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청교도와 복음전도
영국 국교회에서 복음 전도에 대한 정의를“ 그리스도 예수를 성령의 능력으로 제시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교제 가운데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왕으로 섬기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복음전도를 결과라기보다 목적으로 정의한다)
청교도들은 복음 전도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고 말하나 복음 전도는 이들의 주요 관심이었다. 리차드 박스터와 많은 청교도 설교자들이 비회심자들의 대한 뛰어난 성공적인 설교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교도들의 설교는 회심에 맞추어져 있었고, 복음 전도의 많은 문서들을 창안한 자들이다.
1.현대복음전도
현대 복음 전도는 지역 교회 회중의 정상적 기능에 있어서 임시적이며 특별한 경우의 활동이며 부수적이며 보조적인 활동이 된다. 특별한 종류의 특별한 집회들이 계획되고 보통 특별한 설교자들이 그 집회를 인도하도록 확보된다. 종종 그 집회들은‘예배’보다는‘집회’라고 칭해지며 어떤 곳에서는 ‘부흥회’라고 칭해진다. 이때에 전도 집회와 같이 결심을 요구받고 결신에 대한 상담을 받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집회는 찰스 피니에 의해 창안이 되었고, 그는‘오래 끄는 집회’(즉 강력한 복음 전도의 권유)와 고민의 자리를 도입했다. 이러한 것들이 피니의 새로운 방법들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주기적인 초청으로서의 신앙부흥에 대한 에드워드의 철학을 지지한 반면에 인간이 신앙부흥을 주도할 수 없다는 에드워드의 가정을 의심했고, 어거스틴과 종교개혁과 청교도의 전적부패에 대한 신학, 즉 새롭게 하는 은혜가 없이 인간은 회개하거나 믿거나 영적으로 선한 어떤 일을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신념-에 대한 에드워드의 주장을 완전히 폐기해 버렸다.
피니는 보편적 인간 부패는 인정했으나 인간이 하나님께로 전심으로 돌이킬 수 있다고 주장하여 그는 펠라기안파를 따른다. 성령은 설득하고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여 전도 집회를 강력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피니의 말이다.
“ 흥분없이 신앙을 고무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철학적이며 모순이다. 세상에 비 신앙적인 흥분들을 무력하게 할 충분히 신앙적인 원리가 존재할 때까지는 흥분을 저지하며 신앙을 고무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잠들어 있는 정상적인 능력들을 깨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흥분이 있어야 한다.”
덧붙여 잠들어 있는 ‘도덕적 능력들’을 결발시키기만 한다면 누구나 언제든지 하나님께 굴복하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므로 즉각적인 결단과 헌신을 위해 설교하는 것은 언제나 복음 전도자의 일이며 의무이다.
패커는 그 방법들의 사용이 피니의 교리가 거부된다면 그의 방법들도 어느 정도 부적절하며 진정한 복음 전도사역에 사실상 해롭다는 것이다. 결과는 그 방법들의 사용을 정당화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피니의 회심자들의 대부분은 다시 타락하였고 피니 시대 이후에도 이런 방법들에 의해 결단한 사람들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 현대 복음전도자 대부분은 자신들이 회심시킨 사람들 중 다수가 남을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2. 청교도의 복음 전도
청교도의 복음 전도는 죄인의 회심은 신적 권능의 은혜롭고 주권적인 역사라는 청교도의 확신의 실천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표현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중생이나 회심이라는 전문적인 말보다는 소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롬8:30,살후2:14,딤후1:9,) 횩과적인 소명(마20:16; 22:14)언급은 비 효과적이며 외적인 소명과 구별하기 추가 된다.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에서 “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주시기로 예정하신 사람들에게 한하여 그 기쁘신 뜻으로 그들을 부르시되, 그의 정하신 적당한 시기에 효과적으로 부르시는데 그들을 그 본성화 되어 있는 죄와 사망의 처지에서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부르시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
효과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다. (웨민 신앙고백 소요리 문답31답)
효과적인 부름은
1> 효과적인 부르심은 신적 은혜의 역사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신적 구속 적용의 첫 단계이고, 선택과 구속이 확립된 그리스도와의 영원하고 연합적이고 대표적인 관계의 기호들 위에 선택된 죄인이 성령에 의해 그의 언약의 머리이며 구속자와의 실제적이고 살아 있고 인격적인 통일로 인도되는 사건이다.
2> 효과적인 부르심은 신적 권능의 역사이다.
성령께서 간접으로 말씀에 의해 마음에 깨달음과 확신을 주시는 역사를 하시며 또한 직접적로 말씀으로 심령의 내밀한 깊은 곳에 새새명의 능력을 심으시어 효과적으로 죄를 밀어 내고 죄인으로 하여금 복음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고 또한 기꺼이 응답하게 하신다.
오웬은“ 성령의 도덕적 역사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형이하학적 역사, 곧 중생에 있어 인간들의 마음 또는 영혼에 대한 역사도 있다. 회심에 있어 은혜의 역사는 새 심령을 창조하고 일깨우고 형성하고 주신다는 것과 같은, 실제적이며 내적인 효능을 나타내는 말들로 부단하게 표현된다.”
계속하여 성령의 중생시키는 활동은 “무오하고 패배를 모르며, 저항할 수 없고 항상 효과적이다. 성령께서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하시고 모든 반대들은 극복하시며 무오하게 의도된 결과를 생겨나게 하신다.(불가항력적 은혜) 청교도들은 전적인 부패를 철저하게 믿었고 그것을 오직 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의 역사만이 깨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3> 효과적인 부르심은 신적 자유의 역사이다.
롬9:16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오웬은 행16:9에서“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죄인들에게 은혜의 수단을 보내시는 불변의 값없이 주시는 긍휼에 대한 환상”으로 특별히 복음 선포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와 관련된 모든 사건들과 결과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계획에 의해 가장 큰 다양성으로 통제된다.
회심의 방법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이시다. 청교도들은 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나 회오, 곧 죄의식, 죄의 오염, 추악성,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에 대한 지식과 회오가 믿음에 선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떠한 죄로부터 구원이 필요한지 알기까지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께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청교도의 믿음을 위한 준비이다. 이 준비 과정도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주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즉 회심이 돌발적일 수 있고 길게 끄는 경우도 있다.
3. 복음 전도의 방법
청교도 설교자들은 정기적으로 청중석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복음전도 설교를 한 것이다. 이들은 끈기 있게 그리고 철저한 방법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적용하고, 하나님의 모든 섭리에 대한 선포에 있어 넓은 범위까지 나아가지만 3가지 주제로 되돌아 왔다.
1> 회심되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모든 사람의 필요성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였다.
2> 죄인들을 위해 아들을 십자가로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자기 보좌에서 무거운 짐을 진 영혼들을 구원받으라고 자신에게로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였다.
3> 우리가 우리의 영적 상태에 대한 무지한 자기만족으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얻고, 자기 절망을 하고 명석한 머리와 전심의 믿음의 길로 여행할 때 마주치는 오르막과 내리막과 장애와 함정들이었다.
이 주제에 4가지 진리들을 되풀이 하였다.
1>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의무와,2>어떤 보다 작은 것을 얻으려고 신앙에 정주하는 위험과, 3>새롭게 하는 은혜 없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의 불가능함과 4> 이 은혜를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할 필요성이다.
청교도들은 불신자들에게 “영접하라 결단하라”라는 명령하게 하는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피니식의 전도는 회심 자를 낳게 하는데 사용되었지만 거짓 회심들의 그 결과는 치명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피니의 수정판이 빌리 그래함이다.
이 현대 복음전도의 문제점에 대한 바른 방향의 전환은
1> 현대의 복음 전도는 평범한 상황에서 결실을 얻기 위해 청교도 유형의 복음 전도-보다 긴 기간, 보다 명백한 근거, 보다 깊은 탐구, 교회와 사회와 우정 주심, 보다 더 예배 지향적이고 덜 흥미 지향적인 복음 전도-를 모인 청중들에게 보다 중요하게 제시하는 방식에 항상 의존해야 할 것이다.
2> 청교도 유형의 복음 전도는 사람의 믿음의 행로가 통과함직한 융통성 있는 방법들과 단계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에 의해 유지되며, 자기 자신의 속도에 따라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열매 맺는 것을 인정하는 적용들과 함께 한 시대에 걸쳐 복음을 신실하게 설교하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필수적이다.
3> 사람들은 믿음으로 이끌어 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는 청교도 복음 전도의 실행하자들은 때로 자기 사역을 통해 회심자들을 보는 것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에 현대 복음 전도의 실행자들을 때로 설교자들이 자신을 제외하고 회심자들을 찾는 다고 상상하는 것같이 보인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첫째는 불경건하고 둘째는 근거가 없다.)
4> 발작적인 복음 전도의 모험들이 늘어날 때 설교자와 상담자들은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를 찾아, 참되고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긴급성을 강조하는 판편 탐구자들을 교리 문답 학급들과 양육집단들과 교회예배로 집중시키고 영원의 문제들을 영원히 해결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의 단절된 행동으로서의 즉각적인 결단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대신 위에 말한 참여들을 회오와 헌신의 진실성을 표현하는 바른 방법으로 강조한다면 가장 현명한 것이다.
4. 복음 전도의 원리(박스터의 청교도식 복음 전도)
리차드 박스터의 목회의 성공 법칙 3가지
첫째로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로 가르치는 것이고 새째도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강단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행하여 갔으며 토의와 기도를 위해 매주 집회를 가졌고 그는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배부했고, 개인 상담과 교리 문답을 통해 교육했다. 월요일과 화요일 7가정을 심방하고 교리 문답을 가르쳤다.
개혁된 목사(참된 목자)-
1> 나는 박스터(그리고 휫필드,스펄젼,그리고 바울)가 믿었던 복음, 타락과 구속과 중생에 대한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복음을 믿는가?
2> 나는 회심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한 박스터의 결해를 공유하는가?
3> 나는 이 견해가 나의 삶과 사역의 진로를 정하게 할 정도로 실제적인가?
4> 나는 내가 바라는 목적에 대한 수단을 택할 때 마땅히 이성적이어야 할 만큼 이성적이며 내가 목회하는 모든 사람들의 회심을 추구하는 책임을 부여받고 있는가?
나는 박스터가 힘쓴 것처럼 나의 성도에게 그들의 영적 생명에 대해 정확한 기초에 근거하여 말할 수 있는 상황들을 만드는 가장 선한 길을 찾기 위해 힘쓰고 있는가?
G.K. 체스털턴은 기독교 신앙이 여러 가지 검사와 시도를 거져 필요하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 검사와 시도를 거치지 않고는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는 청교도 복음 전도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