 마음 청백하다면 어찌 견주랴! 매화는 곧고 맑아
잡인들과 어울려 우열(優劣) 논하지 않으련다. 세인의 품평조차 허여 않나니.
* 위자요황 -중국 낙양은 모란꽃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 중에도 위씨(魏氏)의 집 자모란(紫牧丹)과
요씨(姚氏)의 집 황모란(黃牧丹)이 유명하여 '위자요황(魏紫姚黃)'이란 말이 생겼다
* 요황위자 -宋代 구양수(歐陽修)의 <목단보>에 "錢思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란은 꽃 중의 왕이다.' ,
하지만, 지금 요씨의 집에 있는 노랑꽃(姚黃)은 참으로 꽃 중의 왕이라 할만하고
위씨의 집에 있는 자주꽃(魏紫)은 왕후라 할 만하다.'하였다" 고 쓰여있다.
- 3 -
夙聞貞潔最多情。不與東風紅紫爭。
一見孤山心便許。由來行誤曩時名。
정결한 그 모습 가장 다정스러운데 일찍이 들었노라, 곧고도 깨끗함 가장 다정하여
동풍에 피는 뭇꽃들과 다투지 않는다지 동풍의 홍자(紅紫)와 다투지 않음을
고산을 한 번 보고 그만 마음 허락하여 고산孤山을 한 번 본뒤 마음을 허락하여
예전의 그 이름 그르치고 말았구나. 그때부터 옛 이름 그릇 행해졌네.
* 고산(孤山):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는 항주 서호 근처의 孤山에서 은둔생활을 했으므로, 고산 선생으로 불렸다.
그의 유명한 매화 시 '산원 소매(山園小梅)'는 문인화가들이 화제로 즐겨 사용하는 시이다.
梅花草屋圖 : 고람 전기(古藍 田琦 1825(순조25)~1854(철종5):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4 -
大枝蟠屈小枝糾。一榦斜橫杜若洲。
淸影若非三五魄。平生描得定無由。
큰 가지 작은 가지 서로 얽히고 큰 가지는 서려 굽고 작은 가지는 얽혔는데
한 줄기는 방주(芳洲)에 비껴 걸쳤다만 한 줄기 나뭇가지 두약주(杜若洲)에 비껴있네
맑게 비친 네 모습, 보름날 어스름 달빛 빌 수 없다면 맑은 그림자가 만약에 보름달이 아니라면
한 평생 그려 보았자 어쩔 수가 없으리. 평생에 그려낼 길 분명히 없었으리.
- 5 -
色耶香耶聖難知。月下精神便是奇。
仔細辨來▣的處。無情淡色被香欺。(▣의 글자를 단으로 파악)
색인지 향기인지 귀신도 모를 거다만 색인지 향기인지는 성인도 알기가 어렵지만
달빛 아래 오묘한 운치(韻致) 기이하여 달빛 아래 넘치는 생기는 바로 기이함이로다
▣ 곳을 요리조리 살펴봤더니 찬찬하고 빈틈없이 분별하여 ▣한 곳에서는
무심한 엷은 색인걸 향기 때문에 속았구나. 정 없는 연한 빛깔은 향기에 업신여김만 당하네.
尋梅圖: 석파 김용행(石坡 金龍行 1753(영조29)~1778(정조2) :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 6 -
雪路尋君獨杖藜。箇中眞趣悟還迷。
有心却被無心使。直到參橫月在西。
눈 속에 청려장 짚고 홀로 그대 찾아가니 눈길에 그대 찾아 홀로 지팡이 짚고 가니
그 속에 참맛 있어 깨달았다 도로 미혹되네. 그 가운데 참된 뜻 깨닫을 듯 도로 아득한 듯
무심無心하던 마음에 유심有心이 생겨나 유심有心이 도리어 무심無心의 부림을 받아
달이 다 기울도록 떠나지 못하네. 세별이 비끼고 달이 서쪽 있는 때에 이르렀네.
- 7 -
騷墨風流幾讚君。說君眞味未深聞。
蕭條老榦開三四。便是超群眼有筋。
소인묵객 풍류객 모두들 널 찬미했건만 떠들썩한 묵墨의 풍류 수도 없이 그대 칭찬했지만
네 진면목을 그린 말은 멀리서도 들리지 않는다. 그대의 진미眞味 아직 탐문探聞하지 못했네
쇠잔한 늙은 줄기는 눈망울 서넛을 틔웠는데 쓸쓸하고 고요한 노간老幹에 서너 송이 피었지만
출중해 눈에 띄고 눈망울은 힘줄을 드러냈구나. 문득 무리를 초월하여 눈을 사로잡네.
파교심매도(擺橋尋梅圖)-(部分):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1707~69):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8 -
孤山兩句得精神。數語可驚千古人。
疏影暗香雖得骨。未知寒蘂獨淸眞。
고산(孤山) 시(詩) 두 마디 운치가 넘쳐 고산(孤山)의 주옥같은 시어(詩語)
말 몇 마디로 옛 사람을 놀라게 했으리니. 몇 마디가 천고에 길이 빛나네.
너를 그린 고산 시(詩), 비록 격조(格調) 갖췄지만 "성긴 그림자" "은은한 향기"로 매화를 그리긴 해도
그도 네 홀로 청순(淸純)함을 알지 못했더구나. 차가운 꽃술만이 맑고 참된 모습인 줄은 몰랐네
* 寒蘂 : 겨울에 피는 꽃. 매화를 가리킴.
* 고산 선생 두 마디: 疏影横斜水清浅,暗香浮动月黄昏
문인화가들이 화제로 즐겨 사용하는 매화시가 몇 수 있는데 가장 유명한 시가 임포(고산 선생)의 <山園小梅>이다.
宋代 歐陽修는 이 시의 셋째 구절과 넷째 구절을 보고 감탄하면서 “일찍이 매화를 노래한 시는 많지만
이 구절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고 평가했다. 문인화가들이 매화를 그린 뒤 화제로 즐겨 쓰는
‘소영횡사(疏影橫斜)’가 셋째 구이고, ‘암향부동(暗香浮動)’이 넷째 구이다.
- 9 -
世人培養膽甁中。紙帳明窓竟日同。
不覺數交多取謾。何如苦訪雪泥融。
세상 사람들은 널 화병에 기르며 세상 사람 매화를 병에 꽂아 기르니
종이 휘장 창을 밝혀 종일 함께 하면서 지장紙帳 둘러 창 앞에 놓고 종일토록 바라보네
잦은 만남에도 염증 쌓이는 걸 느끼지 못하는데 자주 보면 어느새 만만해지는 법
무엇 때문에, 질퍽이는 눈길로 널 찾길 괴로워하랴. 힘들여 눈길 걸어 찾아감만 못하네.
가헌관매도(可軒觀梅圖)-(部分) : 석당 이유신(石塘 李維新): 개인 소장
눈 내린 겨울 밤 '가헌(可軒)'이란 곳에 여러 선비들이 모여 분매(盆梅)를 감상하고 있다
- 10 -
我曾恰似放翁狂。三十年來物我忘。
今日見君還有意。明朝定欲道霞觴。
내 일찍이 육방옹(陸放翁)처럼 미쳐 내 일찍이 육방옹의 광기 닮아
30년 내내 자신과 외부 세계 잊고 살았는데 삼십 년 동안 물아物我를 잊었는데
오늘 네가 다시 뜻을 얻은 것을 보았음에야 오늘 그대 만나보니 정이 있어
내일은 정녕 미주(美酒) 가득한 술잔 엎고 말리라. 내일 아침 틀림없이 하상霞觴을 말하려네
* 하상霞觴 - 신선이 마시는 술잔 * 육방옹(陸放翁) - 南宋의 시인
- 11 -
一枝枯瘦一枝榮。腸斷春心作麽生。
雨露恰是無情物。耐見彫殘不受亨。
한 가지는 말랐고 다른 가지 번성해도 한 가지는 말랐고 한 가지는 번성하니
임 그려 애타는 마음 작은 생명 빚었구나. 애끓는 봄 마음 어찌하여 생기는지?
비와 이슬이 어찌 무심한 것이라고 우로(雨露)는 진실로 정이 없는 물건이라
쇠락함을 익히 알고도 제물(祭物) 나눠주지 않았으랴. 조락하여 활짝 피지 못하는 걸 차마 보노라.
梅花書屋圖- (部分);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1789~1866) : 간송미술관 소장
- 12 -
半乾枯葉着春枝。細料東風不解吹。
爲子却能先着蘂。故防無葉被人欺。
절반이나 마른 잎이 봄 가지에 붙었으니 절반쯤 말라 시든 잎이 꽃가지에 달렸구나
곰곰이 생각함에 동풍이 부는 것을 알지 못하는 듯 아마도 봄바람이 잎의 뜻을 모름이라
자식 위해 도리어 먼저 꽃술을 붙였으니 차라리 잎은 두고 꽃이라도 먼저 피어
잎 없음을 짐짓 막아 사람 속임을 당하였네. 잎 없다 조롱할까 남의 입을 막을세라.
- 13 -
花時高格透群芳。結子調和鼎味香。
直到始終存大節。衆芳那敢窺其傍。
봄날 고상한 네 품격은 온갖 꽃 뛰어넘고 꽃 필 때의 높은 품격 여러 꽃 중에서 빼어나고
네 결실은 국정(國政)과 조화 이룰 향기이러니. 씨 맺어 조화하면 음식 맛이 향기롭다.
시종 한 눈 팔지 않고 큰 절개를 지켜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큰 절개 가졌나니
잡것들이 어찌 감히 근처라도 훔쳐보랴. 여러 꽃들이 어찌 그 곁을 엿볼 수나 있으리.
- 14 -
切莫隨風逐馬蹄。歸時雖好惹還非。
自從一見塵泥涴。謾得貞名世上誹。
바람 따라 말발굽을 쫓지 말라하니 바람 따라 말타고 매화 구경 가지마소
돌아갈 땐 좋지만 잘못을 야기하네 갈 땐 좋지만 잘못을 야기하네
흙먼지로 한 번 더럽힘을 당하고 나면 흙먼지로 매화 한 번 더럽히고 나면
부질 없이 정명貞名 얻음을 세상이 비난하리. 정결한 그 이름 함부로 했다고 세상이 비난하리.
(左) : 梅花書屋圖 ;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1789~1866) : 간송미술관 소장
(右) : 探梅圖 : 연담 김명국(蓮潭 金明國 1600~166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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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首에 나오는 임포(林逋:孤山)의 시를 공부합시다 *-
山園小梅 - 산원의 작은 매화
임포(林逋 : 967~1029)
重芳搖落獨暄姸 중방요락독훤연 : 온갖 꽃 다 떨어진 후에 홀로 곱게 피어
占盡風情向小園 점진풍정향소원 : 작은 동산 풍치 혼자 다 차지했네.
疎影橫斜水淸淺 소영횡사수청천 :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에 비스듬히 드리우고
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 그윽한 향기는 어스름 달빛아래 감도누나.
霜禽欲下先偸眼 상금욕하선투안 : 서리새 앉으려고 먼저 주위를 훔쳐보는데
粉蝶如知合斷魂 분접여지합단혼 : 어지러이 나는 나비 외로운 혼을 아는 듯해
幸有微吟可相狎 행유미음가상압 : 다행히 나는 시 읊으며 서로 친할 수 있으니
不須檀板共金樽 불수단판공금준 : 노래판과 술자리가 무슨 소용 있으랴!
송나라 임포(和靖林逋, 967~1029)는 북송北宋의 시인으로, 자는 군복君復, 시호는 화정선생和靖先生이다. 그는 일찍이
학문에 정려하여 명성이 높았지만, 부패한 정치에 불만을 품은 채 항주抗州의 서호西湖 가운데 있는 고산孤山에 집을 짓고
은거해 살았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20여 년 동안 城市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신변에는 언제나 백학과 사슴 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는데, 술을 마시고 싶으면 목에 술병을 걸친 사슴을 술집에 보내 술을 사오게 했다. 그가 학을 날리면 학은 구름 속으로 날아올라 선회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며, 산사를 유람할 때 손님이 방문하면 동자가 학을 날려 하늘에 오른 학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다.
어느 때 아는 사람의 권고를 받아 집 주변에 360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은 후에는 완전히 매화에 심취하여 감상하고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의 일생은 ‘매치(梅痴)’라고 이를 만큼 매화에 미쳐서 살았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를 “매화를 아내로 삼고(梅妻) 학을 아들로 삼고(鶴子) 사슴을 집안 심부름꾼(鹿家人)으로 삼았다”고 하여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렀다. 영리한 사슴의 등에는 매화 모양의 반점이 있었다는 말까지 전해진다.
임포는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능했다. 그는 많은 시를 지었으나 세상에 남아있는 시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시 가운데 문인화가들이 화제로 즐겨 사용하는 매화시가 몇 수 있는데 가장 유명한 시가 ‘산원소매(山園小梅)’이다. 송대(宋代) 구양수 歐陽修:1007~1072)는 이 시의 셋째 구절과 넷째 구절을 보고 감탄하면서 “일찍이 매화를 노래한 시는 많지만 이 구절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고 평가했다. 문인화가들이 매화를 그린 뒤 화제로 즐겨 쓰는 ‘소영횡사(疏影橫斜)’가 셋째 구이고, ‘암향부동(暗香浮動)’이 넷째 구이다.
특히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이란 구절은 매화와 달이 함께 있을 때 느끼는 후각과 시각의 감흥을 절묘하게 살린
표현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구절이다. 지금도 문인화가들은 매화를 그린 뒤 암향이란 말을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다.
<檀園 金弘道 - 월매도(月梅圖)>
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小癡 許維(許鍊) - 묵매도(墨梅圖)
霜禽欲下先偸眼 粉蝶如知合斷魂
첫댓글 선생님 지난 주말 화양서원에서 1박 하며,
폰으로 연락을 취했더니 안되더군요!
아직 서울에 있습니다. 5월1일까지...
교회에 갈 때 폰을 집에 두고 갔기 때문에 월요일에야 메시지를 보았습니다.
만나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매월당의 탐매 14수를
이민혜선생님이 아니면
제 평생 접해보기나 했을까요.
덕분에 품격 높은 시를 두고두고 감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