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라
이어령 교수는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지만 여전히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지성을 갈망하는 교수로 보인다. 시한부 인생이기에 더욱 지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죽음의 관점에서 삶을 관망하는 게 아니라 삶의 시선에서 죽음을 조망하는 느낌이다. 영성의 눈으로 바라본 죽음은 지성의 삶을 살아온 노 석학의 지식에 아직 다다르지 못한 느낌이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으로 삶을 즐기는 석학의 지성, 암과 싸우지 않고 병의 고통을 겪고 관찰하는 것까지 몫이라는 어른의 성찰, 암에 걸렸지만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게 마지막 희망이라는 글쟁이의 사색이 오롯이 담겨있다.
선생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냐는 물음에 바다에서 아무리 높은 파도라도 결국 수평으로 돌아가듯이 본 적은 없으나 분명히 돌아갈 곳이 있다고 말하는 지성의 영성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죽음을 그렇게 몰래 숨어서 지내지 않았다. 물론 시대적으로 병원에서 죽는 것보다 집에서 죽는 게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장례문화라는 게 마을 공동체가 다 참여하는 하나의 의례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마을도 변하고 장례문화도 변해 더 이상 동네가 아닌 병원 장례식장에서 비밀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병풍 뒤에 있던 고인은 영안실에 안치되고 알록달록 예쁜 꽃상여는 고급 리무진버스로 바뀌어 고인이 살던 곳을 한 바퀴 도는 게 아니라 도로를 쏜살같이 지나간다.
죽음을 숨길수록 죽음은 멀리 있는 듯하다. 하지만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죽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삶 또한 제대로 알지 못한다. 죽음이 감추어진다면 삶이라는 의미가 옅어질 것이다. 삶이 소중한 건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드러내지 않는 사회는 삶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간다. 그런 면에서 죽음을 대하는 선생의 마지막 수업은 많은 가르침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다 조화롭진 않다. 작가의 감정이 오히려 과장되게 표현되어 글의 생동감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유유자적 흐르는 강물에 자꾸 주책없이 돌을 던져 강물의 흐름에 생채기를 남기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과장된 감정의 생채기가 강물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죽음을 종교성으로 바라보는 이어령 교수의 종교적 색채가 때로는 자의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먼저 보낸 자식과 손자를 통해 얻게 된 영성이 노년에 죽음을 더욱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는 문화적 도구라 생각된다. 무신론자가 읽으면 거리감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많은 은유를 담고 있어 해석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은유를 통해 글의 향기는 은은해지기도 한다.
李御寧 1934~2022 충남 아산 태생 언론인 문학평론가 대한민국 제29대 문화부장관 2020년 제11회 홍진기 창조인상 특별상, 2021년 제50회 문학의 날 금관문화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