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본 목사의 도덕성과 명예
1>, 노무현의 승부수와 도덕성
인간 노무현. 역시 그는 승부사였다. 그분의 일생이 그렇다.
가난한 농촌에 태어나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사법고시를 거쳐 인권변호사가 된 것도 한편의
승부였고 정치인들이 너도 나도 지역감정을 편승하여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케멜리온
같은 구도 속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그의 행보도 역시 한편의 승부라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상황을 따라 줄서기 하거나 세상의 눈치 보면서 자기 합리화하는 철새 같은 그런
류의 정치를 하지 않았고『바보 정치인』으로 불리는 그가 국민들의 눈에 띄어 지지자들의
동정과 결집으로 탄생한 것이 『노사모』였고 이『노사모』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기반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된 이후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과 보수언론에 대한 계속된 갈등, 그리고 기존
검찰조직의 권위에 대한 개혁과 도전 역시 하나의 승부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보 좌파 친북주의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계승자로 북한 김정일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퍼다 주었지만 나라를 거덜 내면서도 세계를 향하여 협박하는 핵무장을 하게 한 공로?는
역사적으로 평가 받을 날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분은 명분과 도덕성으로 기억되는
서민의 대통령으로 남기를 소원했던 것 같다.
권력이란 원래 맛을 보고 나면 마약과 같아서 쉽게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기에 집착하게 되는게
상식인데 노무현 그 분은 퇴임식에서 『야! 기분 좋다!』외치며 특유의 미소로 국민의 공감을 얻어냈다.
2>, 명예와 도덕성
인권과 도덕성을 모토[motto]로 하는 그는 깨끗한 정치와, 도덕성이 그를 당당하게 하고 지탱케
하는 긍지와 가치였는데 퇴임 후 그에게는 이 가치관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봉하대군 노건평씨』의 뇌물과 청탁, 공천개입, 정치개입은 역대 어느 시대에 뒤지지 않는
부패의 온상이었고, 박연차씨에게서 받은 돈은 그런대로 견딜 만 했을지 모르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친구이며 동지인 정상문비서관의 대통령 업무비 횡령은 그분을 더 이상 지탱 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을 끊어 놓는 결정적인 충격이었고 이제 그분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최악의 지경으로 몰고 갔다고 생각하게 된다.
검찰의 기소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그의 가장 소중하던 도덕성과 명분은 이제 회복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 도 없는』최악의 건강상태로 죽음에 이르는
절망에서 그 상태에서는 가장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자살 이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3> 또 다른 승부수
그분의 이번 자살사건은 또 다른 한편의 숭부였다. 아니 이전의 어떤 승부보다 더 강력한
인생의 승부, 정치 승부라 할 것이다. 그 분은 이번 자살이 그의 일생 가운데 가장 강력한
승부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고 계산해 보았을까가 매우 궁금하다.
이번 선택의 결과 1), 자살(自殺)이 서거(逝去)로 승격되었고
2),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증폭될 기회가 되었고
3), 그의 부패한 도덕성은 온데 간데없어지고
4), 4,800만 국내외 동포들의 세파에 찌든 감정에 슬픔과 동정의 불을 붙여 활활 타오르게 하였고,
5), 집권 이명박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조심스러워 졌고
6), 세계 모든 나라 국가원수 등 인류의 이목이 집중되고
7), 인류역사가 주목하는 시대의 인물로 자신을 부각시키는 참으로 강력하고 놀라운 최고의
승부수를 던진 격이 되었다.
그분이 양심이 있다면, 명분을 소중히 여겼다면, 비굴해지지 않으려면,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점에서 삼가 고인을 깊이 추모한다.
4>, 목사의 정절과 명예.
예로부터 선비는 명분과 지조가 생명과 같은 것이다. 만일 선비가 명분과 지조를 버린다면
이미 죽은 목숨과 같은 것이다.
수양대군 앞에 사육신들은 지조와 명분에 대한 지나친 결벽성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도 내세에
대한 소망도 없으면서 그리고 미래의 가치와 삶의 소중함을 포기 하면서까지 초연히 사지가
찢어져 죽기를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신숙주는 명분과 신의보다 자기 삶과 나라에 대한 實用을 택하였기에 수양대군을 지지했고
그리고 세조시대의 찬란한 정치문화의 주역으로 실용주의 많은 업적을 성취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신숙주는 명분과 신의보다 삶의 가치의 소중함과 국가 국민에 대한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사명감이 더욱 크고 소중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성공적으로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을 사용하려 했고
전자들과는 가는 길이 달랐음을 우리가 간파해야 한다.
그러나 신앙의 정절은 그것과 다른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도덕성과 명예도 세상의 선비들의
명분이나 지조와 차별성이 있는 것이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신앙정절이 그랬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주기철목사님의 순교가 그렇고
사자에 찢기던 성도들,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던,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이 우리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목사라면 아니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신앙에 대한 정절 때문에 기꺼이 순교의 길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이때 비로소 신앙의 가치는 영롱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생명력은 시대와
역사속에서 누룩처럼 영향력을 확장해 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고 한국교회가 이와같은 정절 있는 신앙을 회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이 저려오고
눈물이 흐른다.
5>, 이념과 사랑의 힘.
사상과 생각, 그리고 사명에 대한 확신은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것이다. 총 칼보다도 아니 핵무기보다도
이념과 사명의 힘이 더 큰 것이다.
적어도 우리 목사들은 세상을 다 잃어도 포기 할 수 없는 그리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 사명감과 명예로
무장해야 한다.
목사는 밥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도덕성과 명예를 잃으면 그는 이미 목사나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고 생명을 잃은 비천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간혹 약삭빠르고 눈치 빠르게 상황 따라서 자기 합리화하며 이익과 실리를 좆아 이 꽃 저 꽃 날아드는
나비 같고 간신배 촉새 같은 무리들 때문에 세상은 혼란해지고 질서는 무너지고 다수와 물량에 의한
불법이 활보하는 데 기여하는 분들이 우리 중에 있다는 게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슬픔이다.
여자는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되었을 때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이길 수 없는 힘을 지닌
존재로 돌변한다. 연약한 암탉이 병아리를 데리고 있을 때 두려운 것이 없는 존재가 된다.
모성본능 때문에 강력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과 하나님 사랑의 모성 본능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순교자적인 지조와 명분으로 무장 해야 한다.
노무현전 대통령의 자살을 보면서 목사들 중에 그의 이 명분과 도덕셍에 생명을 걸고 있는
자세를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009, 5, 25 아침에 박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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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치적 타살입니다....자살이 아니라 자결입니다....죽어서 영원히 사는....그리하여 우리 크리스챤을 한 없이 부끄럽게 합니다....주여!!~~주 하나님의 공의하심으로 그 영혼을 주님의 긍휼로써 인도하옵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