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2:1~13).
1절.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슈아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절. 예슈아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사흘째 되던 날은 주님이 요단강 베다니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신 후 셋째 날을 의미한다(요1:43). 갈릴리 가나는 가버나움에서 가까운 근처인 것 같다(요2:12), 아마 이 혼인잔치는 예슈아 주님의 어머니의 가까운 친척이거나 제자들 중 하나의 친척인 것 같다. 예슈아 주님뿐만 아니라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초청을 받았다.
3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슈아의 어머니가 예슈아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그런데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포도주(즙)는 성경에서 긍정적인 표현 보다는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많지만 혼인잔치에서 포도주(즙)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것을 상징한다(시4:7, 104:15). 예슈아 주님의 어머니가 그분/하나님의 아들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즙)가 없다고 하였다. 그녀는 자기의 태를 통하여 지극히 높은신의 아들로 오신(눅1:31~32) 예슈아께서 이적을 베풀어 그분/하나님의 아들을 정체를 드러내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4절. 예슈아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나이다.
그러자 예슈아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하셨다.
“상관”의 기본적 의미는 서로 관련을 가지다, 또는 그런 관계를 말한다.
또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자신과 관련 없는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신경 쓰는 것을 말한다. 헬라어로“멜로melo”인데 이 말은“관심을 가지다. ~와 상관있다.
[현재직설법에서 비 인칭 동사로 사용] 꺼리다, 돌아보다, 생각하다, 상관하다, 염려하다. 등등 둘 사이에는 일치되는 것이나 공통점이 없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음을 언급하여 쓰였다. 예슈아 주님은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의 심정을 알고 계셨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들이 신성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기를 원했지만 주님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본문에서 예슈아 주님은 자기의 어머니를“여자”라고 호칭한다.
이 말은 만물을 주관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마리아를 보는 측면에서 이해 하여야 한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말은 주님이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이지 능력을 행하고 기적을 베풀어 사람들에게 이목을 끌고 사람들에게서 영광만을 받으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이해하여야 한다(마1:21), 그러므로 주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답변하셨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 말을 자기 어머니를 극 존칭한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형제자매라고 칭하여야 한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여자는 헬라어로“귀네gune”인데“~이 되다, 일어나다, 발생하다”을 뜻하는“기노마이ginomai”어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여인, 여자, 장성한
여인“을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어머니 말고도 다른 여자들에게도 똑 같이 이 말을 사용했다
예슈아 주님이“여자”라고 부른 여인들
마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 막7:26).
마26:10,12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장례를 위하여 옥합을 부은 여인(마리아), 막14:3).
눅7:44 이 여자를 보느냐(죄 많은 한 여인)
눅13:12 여자여 네가 병에서 놓였다(18년 동안 악령에 들린 여인)
요4:21 여자여 내 말을 들으라(사마리아 여인)
요8:10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간음 중에 잡힌 여인)
요19:26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예슈아 주님의 육신의 어머니, 십자가에 못 받으시고 매달려)
요20:15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막달라 마리아, 20:18)
그러므로“귀네gune”는 여자에 대한 경칭으로“귀부인, 또는 숙녀”들에게만 하신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5절.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그의 어머니는 주님의 말씀의 뜻을 충분이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다시 말하면 주님의 어머니는 하인들이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하지 아니하였다. 오늘 날 천주교는 예슈아 주님께 드릴 말씀을 마리아(우상)에게 대신 청원을 부탁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마리아는 내게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여 그 일들이 자신과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6절.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정결케 하는 예식이 있었다. 그들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을 먼저 씻어야 한다. 예슈아 주님은 어떤 바리새인이 자신을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이상히 여겼으며(눅11:37~38), 그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 으로 빵을 먹을 때에 손 씻지 아니하는 것을 하나님의 계명을 범했다고 비난했다(마15:2~3) 그 집에는 그런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다.
7절. 예슈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주님이 하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그들은 시키는 대로 물로 아귀까지 채웠다. 그러자 다시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니 갖다 주었더니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
아무도 변조했다고 비난 하지 못하도록 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채우라고 하셨다. 항아리에 물을 채운 것은 제자들이 아니었다. 그 집에 하인들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기적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아무도 그 일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다.
9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절.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은 이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하인들이 떠다주는 물로 된 포도주(즙)를 맛보고 감탄했다. 그러나 하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연회장은 신랑을 불러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즙)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즙)를 두었도다 하면서 칭찬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세상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주님의 방법은 달랐다. 이 사건은 우리 주님께서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려는 의미로 행하신 기적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외적인 기쁨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적인 진정한 기쁨은 없었다. 사람들은 메마른 형식과 의식들을 행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에는 진정한 기쁨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 기쁨이 없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기쁨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본문에서 예슈아님이 만든 것이 포도주냐 포도즙이냐 라는 것을 놓고 논란이 있다. 이것은 성경은 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잠23:29~31) 헨리 모리스는 구약에서는 두 종류의 히브리 낱말“티로쉬”와 “야인”이 둘 다 “포도주”로 번역되어 있는데 전자는 신선한 포도즙을 말하고 후자는 발효된 포도즙을 의미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헬라어는 이 두 종류의 포도즙을 나타나는데 동일한 단어“오이노스oinos”가 사용되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신약에서는 이 말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포도주나 취하게 만드는 다른 술을 마시는 것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11절. 예슈아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표적은 주님이 처음 행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주님은 어려서부터 표적을 행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은 해석이 아니다. 또한 이런 표적을 통하여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마음을 돌이켜 회개 하지는 못한다. 본문에는 이 표적을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고 했지 표적을 본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다고 기록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제자들은 주님을 자신들이 직접 만나고 대화하여 보고 성경에 기록한 대언자들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믿고(believe) 따라온 자들이다.
12절. 그 후에 예슈아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13절.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주님은 그 후에 가나를 떠나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 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고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그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유월절”은 히브리어“페싸흐pecack”헬라어로“파스카pascha”이다.
페싸흐pecack”는“지나가다, 넘어가다, 통과하다”을 뜻하는“파싸흐pacach”에서 유래한 것으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날 때에 사람들의 처음 난 것을 주의 천사가 죽일 때에 그 형벌과 재난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빕월14일에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죽음의 천사를 피한 것을 기념하는 날을 말한다(출12:1~12) 유대인들은 이날에 반드시 예루살렘에 모여 이일을 기념하게 되어 있었다(신12:5, 16:2,11).이것을 여호와의 유월절이라고 한다(출12:11,27, 레23:5).그런데 본문에서는 유대인의 유월절이라고 했다. 이 말은 유월절의 참 의미의 본질은 사라져 없고 유대인의 오랜 관습과 전통을 따라 습관적으로 지키고 행하여지고 있기 때문이다(요5:1, 6:4, 11:55).유대인의 남자들은 매년에 세 차례 큰 명절 즉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는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야 했다.(출23:14~17, 34:23, 신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