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비우는 작업이다.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은 어떤 욕망이나 목적을 두고 하나님께 애걸복걸(哀乞伏乞)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은 내 자신의 욕망을 제거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나를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도구로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께 우리의 욕망을 푸는 도구 또는 요술 방망이와 같이 생각한다. 그래서 입시 때가 되면 아니면 크고 중대한 일, 결혼, 승진, 창업, 수술, 등이 생기면 무조건 새벽기도건 철야기도건 금식기도건 그런 기도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기도가 오직 목적만을 위한 기도가 된다면, 욕망의
필요를 위한 기도가 된다면 옳지 않다. 비록 우리에게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와서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온다면 그 때는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서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묻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도록 자신의 욕망을 제거하며, 오직 하나님의 방법과 뜻대로 이뤄지도록 자기 자신을 제어시키며, 순종시키는
작업이 기도 가운데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우리는 수 많이 배웠고 나 또한 의식적,
무의시적으로 배웠다. 그래서 하나님께 무엇인가 구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은 것 같고 또한
구할 것이 없을 때는 자연히 간절한 기도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날마다 솟아나는 끝임
없는 욕망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날마다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게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
기도는 자신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었으며 그 내용 또한 달랐다. 그 분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당해야
할 고통과 두려움도 함께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생명부지의 욕망을 이뤄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기도를 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기도의 본질이다.
왜 우리가 기도하면서 실망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생기나?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정한 바에 목적과 욕망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거나 더디 하시기 때문이라 생각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그런 기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기도가 아니다.
선한 아버지는 자식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안다. 하지만 자식이
꼭 필요한 것 이외에 굳이 필요 없는 것까지 탐내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것은 탐욕에 근거한
것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게 하며, 단지 주는 분, 베푸는
분, 하늘에 모든 것을 쌓아놓고 전해주는 아마존이나 이베이에 지나지 않게 만들기 떄문이다. 단지 돈이란 매체와 기도라는 매체라는 차이 밖에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도 아니고 뜻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른 기도를 하기 원한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비워지길 원한다.
기도를 통해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길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