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자년 12월의 단상
아름다운 관계, 그리고 예고 없는 이별
2010년 4월 4일에 태어나 2020년 12월 5일에 떠난 진두리를 애도하며
10년 8개월간의 사랑과 이별이다.
온전히 사랑만 주다가 그리움만 남기고 떠났다. 떠나는 순간에도 중문을 열고 무언의 인사를 하고 홀연 영원의 길로 나섰다.
중문을 발로 톡, 톡 가볍게 두들기고 문을 열어 달라며 눈인사를 하던 두리였는데 마지막 가는 시각에는 바람처럼 문을 열고 들어와 화분 옆에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 해맑은 눈으로 올려보지도 않고 고개만 푹 숙이다가 마당으로 나갔다. 그것이 마지막 고별인사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고통이나 괴로움의 흔적도 없이 이토록 처연하게 떠날 수 있을까.
만남과 헤어짐의 선상에서 진두리는 많은 것을 남겨주고 갔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명증하게 보여주며 관계라는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사이에 형성된 인연의 소중함을 몸소 보여주었다.
밥상 앞에서 단아한 침묵으로 기다릴 줄 알며, 절제된 기다림의 자세를 통해 스스로 건강한 육신을 온전하게 지켜낸 두리였다.
반가움과 기쁨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고 슬픔과 아픔은 다소곳 눈빛으로 아둔하기만 한 나에게 은근히 전달해줬다. 혀로는 외출에서 돌아온 피로도가 높은 온몸을 씻어주고 핥아주며 끝내 숨었던 미소를 솟아나게 했다.
사랑의 진실을 몸으로 보여주고 떠난 진두리는 진도군수가 지역사회와의 협업적 관계를 기념하여 은평구청장에게 선사한 진돗개 중 순수 토종인 호구에게서 태어난 8마리 중 막내이다.
처음으로 안아 본 따스한 온기로 재롱 피우는 모습은 하루의 피로를 솜사탕처럼 녹여주었다.
난생처음 강아지를 키우며 1년도 안된 어느 날이다.
외국산 사료를 구매하여 먹이다가 마트에 가면 저렴한 사료가 있다고 하여 이마트에서 D사료 제품을 구매했다.
사료봉투에서 한바가지 퍼서 밥그릇에 부어주고 새 물로 갈아주면 두리의 아침과 저녁식사는 끝이다.
그렇게 5일쯤 먹던 두리가 피똥을 싸고 비실거리다 마당에 늘어져 가볍게 일어나지 못했다..
난생처음 동물병원을 찾았다. 곰팡이 균의 독성으로 내장이 손상된 것 같다는 진단과 함께 종합검사를 하고 온갖 치료제를 다 써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사람치료보다 비싼 치료비를 지불해야 했다.
입원첫날 두리는 ‘갇힘’의 공포 속에서 창살을 물어뜯으며 광란을 일으켜 입원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병원전화를 받고, 원장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날마다 통원치료를 하게 되었다. 피똥을 싸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두리는 ‘자유’가 절대 절명의 생존본능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히 집 근처 병원이라 처음에는 휘청대면서도 꾸역꾸역 제 발로 병원엘 다녔는데 나중에는 차에 태워서 안고 병원엘 다녀야 했다. 그렇게 20여일을 병과 싸웠지만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선언했다. 혹 모르니 건대병원이나 서울대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담당 수의사에게 물었다.‘서울대병원을 가면 치료가 가능한가요?’ 의사는 답이 없다, 침묵이 흘렀다
"최선을 다해주세요. 마지막까지" 그리고 돌아왔다. 마음속으로 마지막 떠나보내야 할 준비를 시작했다.
다음날부터 2박 3일간 지방 연수원으로 출장이 계획되었고 강사로 초빙되어서 빠질 수도 없었다.
애견의 죽음을 맞는 순간 홀연 집을 비울 수 없어 출장을 포기했다. 진행자 측에는 심심한 사과를 거듭거듭 했다.
병원에서 치료포기선고를 받고 돌아온 날, 우리가족들은 두리를 안고 울었다. 두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고, 그때 처음으로 동물도 슬퍼할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룻밤을 힘들게 버텨내더니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기적은 이런 것을 말하는가.
출혈량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피똥은 드디어 멈추었다.
병원장은 "두리는 강력한 생존의지로 고비를 넘긴 것 같습니다."라며 숙연히 말했다.
치료비로만 680만 원이 들어갔다.
많은 치료비를 사용했다고 병원 측도 말했다. 보통 200만원이 넘기 시작하면 치료를 포기한다고 한다.
발병즉시 E마트에 문제제기했고, E마트는 사료회사로 넘겼고, 사료회사는 사과하는 척 시간을 끌면서 소비자를 우롱했다. 결국 소액재판을 청구하게되었다. 회사 측에서도 푸르고 하얀 곰팡이가 봉지 속 깊숙히 섞인 사료를 확인하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일단 치료를 받고 있으면 배상은 충실하게 하겠다며 거듭거듭 사과하고, 사료분석을 한다며 사료를 통째로 가져갔다. 회사 측에서 온 직원의 사과를 진실로 믿고 두리 치료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사료회사는 사료분석중이라며 시간을 질질 끌며, 3주를 지난 즈음에 자체적으로 만든 사료 분석지를 팩스로 보내놓고, 찾아와서 사과했던 그 직원은 애매하게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끝내는 피해자를 블랙 컨슈머로 몰아가려하고 있었다.
여자 판사는 첫 재판 때는 피고인 측 변호인의 억지주장에 대하여 “E마트에서 나도 참치 캔을 샀는데, 변질된 제품이었다.”고 하더니, 몇 달 후 결심 전 재판에서 "분노한 심정은 알겠지만, 개가 살아났으니, 돈 때문에 시작된 건 아니니, 100만원을 제시"하며 협의조정을 권유 헸다. 그걸로 끝이다.
사료문제로 소송까지 간 사례는 후에 KBS방송에서 1시간가량 특집 기획으로 보도되었다.
완쾌한 두리가 어느 날 집을 나가서 온 동네를 찾았는데, 병원 문 앞에 서 있었다. 두리는 병원을 찾아가 감사함의 표시를 한듯하다.
그리고 10여 년간 두리는 해마다 예방접종과 예방약만 먹고 건강하고 경쾌하게, 용맹스럽게, 의젓하게, 참으로 멋지게 성장했다.
곰팡이 사료사건 이후부터 유기농 식재료로 정성들여 밥을 만들어 먹였다, 사람이 먹는 식재료가 사료상품의 원재료보다 안전하다고 인지한 결론이었다. 두리는 단 한 번도 병치레 없이 10여년을 무한한 신뢰와 사랑으로 우리 곁을 지켜왔다.
두리가 떠난 주말 아침 처음으로 홀로 고봉산길을 산책했다.
둘이 밤나무를 지나걸으며, 저 멀리 고속도로 공사를 하네, 얼마 후에는 이 길은 돌아서 갈 수밖에 없구나. 중얼대던 소리를 듣고 먼 곳의 크레인과 트럭들의 작업광경을 황망이 쳐다보던 소나무 숲길.
하루가 지나 홀로 걷는 산책로에는 두리의 영역표시내음이 나는 듯하다.
참, 두리에 대한 또 다른 죄송함은 암놈을 찾지 못해 결국 중성화수술을 했다. 암놈을 찾기 위해 강화도와 이천, 고양시 등을 찾아다녔지만 진돗개 순종 호구를 찾지 못했다.
온유하고 애교스러운, 말썽 한번 피우지 않고 언제나 내 곁에서 머물며 아침인사를 하던 영민한 두리는 내게 온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주었고, 의연한 기다림의 자세를 보여주었고, 관계의 아름다움을 체득하게 하고, 이별의 서러움까지도 아름답게 남기고 갔다. 이 황망한 슬픔을 우리에게 남긴 채로...
*온전한 사랑만 남기고 간 두리를 그리워하며 칼럼이 아닌 단상으로 글을 남기고자 한다.(진두리/진돗개/호구/순수혈통,10년 8개월(사람나이 76세):길샘 김동환
[출처] 환경경영신문 - http://ionestop.kr/bbs/board.php?bo_table=B06&wr_id=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