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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스테파노) - 영원에서 영원까지 같은 한 분이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저의 육적인 욕망과 저의 눈이 그리는 욕망과 세상살이에 대한 교만은 다른 누군가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저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주님을 알기 전엔 언제나 불운을 탓하고 낳아준 부모를 탓하고 누군가를 질시하고 미워만 하면서 저의 몸을 불사르며 살았습니다. 주님을 제 안에 감히 모시던 어느 날, 불현듯 제가 가지길 원했던 것들이 모두 헛된 것이며 미워하는 모든 것들 또한 이미 지나가버린 욕망의 부서져 버린 허물에 불과함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순가, 예수님께서 게세마니 동산에서 자신의 뜻과 아버지 하느님 뜻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시며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랐던 그 마음처럼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오니 사랑으로 잡아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김기영(프란치스코) - 사랑과 자비의 주님,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희에게 변함없는 은총과 사랑을 주시지만 부족한 저희들은 주님의 사랑을 모르고 세상의 욕심에만 눈을 돌리며 살아갑니다. 늘 저의 내면이 아닌 밖을 향한 시선으로 살기에 감사보다는 원망을 품었고 겸손보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분노와 위선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저희 모두가 욕심을 채우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고 주님께서는 늘 원하시는 것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저의 내면의 약함을 믿음으로 굳세게 변화시켜 주님께 사랑받는 자녀로 살 수 있는 영광 또한 허락하소서. 아멘.
정택무(베드로) - 어느 책에서...
<사랑하는 법>
● 박수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즐거운 상상을 많이 한다.
● 고맙고 감사한 마음은 반드시 표현한다.
● 매 순간 누구에게 정직하자.
● 나 자신을 가꾸는 일에 게을러지지 않는다.
● 아무리 화가 나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지 않는다.
● 마주치는 것들마다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옷과 옷걸이>
앞집엔 옷이 많은데 옷걸이가 하나도 없고
뒷집엔 옷걸이가 많은데 옷이 하나도 없다.
나누어 쓰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아
앞집 사람은 늘 구겨진 옷을 입고 다니고
뒷집 사람은 늘 벌거벗고 다닌다.
유철규(도비아) - 알렐루야!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느님 아버지, 오늘도 하루의 시작과 함께 이 봉헌의 글을 올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이곳 형제들에겐 너무도 소중하고 영적인 어머님이시며 성모님의 사랑과 자애, 봉사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시는 베드로 수녀님의 축일을 축하드립니다. 자그마하신 체구로 항상 입가에 미소를 간직하시며 미사, 교리공부, 성경공부, 집회 및 각종행사 때마다 이곳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수녀님을 뵈올 때마다 마음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느님, 우리 베드로 수녀님, 항상 건강 지켜 주시고 성령의 은총을 내려주시어 더 많은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거룩한 가르침과 사랑을 나누어주시기를 우리 주 그리스도님을 통하여 비오며 수녀님의 축일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아멘. 지난 주 남북통일 기원미사 때 주님의 사제이신 신부님의 강론말씀 중 분단된 나라의 현실도 현실이지만 전쟁이 난지 60년이 된 현실 속에서 실질적으로 아픔을 겪은 세대가 아닌 이상 그 상처를 알지 못하듯 우리 형제들의 삶속에도 마음의 담장을 헐어야한다는 말씀. 물리적인 담장과 더불어 마음에 불신의 철망이 처져 있어서도 안되고 우리 스스로 허물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다가가고 서로를 도와주며 이해하고 아끼며 끊임없이 인내하고 용서하며 힘을 내며 살라는 신부님의 강론말씀처럼 내 자신의 삶도 이번 기회에 바꿔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사십년 가까운 세월을 잊고 지냈던 하느님의 사랑을 이곳 담 안에 들어와서 비로소 깨닫고 죄인으로 잊고 지냈던 그 오랜 세월 동안에도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사랑을 주셨던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알렐루야! 창조의 하느님, 참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이 죄인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미사도 몇 번뿐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달 방학 기간을 빼면 많지는 않지만 매번 드리는 미사 시간이 기다려지고 그때마다 성령의 은총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버림받은 이들을 안아주시고 상처입고 용기 잃은 이들에게 힘을 주시어 사랑으로 감싸주시길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 또한 축일을 맞이하신 베드로 수녀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항상 끊임없이 봉사의 헌신을 하시는 후원회 마리아회장님 또한 많은 봉사자 자매님들에게 하느님의 무한한 평화와 사랑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다시 우리 주 그리스도님을 통하여 비옵니다. 아멘.
이동규(가브리엘) - 예수님 저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이 시간 저를 이끌어주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성체조배를 바칠 수 있도록 저의 마음을 열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저도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아멘.
정재덕(프란치스코) - <칠고의 성모님>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내 마음의 안식처 성당을 다니면서 모자란 마음 채워달라고 보채는 아직은 새내기 신자입니다. 첫걸음 띠고 주님의 색다른 공부를 하며 조금씩 한발 한발 주님 곁으로 다가갑니다. 나름대로 마음을 다하며 복음말씀 속에 인물들의 삶을 생각하고 작년 12월 세례 받은 형제들과 까리타스에 나가면서 조금씩 신앙인의 자세를 만들며 믿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마태오성당에 언제나 계시던 성모어머님의 모습이 아닌 지난주 미사 때만해도 없던 성모 어머님께서 제대 옆 오른편에 은은하게, 화려하지도 않고 자애로운 얼굴로 새롭게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지난번 성모님의 모습은 언제나 안타까운 모습처럼 보고만 계신 것 같았는데 이번 새로 모신 성모 어머님은 백년, 천년 투정을 하더라도 묵묵히 굳은 믿음을 주시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어서 눈을 감고 잠시 묵상했습니다. 들은 이야기로는 충청도 어느 성당에서 6.25때, 60년 전 전란 중 7발의 총상을 입고도 지금처럼 꿋꿋이 믿음의 에너지를 주시는 얼굴로 제한된 곳 어려운 곳 약한 자들 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이곳까지 오신 것 감사드립니다. 마태오 성당 제대 옆에서 앞으로 오게 될 형제들을 위하여 오신 것에 새삼 신비한 마음 주님의 안배에 감탄하면서 그 세월 변함없이 사랑스런 마음으로 형제들을 어루만져 주시는 그 손길 많이많이 느끼게 하소서. 왠지 모를 신뢰하는 굳은 믿음의 마음이 성모어머님 오시고 느낀 마음입니다. 앞으로 여기 담 안형제들 많이 사랑해주시고 아픔을 들어주시고 자애로움으로 그 모든 마음을 감싸주소서. 세상 사람들이 차가운 시선으로 보는 곳입니다. 사람도 마음대로 못 다니는 이곳에 오신 성모 어머님의 크신 사랑에 고개 숙여지는 마음은 저만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지요. 칠고성모어머님 앞으로 많이 모자라고 미약한 저의 마음 또 형제들 많이많이 사랑해주이소! 형제들도 새로이 미사 때 ‘성모 어머님 새로이 오셨네요. 인사드립니다.’하면 예쁘게 봐주세요. 그래도 세상 사람들 보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만이 아닌 마음은 다 착한 사람들입니다. 성모 어머님의 자애로운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사랑 나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도 사랑 다음다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시고 살펴주십시오! 참 사제로서 내일 29일 이면 우리들에게 부제로 이곳 다니시며 애써주신 조형래 마리노 부제님이 새로운 주님의 종인 사제로서 첫발을 내딛는 사제 서품식이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축복 주시어 언제나 변함없이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정신으로 자신을 봉사하며 모자라고 나약한 세상의 형제, 자매들에게 주님의 말씀 전하며 새로운 세상을 주시는 주님의 제자 사제로서의 길을 꿋꿋이 나아갈 수 있게 주님 축복된 은총을 주소서. 미약한 저의 기도를 성모 어머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주 성부께 빌어주소서. 아멘.
박병수(프란치스코) - 6월 29일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대축일입니다. 이 두 사도는 초대교회의 기둥역할을 하였다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도들의 으뜸으로서 충직하게 주님을 증언하였으며 바오로사도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성장시켰습니다. 두 사도를 본받아 충실한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을 다짐하며 비록 담 안 성당에서의 미사봉헌이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사도 대축일을 맞아 미천한 신분이지만 하느님께 사도행전의 말씀을 미사 중에 봉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에 영광스럽기만 하며 더구나 사제를 위한 기도를 올리게 되어 가슴이 벅차기만 합니다. 보편지향기도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형제 여러분 마태오 성당을 위하여 수고하시고 고생하시는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대사제이시며 참 목자이신 우리주님, 하느님 백성의 봉사자이신 이 땅의 사제들을 축복하시고 특히 거룩한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자신을 더욱 깨끗이 하고 늘 사랑하는 마음과 늘 새로운 마음으로 책임과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 * 주님은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노형식(안드레아) - 주님 제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주시고 참된 믿음과 굳은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제게 심어주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거룩하고 참된 계명을 깨닫고 알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사랑이라는 참된 의미를 제 몸 곳곳에 심어주소서. 소유의 욕심을 버리게 하시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행과 아낌없는 나눔으로 사랑의 향기 뿜고 싶습니다. 자신에게 속고 남에게 속고 그러면서 진실을 발견해가는 저는 인내의 끝자락에서 당신의 사랑을 되새기며 주님 곁에서 머물 수 있는 힘을 길러가고 있습니다.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그날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기도로써 저의 온 마음을 바치옵니다.
바람이었으면
바람이었으면
나뭇잎 살랑이는
그런 바람이었으면
나도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그런 시원한 한줄기 바람으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요 소망이 되었습니다.
산중에 나무는 많으나
그 빛을 잃지 않는 나무는 그대 하나구나
지금은 그 푸르름을 알 수 없으니
고난의 순간이 오면
빛 잃지 않는 그댈 찾으리
혹 슬퍼하지 말자
날 알아줄 이 없어도 내 능히 내 몸 썩혀
수많은 잡목에 한줌 거름 될 뜻 있으니..
날씨가 무더워지니 걱정입니다. 곧 여름방학이 되기에 매주 미사에 나갈 수 없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한 달 넘도록 뵙지 못할 우리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자매님들 한여름 건강히 잘 지내시고 보람되고 즐거운 여름방학 되시기를 진정으로 기원 드립니다.
윤금철(베드로 다미아노) - 찬미예수님! 처음 해보는 해설이라 독서자로서 책임하고는 달라 많이 준비하였지만 떨림도 크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습니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대축일이라는 미사해설을 통보받아 준비하며 놓았는데 남북통일 기원미사라고 하여 새롭게 준비하느라고 허둥대었지만 말씀도 읽고 묵상하면서 기도와 영성체후 묵상 글 준비까지 저에게는 신앙적으로도 많은 배움이 있었고 은혜롭게 보낸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변해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1년 3개월 전하고 너무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행동하나하나가 섣불리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으로 변해간다는데 매주 미사에 참석하면서 변함이 없다면 손가락질도 받겠지만 그것을 의식하기보다 미사를 드리면서 한순간 한순간이 은혜로웠기 때문에 제 자신을 낮추고 싶고 그렇게 살고자 서원을 드렸습니다. 무늬만 신자로서 방에 답답함을 피해 넓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재미를 누리기보다 저 때문에 고인 되신 분께 속죄하고 다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고 주님께서 걸어오신 것처럼 부족하지만 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쓰임 받는 삶으로서 이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신앙이란 귀한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저를 마태오 성당으로 발길을 옮길수 있도록 평화신문을 보내주신 후원회 봉사자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미사에 참석하여 강론말씀을 듣고 한주간의 자양분으로 삼아 지난 죄를 통회하고 새롭게 희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도 부족함이 많은 초보신앙인이지만 말씀 안에서 묵상하며 하느님께서 저를 뒤늦게라도 불러주신 이유가 반드시 있기에 이제는 그분께 아픔보다는 기쁨을 드리며 살겠다고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문 한마디 한마디가 참으로 저의 마음에 은혜 그자체입니다. 세상에 큰 죄인 된 자가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기도문을 읊조려도 되는가하고 제 자신에게 반문할 때도 있으며 제 입을 통해서 신부님, 수녀님, 후원회 봉사자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기도할 때 많은 사랑 속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죄를 진 자가 무엇인데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이런 호강을 받을 수 있는가? 생각할 때는 두 눈이 촉촉이 젖어옵니다. 남들보다 늦게 주님을 찾게 되었으니 두배, 열배 더 노력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겠습니다. 이제는 미사 때 저에게 어떤 일이 주어질지라도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고 미사가 하느님께 은혜로운 제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첫 미사 해설이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덕분이기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날마다의 삶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정황래 시몬 신부님! 매주 밝음 미소로 저희에게 희망의 빛을 전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이정희 베드로 수녀님! 만날 때마다 활짝 웃으시는 수녀님의 미소 속에서 하늘나라의 천사모습을 봅니다. 영적으로 영혼을 일깨워주시는 그 사랑을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앞으로의 삶도 은혜롭게 살겠습니다. 독학사시험에 합격하였다는 통보를 받아 기뻤습니다. 천주교에 발을 들어놓으면서 시작을 하여 1단계 교양기, 2단계 전공기, 3단계 전공심화과정 총 17과목 중 2011년 15과목을 합격하고 올해 떨어진 두 과목을 합격하여 이제 졸업시험인 학위종합평가시험만 남겨놓았습니다. 늦은 나이에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어 지혜를 주셨기에 가능하였다고 믿으며 감사드립니다. 11월 4일까지 열심히 하여 열매를 맺어 주님께 올리고 싶습니다. 기도하면서 첫 영광의 열매를 올릴 수 있도록 지혜와 명철함을 달라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합격이라는 감사의 열매를 주님께 올리듯 11월 30일 발표 때 종합열매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우람(마태오) - 주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인정하고 이해하는 평온을 제게 허락하소서. 제가 노력하고 실천하여 변화를 이루어 바꿀 수 있는 것들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제게 허락하소서. 그리고 자만과 아집에 가려진 그릇된 시각이 아닌 바꿀 수 있음과 바꿀 수 없음을 올바르게 구별하여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허락하소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세상의 온갖 불행들을 바꿀 수 없다 속단하기에 앞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묵상하게 하여 바름으로 나아가게하소서. 부디 제 시각과 판단과 구분이 아닌 주님의 진리로 제가 깨닫게 하소서. 세상살이 모진 풍파에 가려지고 쌓아진 왜곡된 담장에 갇힌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진리가 아닌 성서와 교회의 진리의 가르침이 무엇이며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전함으로 아로이 새겨 망각하지 않게 하소서. 또한 그러함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게하소서. 사랑과 평화는 용서와 나눔의 이해 속에 완성됨을 그 말 그대로 되새기게 하소서. 실천하는 삶을 이루어가는 후원회 은인님들과 봉사자들에게 사랑의 축복을 머리맡에 드리우게 하소서. 아멘.
김태경(예비신자) – 거룩한 주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되었음이 한없는 영광이며 죄 많고 벌레 같은 인생가운데 당신의 놀라운 영적 말씀을 깨닫게 하신 성령의 기쁨에 감사드립니다. 오직 위대하신 당신만 찬란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이 봉헌을 아름다우신 한 분, 주님의 제단 앞에 겸허히 엎드려 헌물로 올리오니 기뻐 받아주시옵소서.
서영석(라파엘) -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저에게 “나는 누구냐?”하고 물으신다면 저는 베드로처럼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성경안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시지 않았고, 생명이 없는 글로만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기 전 신자들을 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영성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예수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고 2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부러워하던 영성체를 하면서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안에 있는 제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니 제가 왜 그런지 알 수 있습니다. 성령과 일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간절히 청하오니 이 부족하고 미련한 놈에게 성령의 은사와 은총을 베풀어 주시어 저와 제안에 있는 제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그리스도임을 느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아멘.
진병일(경환 프란치스코) - 베드로의 고백을 묵상해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도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고 물으시면 나는 과연 주님을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나를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주님이라고 명쾌한 답을 할 수 있는가? 교회에서 강론으로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수박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는지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이 묵상으로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더 물으시면 자신 있게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고 대답할 수 있는 믿음의 아들로 살아야겠다는 말씀을 되새겨서 오늘의 말씀으로 또한 이 한 주간을 뜻있게 살고 싶습니다.
왕건철(루카) - 찬미예수님!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에 저는 당연히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믿느냐?” 저는 또 대답합니다. “예,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왜 내 계명을 지키지 않느냐?” 저는 이 물음에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말로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다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하루라도 제대로 지키는 날이 있었는지 돌아보면 정말 한숨만 나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계명을 어기고 심지어 계명을 어기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세상 모든 욕심 마음에 품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는 너무도 어렵습니다. 이곳 교도소에서조차 작은 물욕에 연연해 살다보니 계명은 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세상 물욕에 눈이 어두워져 진정 찾아야하는 하느님나라는 찾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라도 베드로사도와 바오로 사도처럼 하느님나라 찾아가는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슬기 내려주소서. 아멘.
김승주(예레미아)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사랑의 주님! 참된 신자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예수께서 우리가 저지른 죄 때문에 죽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이 믿음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되살아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주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을 저의 친구로 여기며 항상 곁에 있음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친한 친구는 삶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을 친구 이상으로 가까이 생각하겠습니다. 제 자신을 좀 더 낮추며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글과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저의 글과 말을 실천하는 승주가 되도록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정정원(미카엘)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주님께 대한 불신 없는 참된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느꼈습니다. 나 자신을 주님께 모두 맡기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제게는 병이 있습니다. 요로결석이라는 증상으로 인해 새벽에 화장실을 자주 갑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기도를 드립니다. 제 몸을 완전히 치유해 주십사고 말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면 언젠가 기적적으로 제 병을 낫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처럼 완전한 믿음을 통하여 주님께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마상태(안드레아)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듯이 오늘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물으신다. 우리는 미사 때나 각자의 기도생활 속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성삼위의 한분이시며 우리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라고 신앙을 고백하지만 그것은 입에서만 나오는 말이고 실제 내면 깊숙한 곳에서 진실로 그분의 존재를 확신하는지는 의문이다.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진정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김윤오(베드로) -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나는 방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타인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는 것일까. 복음의 말씀처럼 내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타인의 눈 속의 티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내가 방에서 생활하는 모습들을 생각하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타인의 허물보다는 제 자신의 허물을 먼저 발견하고 깨우치며 반성하는 베드로가 되고 싶습니다. 아멘.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베드로야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은 너무도 좁고 험해서 힘듦과 고난의 연속일 것이다. 엊그제 너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부려 여러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었던 사실을 알지 않느냐? 베드로야 남들이 너에게 무엇을 해주길 바라는 것보다 베드로가 먼저 남들을 위해 베풀고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봄은 어떨까? 베드로야 너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만들어야하지 않느냐? 베드로야 하느님 나라는 힘든 여정임을 생각해라. 아멘.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저도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계약들을 맺었습니다. 때로는 집을 얻고자 때로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기 위하여 계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과 계약을 맺었으며 하느님과도 믿고 따르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복음말씀처럼 좋은 나무에서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란 점입니다. 저는 주님께 계약을 맺으며 하느님 나라라는 좋은 나무를 받았으면서 잘 가꾸지 못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온전히 지키며 살아왔다면 저도 좋은 나무를 가꾸며 좋은 열매를 맺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제라도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지키며 살아야겠습니다.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계약을 이행하는 베드로로 살게 해 주소서. 아멘. 예수님! 저에게도 희망은 있는 것이죠? 저는 오늘 성경공부를 하면서 희망이라는 것이 저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현제 나이는 50세이고 출소를 하게 되면 저의 나이가 54세가 되는데 그 나이가 되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늘 마르코 복음에서 하혈을 하는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자락만을 잡고서도 치유될 수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고 여겼던 소녀도 일어나 걸어 다니게 만드신 예수그리스도님이 계신데 나는 왜 헛걱정만을 하고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은 믿음으로 간절히 원하면 들어주실 터인데 저의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예수님의 처분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하혈을 하던 여자와 같이 굳센 믿음을 가지고 따르고 의미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하면 저에게도 희망을 보여주실 것이죠?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아멘.
김논태(예비신자) –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줄 것이며 그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영원한 삶을 약속하신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시몬베드로는 과연 알았을까요? 그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예수님께서 주실 것을.
박재문(비오) - 주님! 이렇게 영어의 몸이 되기 전에는 당신을 잘 몰랐습니다. 또한, 당신의 종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축복을 받았지만, 당신께서 저에게 주시는 사랑이 깊이 다가오지 않았고, 저를 용서 했다고 하셔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넘어졌는데 일으켜 주시지 않으면 원망스러웠고 울고 있을 때 위로해 주시지 않으면 당신이 야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작은 시련 앞에서 금세 당신을 원망하는 제 얄팍한 신앙 삼아,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진듯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제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추하고 비뚤어진 근성을 만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렇듯 약한 제 몸과 마음에 주님에 사랑을 불어넣어 주시고 문을 꼭 닫아걸고 잊어도 어느새 제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오셔서 평화의 인사를 전해 주시는 당신이 계시기에 저는 두렵지 않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임운택(베르나르도) - 오늘은 주님께 하소연 좀 하려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제가 굳이 얘기치 않아도 제 마음속에 있는 생각마저 아시는 분이시지만, 오늘은 저의 아버지로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요즘 이 못난 아들이 매우 힘듭니다. 아버지께서 얼마 전에 저에게 세례라는 큰 선물을 주셨지만, 그 선물의 감흥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에게 아버지께서는 아버지를 체험하는 놀라운 경험도 주셨지만, 자꾸만 제 마음이 식어갑니다. 저는 아버지를 부인치 않습니다. 저의 아버지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 있으면 세상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세상은 분명 저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보다 아버지의 뜻을 우선시해야 함을 알지만, 아버지는 제가 잠시 찾지 않아도 저에게 화를 내시지 않지만, 세상은 저에게 크나큰 화를 냅니다. 또한 그 유혹은 얼마나 강한지 한번 맛을 보면, 자꾸만 빠져들어 아버지를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실 무섭습니다. 제가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이런 두려움은 처음입니다. 하긴, 전에는 이런 걱정이란 걸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땐 많은 걸 몰랐기에 그만큼 겁도 없었는데, 이제는 가족의 사랑도, 내 자신의 소중함도, 아버지의 말씀도 알고 나니, 오히려 겁만 많아져 버렸습니다. 저의 소중한 것들을 다 지키고 싶은데 저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그 중 아버지가 제일 편합니다. 언제나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생각 자체가 크나큰 죄악임을 압니다. 허나 아직은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르기에 제가 너무도 약합니다. 제 주변에 아버지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큰 힘을 얻을 것 같은데, 제 가족도, 제 지인들도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우상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그저 아버지께 맡기고 따르면 되나요? 그렇게 하면 저에게 답을 주시렵니까? 요즘 같으면 나가는 게 싫습니다. 그냥 여기서 좀 더 아버지와 함께하면서 저를 키운 후 나가고 싶습니다. 이게 저의 첫 고비인듯 싶습니다. 아버지는 아시죠? 제가 앞으로 어찌 살지…. 제 삶이 아버지를 부인하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저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어렵게 이곳에서 아버지를 찾았는데, 다시 잃고 싶지 않습니다. 이 아들 아직은 아버지께서 시험을 주신다면 이겨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아버지를 더 사랑할 때까지는 저에게 그 시험을 주지 말아 주십시오. 불량배들이 저를 유혹하려하면 애초에 쫓아버리시고 아버지의 품 안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오늘 아버지께 아들이 떼를 씁니다. 이제 걸음마 시작한 이 아들 아직은 새싹에 불과합니다. 많은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좀 더 아버지의 온실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의 든든한 어깨에 기대어 쉬고 싶습니다. 아들의 못남을 용서하시고, 비록 못난 아들이지만, 아버지가 계심으로 제가 존재합니다. 아버지의 크나큰 사랑에 감사드리며 사랑합니다.
- 저는 담장 안에 살고 있습니다. 저 담장이 저의 위치와 저의 신분을 말해 줍니다. 제가 어디에 있건 항상 제 주변엔 저 담장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매일 이 담 안에서 하루를 시작해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런 담은 어느새 저와는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나 저 담 너머 세상을 소원하지만, 어느새 저도 모르게 제 생각도, 마음도 이 담장 안에 가두어 놓고 살아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좁은 곳에서 산다는 이유로 제 마음도 좁아져서 어린 아이들마저도 대범하게 웃고 넘길 일도 저는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 양 목숨을 걸고 왈가왈부하며 흥분하는 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새 제 마음속에서 담이 생겨 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이 담은 제가 태어나면서부터 조금씩 저 스스로, 제 마음속에 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담 때문에 제 동료와, 이웃과, 정상적으로 소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가족이 제 동료가 저에게 주는 관심과 사랑도 저는 이 담 때문에 보질 못했습니다. 오히려 왜 나에겐 사랑을 주지 않느냐며 그 사람들에게 잘못을 돌렸습니다. 또한 언제나 제 생각이 맞는 것처럼 늘 사람들을 제 잣대에 비교하고, 판단하면서 그들을 깔보았습니다. 그들이 행여 제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제 생각이 당연히 맞는 것처럼,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처음부터 잘못 쌓아올린 이 담 때문에 저의 인성은 평생 이리 담 안에 갇혀서 제대로 된 세상을 구경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그 담이 저에게 보이지만, 삼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쌓아올린 담이라 그 담이 쉽게 무너지질 않습니다. 잠시의 깨우침으로 이 담을 허물려고 도끼질을 하고 삽질을 해도, 저만 아플 뿐 쉽게 무너지질 않습니다. 어느새, 이 담 또한 저의 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 담을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 육신을 붙잡고 있는 눈에 보이는 담보다 제 마음속의 담에서 빨리 벗어나야 참다운 삶을 살지 온대, 그 길이 마냥 예수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처럼 두렵고 무섭기만 합니다. 이 담 좀 더 쉽게 허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 답을 알려 주십시오. 이리 오늘도 주님께 못난 저는 매달려 봅니다.
민동근(리차드) - 늦저녁부터 시작된 빗줄기가 새벽 동이 터올 때까지도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집니다. 소나기 수준의 굵은 빗발이 계속해서 쏟아지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져 기분이 좋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많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고 살짝 걱정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걱정은 잠시였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심각한 가뭄이 해소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가뭄으로 고통 받고 신음하는 동․식물들과 근심․걱정으로 시커멓게 속이 타들어 가는 농민들을 위해서 며칠 전부 주님께 기도드린 것이 이루어 진 것 같아 너무나 감사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발이란 명분으로 마구잡이로 자연을 파괴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인간들에게 보내는 경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숙연해 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기아, 흉작, 산불, 병충해 등으로 많은 생명체가 고통받고 있으니 제 생각이 단순한 기우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심각한 가뭄을 과학계에선 태양 흑정의 증가와 해류의 변화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역시나 제일 큰 원인은 과다한 탄소 배출 등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 같습니다. 어서 빨리 모든 사람이 이런 점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이전 점들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과 그 외 많은 국가들이 교토 협약을 통해 탄소 배출 등을 제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도 미국이나 중국 등의 많은 나라는 들은 척도 안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 보고서들을 증거로 내세우면서 탄소로 말미암은 지구 온난화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이라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구잡이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은 자연과 교류하려고 하는 선천적인 의지가 있다고 하였고 이를 ‘생명사랑’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자연 속에서 느끼는 평안함과 안정감 등은 유전적으로 내려오며 기억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말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그것은 우리 인간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사랑 안에서 태어난 자연을 보호하며 교류하려는 인간들의 의지는 당연한 것입니다. 다행이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의지를 잊지 않고 생명 사랑을 실천하며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 사랑을 잊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중심의 이기적인 개발이 아닌 지구 풍성의 조화로운 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인위적인 가뭄이나 사막화들의 재해가 생기지 않게 모든 사람들이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세상이 올 수 있게 주님의 넓으신 자비와 사랑으로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김영일(예비신자) - 주님, 제 딸 유진이를 그리워합니다. 눈에 넣어도 부실 정도로 예쁘고 귀여운 딸을 그리워합니다. 성모님, 제가 제 가족을 그리워하듯 성모님께서도 제 가족을 항상 지켜주시길. 신부님, 제가 지치고 힘들고 외롭고 고독할 때도 하느님을 믿고 의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미사에 나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 준 모든 분들께 항상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함께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충만하기를 빌겠습니다.
최우용(니콜라오) -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세상 누구에게나 자신의 싫고 좋음에 대한 기준과 정의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어린아이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다. 공자가 말하길, 세 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첫째, 아이들은 순수하다. 둘째, 아이들은 거짓이 없다. 셋째, 아이들은 단도직입적이다. “엄마 좋아, 아빠 좋아!, 고기 좋아, 생선 싫어!”등….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좋고 싫음으로 구분 짓고 표현을 한다. 그것은 남녀노소라고 해서 차이가 있다거나, 다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누구에게나 자신에 주관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옳고 그름이라는 것에 대한 정립이라기보다는 싫음과 좋음으로 세상을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정의를 내려놓는다.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유년시절부터 그래 왔듯이 자연스럽게 구분을 지어 놓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하루에도 자기 자신이 정해놓은 좋고 싫음이 가슴 덕분에, 생각으로 또는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싫어하는 것들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미움을 싹 틔우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으며 고통스러워하고 힘에 겨워한다. 누군가는 비가 내려서 싫고, 또 누군가는 눈이 내려서 싫으며, 누군가는 여름이, 누군가는 겨울이, 이 사람이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고, 왜 이러는 걸까? 실컷 정의를 내려놓고선 인제 와서는 또 그 싫고 좋음을 정한 것으로 인해 상처 받고 아파한다는 거다. 나는 문득 이런 내 자신이 하는 생각과 행동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어떠한 대상을 굳이 싫다고 정하지 않았다면 부정적인 생각도, 부정적인 행동도 아픔도, 미움도, 상처도 받지 않을 것을, 스스로 어느 한 면만 보고서는 그 사물이나,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양 싫은 것으로 치부하며, 스스로에 마음에다 족쇄를 채우고 채찍질을 해댄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사랑’이라는 한 단어를 몸소 보여 주시고자 가시관을 쓰시고, 온 몸에 채찍질 당하시고, 끝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들을 위해 희생하셨는데, 우리들은 과연 입으로는 주님을 외치고 사랑을 말한다. 지금 나는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배부르지도 않고,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성체 하나, 내 마음 안에 모실 준비가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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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 저들의 간절한 소망을 물리치지 마소서..아멘.
베르나르도형제님~형제님은 그자리에 그대로 소중한 사람입니다.스스로에게 넘 집착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마음이 편해질겁니다.고정관념과 집착에서 벗어날때,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할겁니다.
비오 형제님의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