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세계에서 유일한 시민자치공동체의 상징이었으며, 5.18 민중항쟁의 시민군의 본부였던 옛 전남 도청이 허물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2008년 10월 04일 현재 평균나이 50살이된 시민군들이 천막농성을 103일째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불행했던 역사 일수록 그 진실을 바로 기억하고 남겨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후손들이 다시는 같은 역사로 인해 불행해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80년 5월 민중항쟁의 역사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민중학살의 증거를 말살하기위해서, 때로는 광주시의 개발논리로 없에 왔습니다.
이제 제대로 남은 5.18의 역사 현장은 옛 전남도청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18일 부터 21일까지 광주학살을 자행했던 계엄군을 몰아내고 세계사에 유례없는 자치공동체를 이끌었던 시민군과 항쟁지도부 활동지였으며 탱크를 앞세우고 진입한 계엄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최후 항전을 불사했던 곳입니다.
문화관광체육부(유인촌,이덕무:이완용 증손자)는 그 역사 현장인 옛 전남도청 일부를 철거 하겠다고 합니다. 진실을 지우고 그 위에 어떤 의미를 덧칠해도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는 것보다 못 함에도, 정부와 광주광역시는 지난 3년 동안이나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위대한 조각가 '로댕'이 만든 브론즈 조각작품 '칼레의 시민'에 관련된 이야기다. 작품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1337-1453)의 한 사건을 담고 있다.
이 전쟁은 무려 116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영국군이 프랑스의 거의 모든 지역을 손안에 넣었지만 '칼레'라는 도시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프랑스왕 필립6세도 방어를 포기한 도시 칼레를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끊임없이 포위공격을 가했다. 칼레로 들어가는 식량루트를 완전히 봉쇄하고 이윽고는 시민들을 모두 말려 죽이려는 작전을 펼쳤다. 결국 칼레 시는 항복하고, 영국왕은 완강한 저항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시민들 가운데 '여섯 명'만을 처형하겠다고 통보해 온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한 칼레시에 대하여 대량학살을 단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스스로 목숨을 걸고 나간 사람들이 있었으니 칼레시에서 가장 재력가인 외스타슈, 법률가 데르, 칼레시에서 도덕적 명망이 높은 비쌍, 또 한 사람의 비쌍, 피네, 당드르가 그들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목에 오랏줄을 묶고 맨발로 영국왕 앞으로 걸어갔다. 예컨대 칼레 시민들에 가해질 대학살극을 막고자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그러자 영국왕도 이에 너무나도 감동, 이들 여섯 명의 시민들을 놓아주고 칼레시를 봉쇄작전으로부터 풀어준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1884년 칼레시는 조각가 '로댕'에게 예의 여섯 사람의 모습을 담은 '칼레의 시민'이란 브론즈 조각작품을 만들게 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11년만에 완성된 로댕의 조각작품(1895년 작)에 대한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백년전쟁 훨씬 후에 만들어진 이 조각작품을 어디에다 세워야 하느냐를 놓고 시민들끼리 오랜 논란을 벌인다. 독일의 시인이며 로댕의 비서였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책 '로댕론'에 따르면 칼레의 시민들은 여섯 명의 전신상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을 도시의 어디에 세우냐를 놓고 논전을 벌이다가 마침내 백년전쟁의 최대격전지인 칼레시 바닷가에 세우게 된다.
조각작품 하나를 세우는 일에도 이렇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프랑스의 북쪽 도시 칼레의 시민들한테서, 오늘 우리는 큰 교훈을 본받아야 한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마지막까지 광주를 사수했던 '전남도청'은 그런 의미가 있는 곳 입니다. 80년 5월의 그 엄중한 기억을 지우는 것은 세계인이 공유해야 할 역사 현장을 없에는 어리석음 이니까요
1980년 5·18 민중항쟁 당시 부상으로 후유증을 앓던
5·18 유공자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15일 광주광산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후 5시30분께 광주 광산구 한모(48)씨의 집에서 한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는 5월 당시 끝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붙잡혔으며,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같은 달 24일엔 충북 청주에서 5·18 유공자인 김모(48)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도 부상 후유증을 앓았으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5·18 기념재단과 생명인권본부가 2007년 10월 ‘5·18 민주화 운동 피해자와 가족의 자살 피해 현황에 대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8월 현재 5·18 부상자 중 사망자는 총 376명으로 이 중 39명(10.4%)이 자살로 숨졌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보상 지연, 생활고 등으로 유공자들이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첫댓글 기억만이라도 해달라는 그들의 외침은 이렇게 외면으로 일색이고, 화려한 문장의 아무 역사적 진실도 없는 인간들의 글엔 수많은 찬성과 댓글이 주렁주렁.. 슬픔을 느낍니다.
무엇부터 해결되어야 하는 건지 ....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 제대로된 나라가 될런지 ... 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