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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박사, 역사를 바꾼 약
〇 코로나19이 시작될 때부터 인류는 백신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백신을 전혀 맞지 아니한 아프리카 국가에서 사망률이 오히려 낮았다는 뉴스를 보고 펜데믹과 약과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사토 겐타로의 저서를 읽었습니다.
- 파스칼은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람들은 한 여성의 코 높이라는 지극히 사소한 사건이 2000년 후인 오늘날의 지도마저 바꾸어놓았을 것이라고 상상하면 지적호기심이 발동한다. 역사의 대변혁은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되고, 요인으로는 사람뿐만 아니라 천재지변, 기후 변동, 질병 역시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BC 430년, 아테네를 덮친 병마는 1년 만에 페리클레스를 포함한 수많은 아테네 시민을 쓰러뜨렸고, 스파르타 에 패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1346년, 흑해 연안의 도시 카파를 포위했던 몽골군은 페스트로 죽은 아군 병사의 시신을 투석기에 매달아 성 벽 안으로 던져 넣지자, 페스트로 죽고, 피난하여 삽시간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희생되었다.
16세기, 스페인 출신 용병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200명도 채 안 되는 부하를 이끌고 인구 1,600만 명에 달하는 잉카 제국을 정복하는 기적은 무기가 아니라 정복자들과 함께 건너온 천연두라는 전염병이었다.
18세기,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천연두는 영국과 프랑스의 정복 활동을 한몫 거들며 침략의 첨병 역할을 했다. 몇 번씩 전염병을 경험하며 면역력을 키워온 유럽인들과 달리, 신대륙 선주민들은 구대륙에서 들어온 질병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기에 낯선 질병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즉 총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라 전염병에 대한 면연력을 가진 사람들이 원주민을 쓰러트려 정복한 것이다.
= 펜데믹을 대처하기 위한 약
① 초기 의약품은 당시 질병을 악마라고 생각하여 악마가 싫어할 만한 동물의 똥과 오줌, 썩은 고기, 곰팡이와 같은 물질들은 당시에는 인기 있는 약의 원재료들이었다. 이러한 약은 히포크라테스 시대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췄었다.
수은은 동양에서는 '영생의 광물'로, 서양에서는 매독의 치료제로 사용했지만 결국 수은 중독으로 몰아갔다.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의약품은 비로소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평균수명을 연장하는데 기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세균학의 발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② 현대인에게 비타민C는 영양제 혹은 식품 성분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비타민 C는 인류 역사 속에서 세계사의 큰 흐름을 바꾼 필수 의약품이다. 비타민 C는 세계적 규모의 문화교류가 급속도로 물살을 탄 '대항해 시대'에 괴혈병의 예방책으로 등장하였다.
- '괴혈병'은 대항해 시대 뱃사람들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으나 영국의 제임스 린드가 여러 비교실험을 통해서 괴혈병 치료법을 찾아냈다. 시간에 걸쳐서 비타민 C의 속성이 밝혀지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비타민 C의 다양한 역할이 드러났고 '비타민 만능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③ 중국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강희제는 말라리아로 죽어가다가 선교사들이 바친 퀴닌을 통해 몸을 회복했다. 만약 말라리아로 강희제에 운명했다면 중국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고대부터 '세계의 수도'로 군림했던 로마 역시 말라리아를 통해 훈족으로 부터 벗어났다.
말라리아에 약효를 발휘하는 '키나 나무' 껍질은 17세기 중반에 선교사들을 통해 유럽에 들어갔으며, 이로 인해 '예수회의 가루'로 불리었다. 이 키나 나무에 포함된 약효 성분이 바로 '퀴닌'으로 지금까지도 가장 탁월한 말라리아 치료제로 자리잡고 있으나 말라리아의 뿌리는 아직도 뽑혀 나지 못하고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④ 인간은 태생적으로 통증에 약하기 때문에 진통제를 찾다가 찾은 것이 모르핀(Morphine)이다. 온갖 진통제가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에도 모르핀을 능가하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소량의 모르핀을 투여하면 평소 느끼던 우울감이나 슬픔이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17세기 초 영국에 동양에서 처음 차(茶) 가 도입되자,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지만,
아열대에서 생산되는 차는 한랭한 유럽 기후에서는 아무리 공들여 키워도 잘 자라지 않는다. 차 때문에 수입량이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영국은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정부주도로 중국인들의 취향에 꼭 맞는 신상품 마약을 기발하고 악날하게 개발하였다. 그러면서도 영국 정부는 아편을 ‘독성이 있는 기호품’으로 지정하여 자국으로 유입되는 일을 엄격히 규제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청나라는 정부 고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편의 포로가 되었다. 그로 인한 부작용과 해악이 극심해지자 1839년 청의 황제는 영국 상인이 보유하고 있던 1,400톤 이상의 아편을 모두 압수한 다음 석탄과 소금물로 폐기 처분하는 초강수를 두자, ‘아편전쟁(1839~1842년)’이다.
⑤ 모르핀은 약리작용 못지않게 강력한 중독성이 있어서 의학자들은 중독성을 없애고 진통작용만 남기는 것을 연구하다가 1898년 독일 제약기업인 바이엘에 의해서 개발된 것이 헤로인이다. 헤로인은 ‘이 약을 먹으면 영웅적인 기분이 된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모르핀 보다 금단증상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중독되면 평생 경험하지 못한 지독한 통증이 온몸을 덮쳐온다.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에서 헤로인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되고 있지만 은밀히 암시장으로 유통되며 여전히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
⑥ 과거 여성의 평균수명은 현재보다 확연히 낮았는데 이는 출산 직후 산모의 목숨을 위협한 산욕열 때문이다. 출산으로 인한 상처에 세균이 진입해 발생하는 산욕열은 위생의 개념이 잡히기 전까지 수많은 여성의 목숨을 위협했다. 당시에는 세균에 대한 지식이 없어 아무도 산욕열과 열악한 위생환경 사이의 연관 고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헝가리 출신 의사 제멜바이스는 위생적인 손씻기를 통해서 산욕열을 막을 수 있을 발견 했으며 이를 널리 알렸다. 하지만 자신들이 산욕열의 '운반책'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의사들로 인해 제멜바이스는 위생적인 손씻기가 19세기 의학계에서 배척당했다.
- 결국 의료 현장의 위생환경의 실질적인 개선은 의료 개혁에 헌신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에 이르러서야 값진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세균 감염은 출산뿐만이 아니라 수술 과정에서도 나타나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영국 외과 의사 조지프 리스터는 하수의 부패를 막은 성분을 이용해서 '패놀'이라는 소독을 처음 발견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소독을 현대 의료에 빠질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⑦ 매독은 인류 역사를 흔들어놓은 감염성 질환 중 하나이다. 매독은 15세기 말 즈음 인류 역사에 등장하였으며 프랑스의 샤를 8세가 나폴리를 포위했을 당시 크게 유행했다. 군대가 프랑스로 돌아가면서 매독을 가지고 갔다. 매독은 금욕을 강조하는 청교도 사상이 확장되게하여 영국에서도 청교도 혁명이 일어났고 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건국으로 이어졌다.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수은부터 말라리아에 일부러 걸리게 하는 말라리아 요법까지 여러 기상천외한 방법이 실험하다가 살바르산가 치료제를 찾았다. 매독 환자의 구세주인 살바르산의 등장은 수많은 다른 세균 감영증에 대해서도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⑧ 1차 세계대전 전투 사망자 중에서 감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직접 부상으로 사망한 병사의 숫자와 근접하다. 감염병은 그전에도 존재하였지만 1차 세계대전에 등장한 참호로 인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습기가 많고 위생 상태가 불량한 참호는 감염병뿐만이 아니라 여러 병원균의 운송이었다. 전쟁 중/후에 걸쳐 감염증 대책의 절심함이 수면 위에 올랐고 수많은 연구자들이 각종 세균에 효과적인 화학물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우크라이나 전상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하며 감염증의 참혹함을 익히 알고 있었던 도마크는 연구를 통해서 최초로 근대적인 제약 시스템을 정비했다. 1932년 그의 연구진은 세균 감염병에 효과적인 화학물인 '살파제'를 만들어냈다.
살파제는 1941년 미국에서만 50만 명의 생명을 구했으며 처칠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였다. 설파제는 마치 구세주보다 먼저 세상에 등장한 세례자 요한처럼 감염증 치료 시대를 개척하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⑨ 페니실린은 인류 역사를 바꾼 가장 중요한 약 중 하나이며 인류의 생활상은 이를 통해 완전히 달라졌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페니실린에는 그의 위상만큼 탄생에 대한 전설/신화 등이 있다. 당시에는 이미 리스터가 사용했던 페놀 소독약이 등장한 이후였다. 다만 페놀은 세균보다 백혈구를 먼저 파괴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고 연구진들은 인체 세표에는 작용하지 않고 세균만 죽이는 물질을 찾고 있었다.
이후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의약품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계속 실패했는데, 페니실린의 반응성 높은 구조는 다루기에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1942년 영국과 미국에서 페니실린 연구는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으며, 곧 양상에 성공하였다. 양상 연구 시작 후 몇 년 만에 페니실린은 세계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⑩ 아스파린은 1988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약이다. 이런 아스파린은 버드나무에 들어있는 살리실산이라는 물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실리실산은 극심한 위통을 준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지니고 있었기에, 연구원 호프만은 수많은 연구 끝에 소염 진통작용을 유지하며 부작용은 완화한 개량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
1899년 처음 시작된 아스파린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겪던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유럽에서도 인기를 차지했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으며 상비약으로 사용된 아스파린이지만 정작 왜 아스파린이 통증을 가라앉아주는지는 7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⑪ 에이즈는 그야말로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질병이다. 에이즈의 원인인 HIB의 기원이 현재까지도 완전히 풀리지 못한 만큼 에이즈는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공포를 불러오는 질병이다.
인류는 1981년쯤에 이 질병에 대해서 처음 인식했으며 1982년에 AIDS라는 이름을 붙였다. 치료법도 없으며 발병 후 2년이 지나면 90%가 죽는 이 병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에이즈는 매우 긴 잠복기와 빠른 변이 속도를 지니고 있어 지구 상에 출현한 지 10년이 지나도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끝없는 연구 끝에 일본의 미쓰야 박사가 최초로 에이즈 치료법을 개발해냈다. 이후 ATV 등의 신약을 통해서 에이즈의 기능은 줄어들었다. 치료비는 비싸며 에이즈는 여전히 세계 사망원인 6위에 자리 잡고 있다. 신형 에이즈 출현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만큼 섣불리 에이즈를 이미 끝난 문제로 치부하면 안 된다.
〇 느낀점과 개인적인 적용
- 인류역사속에는 끝없이 전염병이 있었고, 치료제를 개발해 왔고, 한편 사람들은 편안함과 재미를 추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코로나19는 엔데믹이 되어 가고 있지만 또 원숭이 두창이 오고 있다고 하고, 5년 간격으로 오던 전염병이 이제는 더 빨리 올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2022년 여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요인과 전기에 대한 정책실패로 블렉아웃(전기가 일시에 정전되는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 인간은 사랑과 마약과 도박에서 최고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선을 넘으면 폐인인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운동까지도 절제하여 불 속에 뛰어 들어가는 불나방이 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금, 토, 일, 월 계속 더 오페라 라틴빠에 갈 예정인데 적당한 것인지 불나방인지 〰
- 비타민C의 효능을 알고 오랫동안 먹다가 실증이 나서 먹지 아니하고 있지만 당장 오늘부터 먹었습니다. 코로나 19를 지내면서 생활화된 손씻기는 계속 실천하고, 자동차속에 들어오는 모기퇴치를 위해서 모기약을 비치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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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토 겐타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사람과나무사이, 2018.
괴혈병(壞血病, Scurvy)을 비타민C 결핍증(Vitamin C Deficiency)으로도 부릅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면 해결되지만 바닷사람들은 보존이 어려운 과일과 채소를 섭취할 수가 없어서, 불치병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싼 값으로 비타민C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어 해결하였습니다.
복용하면 확실히 덜 피곤합니다.
질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유박사님~^#^~
본인 건강이자,모든이의 건강을 지켜주는 손씻기 최고 입니다.
사계절 때때마다 계절음식을 챙겨
먹은것이 건강도 지키면서 행복을 맛볼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오페라 오픈후
코로나를 잊어버리고 사는듯합니다 ~~^^
운영진 스텝들이
과다업무로 숨쉬는게 신기할정도지만 ㅋㅋ
그동안 억압되었던 일상생활들이
더오페라개장이후
코로나에서 자유를 얻은것 같은~~~ㅎ
이럴수록 개인위생 개념을
습관화하여 우리모두가
부지런하게 노력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