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7일 연중14주간 목요일 (마태10,7-15)
“비대면 시대의 소통의 한계 - 세상 속 현장으로 제자들을 파견한 예수님을 생각하며'
오늘 말씀은 지난 주일(연중 제13주일)과 똑같은 내용으로
사도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는 ‘파견’ 이야기입니다.
“가서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2,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께 직접 트레이닝과 교육을 받아 왔던 제자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교육일 뿐,
이제부터 세상 속에서, 현장 안에서
직접 몸으로 겪는 경험들을 통해서 진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최근 연세대학교 학생 3명이 임금 인상과 인원 감축 반대를 요구하며
학내에서 시위를 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연세대 교수 한분이 당혹감을 느낀다며
2학기 수업계획서를 통해 밝힌 내용이 커뮤니티에 떴고
이 문제로 커뮤니티가 시끌시끌합니다.
나교수는 자신의 수업계획서에 이런 내용을 썼습니다.
<요즘 ‘공정, 공정’을 부르짖는 일부 학생들의 그 "공정 감각"이란 것이,
유독 “사회나 정부 등 기득권을 향하는 게 아니라
그 동안 줄곧 불공정을 감내해온 약자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이런 얘기를 덧붙입니다.
<나는 이런 문제가 전염병으로 인한 비대면 상황이 길어져서
생기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대학에 다니다 보면,
개중에 사회운동이나 사회변혁에 별 뜻이 없는 사람도
교내에선 하루에도 몇 개의 대자보를 보게 된다.
또 대면 상황에서는 학생, 교수 등 구성원들과 알게 모르게 상호작용하면서
그 공동체가 대충이라도 합의하는 내용의 방향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아, 이 문제는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구나.'라는 감을 잡아가고,
그런 교류를 통해 서로 성장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대면 기간이 2년이 넘다 보니 대학생이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이 공동체의 지향 방향 중 어디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또 ‘자기 객관화’하는 훈련이 안 된 것이다.
고등학교 정도의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이런 얘기도 합니다.
<이 세대가 ‘댓글 세대'로서의 특수성도 있는 것 같다.
대면을 통해 서로 소통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댓글은 그저 일방적이다.
그냥 자기 말을 내뱉고 나서
‘아싸, 내가 저것들 작살냈어.' 하고 마는 것이다.>
글쎄요, 이런 교수의 일침을 그들은 또
‘틀딱들의 소리’ ‘꼰대의 말’로 비웃을지 모르지만,
모든 인간관계나 상호작용, 소통은
직접 사회 안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는 대면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나 교수의 말씀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러니 요즘처럼 직접 대면이 아닌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한 소통과 교류에 의지하는 시대에는
사람이 일방적이 되고, 자기객관화에 서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정신교육을 시킨 제자들을 이제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 속으로 현장 안으로 보냅니다.
가르침의 완성은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