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샘 교회 29주년 맞는 글
“아니, 벌써 그렇게 됐어요?
한샘, 차 풍언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 하지 않는가. 강산도 세 번이나 변할 세월을 우리는 보내고 있다. 내 년 2010년 1월 첫 주일이 되면 뉴욕 한샘교회가 Bayside UMC에서 주일예배 시작 한지 만 30년이요, 이 곳 성산에 들어-서 영원한 생수를 뿌리고 흐르게 한 5월 첫 주일이 되면 NPC와 함께 한 세월까지도 삼십 년이 된다. 아니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가.
나는 꾀가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 사람들과 사물을 대할 때 판단과 행동이 느려 종종 시간은 물론 재물과 돈까지도 손해 볼 때가 있다. 그러나 판단과 행동이 느린 대신에 신중함을, 빠른 머리회전 대신에 붙임성을 남달리 가지려 노력하는 삶을 가꾼다. 한 번 믿었던 사람과 사물은 믿음의 고리를 쉽게 끊지 아니하려 한다. 눈이 나빠 얼굴이나 자태는 기억하지 못해도 후각에 닿았던 향기는 오래도록 내 마음 꽃밭에 간직하려 한다.
이 곳 성산에서 만나 삶 나누던 향내 나던 분들이 떠나간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떠나가고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이 불러 떠난다. 세상 안개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가기도 하고 비바람과 눈사태에 휘말려 쓸려 가기도 한다. 쓰나미가 할퀴고 간 그들의 삶 자리에는 그 향내의 옅고 가녀린 꼬리마저도 없다. 남기지 않으려, 물로 씻은 듯, 불로 태운 듯, 청소한 듯 흔적이 없다.
아아 “세월이 약이라”던 그 함성(喊聲)은 어찌 됐는가. “시간이 어루만져 해결해줘요”라던 바이올린소리는 더 이상 의미를 줄 수 없는 소리라. 북치고 피리 불고 장구치는 악대(樂隊)의 행렬은 더 이상 흥겹지 않다. 차라리 비극이라. 차라리 모순이라. 차라리 눈물이라. 차라리 임종(臨終)의 숨 넘어가는 소리라. 차라리 너와 나를 비웃는 니힐리즘(nihilism)이라.
아아 이젠 시간이 없다. 너와 나, 우리를 받아 줄 싸구려 웃음도 없다. 오직 시공(時空)이 말라 비틀어진 해골의 춤을 본다. 너와 나, 우리의 길고 긴 검은 그림자만이 몸살하는 대지를 할퀸다. 깊은 주름살 칼자국 따라 비명이 지난다. 서러워 서러워 흐느낌이 메아리 친다. 아아 진정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
아니, 벌써 그렇게 됐나요. 세 번이나 강산이 변하는 기적의 몸부림이 남긴 흔적... 오십 이주, 열두 달, 삼백 육십 오일을 남긴 하늘의 긍휼. 일 년이라네. 일 년이라네. 일 년이라네. 한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