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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9일 성령강림절 후 열아홉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19장입니다.
광고 / 헌금 / 기도하겠습니다. 성경 말씀은 전 11:9-12:2절(구 958쪽)입니다.
제목 :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
우리나라는 작년에 사망자가 약 31만 명으로 예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사망자가 증가하긴 했지만, 사망 원인 1위는 암으로, 사망자의 26%가 암으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더 가슴 아픈 뉴스는 우리나라 작년 자살 사망자가 15,352명으로 OECD 38개 국가 평균의 2배나 될 정도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2배가 많고, 30대 이하 젊은이들의 자살이 크게 증가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여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 사망자가 세계 최고이고, 출생률은 최저인 어두운 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불행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입니까?
솔로몬 왕은 노년에 통절한 회개와 겸손으로 솔로몬 왕이 아니라, 코헬렛(전도자)이라는 이름으로 전도서를 써서 살아 있는 인생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전도서 11, 12장은 전도서 본문의 결론으로, 청년들에게 주는 인생의 교훈 같지만, 전도자는 청년만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로 오늘도 살아서 호흡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교훈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9:3,4절에서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 사망”이고,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은 까닭은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일 중에 가장 악한 것이 사망이어서 선한 자나 악한 자나 피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있는 모든 인생들은 청년이나, 노년이나 솔로몬을 통해서 주신 전도서의 귀한 교훈을 잘 들어야 할 것입니다.
1. 해 아래 사는 인생은 절대 허무하지만, 영원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해 아래 사는 유한한 인생은 절대적으로 허무합니다. 하나님에게서 신적인 지혜를 부여 받고, 일평생을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아온 솔로몬 왕도 노년에 뼈아픈 회개와 겸손으로 쓴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다섯 번이나 헛되다고 탄식하면서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결국에는 무익할 뿐이라고 선언합니다.(전 1:3)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단명한 자나, 장수한 자나 해 아래 사는 모든 인생이 허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셔서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되니라.”(창 2:7)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인 것입니다. 해가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이 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인생도 한 세대가 가면 다음 세대가 오고, 이 세상에 온 세대는 지나간 세대를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잠깐 왔다 가기를 반복하는 허무한 세상입니다.(전 1:3-11)
아무리 지혜와 지식이 풍부한 사람도 ‘엉겅퀴와 가시덤불’ 속에서 ‘종신토록 수고’하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류는 선악과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창 3:16-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창 2:7절의 말씀처럼 인간에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생기를 불어넣어 주셔서 영적으로는 영원히 죽지 않는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제한된 시간 속에 살게 하셨지만, 그 마음에는 영원, 곧 인간이 주관할 수 없는 영원한 본향을 추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전 3: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히브리 기자는 히 11장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고 이 세상을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다고 증언합니다. 허무하게 인생을 마친 아벨도, 보이지 않는 대홍수의 경고에 믿음으로 방주를 준비한 노아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육신의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나그네처럼 살다 간 아브라함도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산 사람들입니다.
히 11: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허무하다고 비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그 반대로 이 세상을 영원한 고향처럼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믿음의 선진들처럼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입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성에 들어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2.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전도자(코헬렛)는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현재를 마음껏 즐기며 살라고 교훈합니다. 전도자는 전 3:1절에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카이로스)가 있으므로, 하나님이 정하신 카이로스의 시간, 곧 그의 주권적인 섭리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자신의 몫”을 충분히 누리라고 명령합니다.
전 3:13, 22절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오늘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도, 수고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요, 선물인 것입니다. 전도자는 전 2:24절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현재 주어진 선물을 마음껏 즐기고 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 25:14-30절에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겼는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바로 가서 장사하였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올 때까지 그것을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은 종들을 신뢰하는 주인의 선하심과 그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맡기신 달란트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또 장사하는 동안 주인이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능히 큰 이윤을 낼 줄 믿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여 큰 이윤을 남겼고, 주인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종말에 닥칠 대환난을 말씀하시면서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말씀하실 때 하신 비유입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처럼 바로 오늘 우리가 가진 것이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선물이라고 확신한다면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마음껏 누려서 큰 수확을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을 즐겨라(Enjoy the present)” 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이 명언은 라틴어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에서 나온 말인데, 날(day, 디엠)을 붙잡다(seize, 카르페)라는 뜻입니다. 이 명언은 인생은 어차피 허무한 것이니 육체적인 쾌락이나 욕구를 위해서 오늘을 마음껏 즐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명언의 올바른 의미는 하나님이 주신 오늘을 그의 뜻에 따라 열심히 사용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전도서는 “오늘을 즐겨라”의 의미를 다양한 예시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첫째로, 평범한 일상을 즐거워하며, 자신이 가진 재물을 아낌없이 이웃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전 5:18,19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며, 또 재물과 부요를 가진 자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내일을 위해 남기지 말고 아낌없이 이웃과 함께 나누며 충분히 그것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전 11:1,2절 말씀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하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자기의 생명의 날(남은 연수)을 깊이 생각하지 말고(5:20), 살아 있는 오늘 이웃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면 도로 찾는(보상 받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전 11:1) 우리 인생은 내일 무슨 재앙을 만날지 알지 못하는 유한한 인생입니다. 내일 일은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영역임을 기억해야 합니다.(전 11:5)
둘째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가정에 충실하고, 살아 있는 동안 자신에게 부여된 생업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전 9:9절에서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또 10절에서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 낳고 즐겁게 살고, 또 죽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생임을 깨닫고 살아 있는 오늘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전 11:9절 후반에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돼 있어서 우리가 “마음에 원하는 대로, 네 눈에 보는 대로 열심히 행한 것”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일처럼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 원문은 단순히 “심판”이 아니라, “공의(미슈파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것을 심판하시기 위해 계시는 분이 아니라, 공정하게 심판과 상급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행한 모든 것을 공의로 회계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God will call you to account), 겸손하게 오늘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사흘째 되던 날, 제자들과 함께 가신 곳이 가나의 혼례 잔치입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를 변화시키는 표적을 행하심으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표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예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변화시키시겠다는 예고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탄의 유혹과 핍박 속에 살지라도 신랑 되신 예수님의 신부로서 그와 함께 풍성한 혼인잔치에 참여하여 오늘을 마음껏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혼인잔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잔치입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무절제와 방종의 잔치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움을 억제하는 위선적인 잔치도 아닙니다. 바리새인처럼 남들과 다름을 자랑하는 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연약한 이웃들을 섬김으로, 그리고 진실한 믿음으로 혼인잔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아가서 2:10절에 신랑은 신부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라고 부르고, 7:1절에서는 “귀한 자의 딸”이라고 부릅니다. 신랑은 왕의 신분이지만, 신부인 술람미 여인은 평범한 수넴 출신 여인이지만, 왕과 결혼하여 왕이 사랑하는 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 2: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살 사망자가 압도적으로 매년 1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교회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진리와 상관이 없는 이념의 차이로 서로 분열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재물을 더 사랑하는 세속적인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오늘을 마음껏 누리며 열심히 선교하는 교회(성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성도)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성도)입니다. 죽음은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가리지 않고 반드시 찾아옵니다. “흙(육체)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고 했습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오늘을 마음껏 누리며 열심히 일하는 주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찬송 413장(내 평생에 가는 길)을 부르신 후에 다 같이 기도하신 후에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