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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에게 경건의 훈련을
히브리서 12:5-11
어느 목사님의 간증이다. 나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재미있는 기억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나나 형이나 여동생을 양육하시면서 한 번도 손찌검을 하신 적이 없으셨다. 그뿐만 아니라 몽둥이든 작은 작대기든 무엇으로 우리를 때리신 적이 없으시다. 그러나 벌을 내리시기는 했다. 아버지가 화가 무척 나시면 이렇게 말했다. ‘○○○야!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너 잘못했지? 뭐 잘못했는지 알아? 다시 또 그렇게 할 거야? 앉아. 일어서!’ 하여간 ‘앉아 일어서!’를 몇 번을 반복해서 시키셨는지 모른다. 이것이 우리를 야단치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버지가 눈을 크게 부라리시고 ‘앉아 일어!’ 하시면 정말로 무서웠다. 그런데 중학생쯤 되니까 이게 뭐 대체 뭐 하는 건지 무섭기는커녕 우스웠다. 물론 지금 또 이것을 생각하면 ‘씩!’ 즐거운 웃음이 나온다. 왜 아버지가 야단을 치셨나?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뿐 아니라 다리 근육을 위해 운동을 시키시는 뜻도 있으셨다.
눅 15:11-17 /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제게 돌아올 몫의 재산을 지금 나누어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후에 작은아들은 자기 몫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떠났다. 거기서 술과 여자로 세월을 보내면서 돈을 허비해 버렸다. 14) 돈은 이미 다 떨어진 데다 그 지방에 큰 기근이 들어 그는 끼니조차 이을 길이 없었다. 15) 할 수 없이 그는 한 농부를 찾아가서 애원하다시피 하여 돼지를 치게 되었다. 16)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먹고 싶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넉넉히 주는 사람이 없었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가 계신 집에는 일꾼들까지도 양식이 풍족하여 먹고도 남는데 여기서 나는 굶어 죽겠구나!’”
작은아들에게 닥친 많은 재난이 하나님께서 욥의 경우처럼 사단에게 허락하신 연단이라고 하기보다는 작은아들이 성령께서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악한 일 하기를 좋아하는 본성의 욕망에 이끌려서 당한 어려움이었다. 육신의 본성이 시키는 대로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면 누구를 막론하고 사단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불행을 자초한다. 누구든지 작은아들처럼 본성의 욕망대로 살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수 없다.
예수 님께서 ‘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세상으로 나갔으니 어려움을 좀 겪어보라’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게 하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안에 살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4-5).’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난 자체가 불행의 원인이 되었다. 이러므로 그제야 제정신이 들어 아버지 집으로 향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긍휼이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호세아 5:15-6:1 말씀이 무슨 뜻인지 지식적으로 알고 이해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말로만 알 뿐이다.
호 5:15-6:1 / 나는 이제 그들을 버리고 내 집으로 돌아가서, 그들이 자기 죄를 깨닫고 나를 찾아 다시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리겠다. 환난이 닥쳐오면 그들은 곧 나를 찾으며 애타게 호소할 것이다. 6:1) 그들이 말하기를 `자, 이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분은 우리를 찢어 놓으셨으나 도로 고쳐 주실 것이다. 상처를 입히셨으나 다시 싸매 주실 것이다.
▶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야단을 치시며 훈련하신다는 내용이다.
본문은 7개의 짧은 절이지만 특이하게도 ‘징계’라는 단어가 8번 나온다. 5절을 보면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7절에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8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9절에 ‘우리를 징계하여도’, 10절에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11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그러기에 본문을 푸는 가장 중요한 Key Word는 ‘징계’이다. 이 단어를 영어 성경은 ‘Discipline’ 혹은 ‘Chastening’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징계라는 단어를 들으면 언뜻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Punishment, 처벌, 형벌’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우리는 Discipline이라는 단어를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Discipline이라는 단어의 뜻이 훈련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벌을 준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를 혹은 그리스도인들을 징계한다는 말의 뜻은 Discipline을 위한 것이지, 결코 Punishment가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징계는 분명히 고통과 고난 중에 받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처벌 형’의 의미가 아니다.
‘징계’라는 단어의 헬라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어린아이를 훈련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뜻은 아주 폭넓게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어린아이의 수준에서 어른의 수준으로 성숙하게 성장하기 위하여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단순히 어린아이를 야단치는 Spanking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징계라는 단어의 의미는 영적으로 어리숙하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 혹은 더욱 성장하는 것이 필요한 성도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영적 훈련이다. 이것은 또한 모든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 이러한 것을 하지 마’라는 말이 ‘이러 이러한 것을 해야 해’로 변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이러하게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주일 예배를 빼 먹지마’에서 ‘주일 예배는 똑 드려야 해’로 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재물을 도둑질 하지마’에서 ‘풍성하게 연보하여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자’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징계의 성경적 의미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왜 성도를 징계하시는지 그 이유를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1. 보응의 성격이 있다.
사무엘하 11장에 보시면 다윗 왕과 밧세바의 불륜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에게는 불륜 혹은 간통의 죄에 더해 살인죄가 있다. 그리고 12장에 나단 선지자의 다윗 왕에 대한 책망이 나온다.
삼하 12:14 / 그러나 임금님께서 간음과 살인죄로 여호와를 모욕하였기 때문에, 이번에 밧세바가 낳은 임금님의 아들은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에 보면 밧세바가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셔서 죽게 하신다. 다윗 왕의 살인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므로 그의 아들이 죽었다. 이것이 응보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 의미이다.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반응하시는 것 중에 징계가 있다.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잘못된 행위 혹은 죄에 대하여 돌을 던져 징계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존재가 되게 하려고 징계하시는 것이다. 다윗 왕은 아들이 죽는 슬픔을 경험하지만 그의 자손 중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구세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2. 하나님께서 성도를 징계하시는 이유는 예방의 성격이 있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 즉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에게 있던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이 육체의 가시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3번이나 이것이 떠나가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물론 이것이 사탄이 준 것이 아닐 것이고 사탄의 사자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께서는 7절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한다.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께서 3번에 걸쳐 주님께 고쳐달라고 간구한 육체의 가시를 하나님께서 바울이 일평생 안고 가게 하신 이유는 자만하지 않게 예방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9절을 보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사도 바울과 위치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고 크게 기뻐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 강함이라.’
3. 하나님께서 성도를 징계하시는 이유는 재발 방지를 위한 목적도 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아 누리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녀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재산도 모두 잃어버린다. 아내는 그를 저주하고 떠난다. 욥은 엄청난 피부병으로 고생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말로 귀한 교훈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다.
욥 42:5 / 전에는 내가 소문으로만 주님에 대해서 들어 왔습니다만, 이제 이 두 눈으로 주님을 똑똑히 뵙고 있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 속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훈련과 교육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잘 소화해야 한다. 욥은 자신의 비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눈으로 주를 뵈옵는 은혜의 훈련은 받았다. 그리고 그는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자신의 죄인됨에 대하여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가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가? 하나님의 징계에는 우리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의 성격이 있지만,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가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예방하며 우리를 훈련하는 것이다.
4. 정금과 같이 귀한 존재로 쓰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방법들도 여러 가지이다. 전쟁으로 징계하셨고(대하 24:24), 질병(욥 33:19), 자연 재해(욥 36:27~31; 37:11-13), 부귀영화를 소멸하심으로(시 39:11), 재앙(시 73:14), 지진과 폭풍으로(사 29:6) 징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하고 죄악에 빠진 인간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징계를 통해 회개하게 하여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
순금(純金)과 정금(精金)은 ‘다른 금속이 섞이지 아니한 순수한 금’을 의미하는 같은 말이다. 성경에서는 믿음의 순도를 비유할 때 종종 사용된다. 또 ‘지혜’와 ‘귀하고 소중한 것’을 상징한다.
욥 23:10 /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정금 - 깨끗한 인간)같이 되어 나오리라.
금은 처음엔 광석에 불과하지만, 온도가 1000도 이상의 용광로에서 40일 동안 세 번 살아남으면 순금이 된다. 무엇보다 온도가 제일 중요하다. 약간 높거나 낮아도 안 된다. 다른 액체가 함께 녹아 불순물을 걷어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제련사의 사전에는 ‘적당’(適當-어떤 성질·상태·요구 따위에 꼭 알맞다)이라는 말은 있지만 ‘대충’(어림잡아)이란 말은 없다. 마지막 불순물이 제거되고 금의 표면이 장력을 일으켜 판판하게 퍼진다. 그때 금의 표면 위에 제련사의 얼굴이 거울보다 더 또렷하게 비친다. 마침내 순금이 탄생하는 시간이다.
순금의 신앙이 되려면 자신의 얼굴이 거울처럼 보일 때까지 연단은 계속된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신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금은보화나 권력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귀한 것은 없다. 내 영혼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용광로에서 노폐물이 제거되어 정금이 되듯 고통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악의 찌꺼기들을 제거하고 거룩한 사람을 만든다. 한번 순금이 된 뒤에는 다시 광석으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려면 이런 고난 또 저런 고통이 수없이 몰려온다. 믿음의 사람이 되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의 경륜과 역사 속에 있는 것을 깨닫고 된다.
▶ 참고해야 할 세 구절이 있다. 깊이 묵상하여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롬 8:28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전 13:11-13 /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나 모두 다 어렸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적 말이나 생각이나 판단을 모두 다 내버렸습니다. 12) 우리 비록 지금은 희미한 거울 속 들여다보듯 희미한 모습만을 비춰 보지만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분명히 볼 것입니다. 나 비록 지금은 알고 있는 것 모두 다 몽롱하고 흐리나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꿰뚫어 보시듯 모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3)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이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마 5:43-48 / [원수를 사랑하라; 눅 6:27-28, 32-36] 또 모세의 율법에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라는 말이 있다. 4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46)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무슨 ㅁ) 미덕이 되겠냐? 세리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 (ㅁ. 헬라어 원문은 `상을 받겠느냐?') 47) 만일 너희가 너희 이웃들과만 가까이 지낸다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느냐? 이방인들도 그렇게는 하고 있다. 48) 그러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 고난이 유익이라(채수련 작사 김동국 작곡) /
1. 네 짐이 무겁고 힘이 드냐 주를 보라 고난이 유익이라 주님 말씀하시네
나의 가는 그 길을 오직 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소망이요 쓰라린 아픔 뒤에 축복이 있다네
2. 고난은 인생의 참 의미를 알게 하고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어요
나의 가는 그 길을 오직 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
고난이 크면은 영광도 크는 법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네
3. 고난의 십자가 보배이며 능력이라 주님을 따르는 자 십자가 져야만 하리
나의 가는 그 길을 오직 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
좁은 길 가는 자 생명길 영광의 길 십자가 진 후에 면류관 있으리
본문을 통해 조금 더 구체화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말씀
1. 하나님의 징계를 대면하게 되었을 때 범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위험한 행위들이다.
본문 5절이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된다.
영어로는 ‘Despis’ ‘경멸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실 때 그 징계를 경멸하지 말라는 것은 이런 뜻이다. ‘왜 나입니까?’, ‘왜 나한테 이러시는 겁니까?’, ‘Why me?’ 하나님께 반항하며 도전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위험한 첫번째 태도이다.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은 징계를 받았을 때 체념하거나 푸념하여 쓰러지거나 기권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나는 안 돼. 모든 게 끝이야’ 하면서 포기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위험한 반응이다.
벧전 5:10 / 그리스도를 통해서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짧은 고난 뒤에 영원한 영광을 주시려고 여러분이 흔들릴 때마다 그 자리에 굳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 강하게 해주실 것입니다(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 하나님께 경멸적인 태도나 낙심하는 태도를 취하지 마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히려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고 거룩한 삶, 복종하는 삶을 살아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고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녀 삼아주신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거룩한 연단을 받아 우리 모두의 삶이 온전하여지며, 굳건하여 강하여지며, 견고한 믿음의 터를 만들어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2. 징계와 책망은 왜 닥치는 것일까?
잘못된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죄악의 길에서 올바른 길로 돌리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사랑의 징계와 교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리는 시련을 참아내야 한다. 아버지로서 자기 자식을 단련시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만일 여러분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녀가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듯 하나님의 질책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자녀, 가족도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는 감사함으로 참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들과 같이 대우를 하므로 야단을 치고 징계도 하신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는 아들은 참 아들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징계도 받는 것이다.
신명기 8장 5-6절 말씀을 보시라. “여러분이 이 사실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옳게 가르치듯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가르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로만 걸어가면서 주님을 경외함으로써 주님의 명령을 지키십시오.”라고 하였다. 징계를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하며 연단을 받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만한 믿음도 없고, 용기도 없고, 자신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고, 담대하게 하여 허락하신 땅을 주시기 위해 40년간 연단을 시키신 다음에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건설하게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 전에 일시적인 시련과 연단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뿐 아니라 축복을 주신 후에도 종종 경계 삼아 가벼운 징계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 3:19 말씀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훈련과 징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무관심한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일에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벌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를 주신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는 회개를 하고 더 열심을 내야 한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한다.
3.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착각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경책이나 징계는 훈련과 연단이라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병 주고 약 주고 하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잘못되었을 때, 죄악에 빠졌을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잠시 고난ㆍ징계라는 차트에 OK라는 사인을 허락하실 뿐이다. 병들었을 때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을 가서 진찰을 받는다. 종기가 있다든지, 암이 있다든지 하면 의사는 병든 부분을 수술한다. 수술이 끝나면 상처를 꿰매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도와준다.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해서는 이처럼 수술하는 고통과 고난이 필요하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성령께서는 MRA보다 더 정확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품은 생각 및 육체 부분까지 진단하시고 또 수술까지 해 주신다….
히 4:11-12 / 그러므로 우리도 이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이 넘칩니다. 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로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욕망까지도 가르고 그 정체를 드러내게 합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징계를 우리를 살리고 복을 주시려는 것으로 그 고통은 병을 고치기 위한 목적이다. 결코 망하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죽게 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을 끝내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때로는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는 것이다. 나 자신도 모르고 있는, 나로 하여금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암적인 존재를 제거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이다.
결론으로 몇 가지 예화를...
■ 존 번연과 함께 영국 17세기를 대표하는 청교도작가인 밀턴이 쓴 ‘실낙원’(失樂園)이라는 대서사시가 있다. 창세기 초반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서 하나님의 창조와 그리고 인간의 사단의 시험을 받아 타락함으로 낙원에서 추방되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희망을 노래한 대서사시로써 단테의 신곡과 함께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고전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이 밀턴은 1608년에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가 이 밀턴이 목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24살 때 그는 신학 수업을 포기하고 그 후에 시인으로서 또 후에 국가를 위한 공직에 서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개인사를 보면, 첫째 아내와 이혼하지만, 다시 마음을 돌이켜 재결합한다. 그래서 아들 하나 딸 셋을 두었는데 그 아내가 죽고 그 아들도 죽었다. 너무 안타까워 고통을 겪다가 재혼을 했지만 1년 만에 그 아내가 또 죽고 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도 죽는다. 세 번째 결혼까지 했지만 남은 세 딸과 심한 갈등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으며 참 쉽지 않은 가정사를 이루게 되었다. 세상의 삶에서 정치적으로 그는 크롬웰 공화정에서 장관직을 맡았으나 공화정이 무너지며 헌신했던 장관직에서도 쫓겨난다. 그는 신체적으로 1652년에 시력을 잃었다. 밀턴이 실낙원을 썼는데, 1658년 딸이 받아 적는 형태로 구약을 토대로 하여 1663년 완성하였고, 4년 후에 초판을 발간했다. 전혀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상태 속에서 실낙원을 썼고 후에 복락원을 쓰게 되었다.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친다. 가정의 고통도 정치적인 실패도 실명되는 눈의 어두움으로 인해 오히려 영안을 열리어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불행 속에서도 그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게 된 것을 감사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오 주님! 이런 고통을 통하여 내 영혼이 수그러짐은 나의 창조자를 섬기기 위함이니이다. 고난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인격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 독수리 새끼 훈련하는 것을 마음에 두십시오. 독수리가 새끼를 깔 때 둥지를 만드는데, 몸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려가면서도 암컷, 수컷 두 마리가 열심히 둥지를 튼다. 독수리의 둥지는 가시 둥지로 만드는데, 가시를 꺾어 그것들을 엮어서 둥지를 만든다. 말 그대로 가시 둥지이다. 토끼나 쥐새끼를 잡아 속을 긁어내고 가죽으로 둥지에 깐다. 그리고 새들을 잡아 새털을 벗겨서 그 둥지를 채우면 일류 호텔이 된다. 거기에서 새끼를 낳고 암수컷이 부지런히 먹이면 새끼가 무럭무럭 자란다. 어느 정도 자라면 새끼를 불러내어서 나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날개를 펴서 자꾸 올라타라고 한다. 먹이를 갖다 주지 않고 자꾸 올라타라고 하면 새끼들이 겁을 내어 안으로 기어들어 간다. 그러면 발톱으로 그 깔린 가죽을 확 벗겨버려 새끼를 가시 둥지에 밀어 넣는다. 그러니 새끼들은 몸부림을 친다. 어미가 날개를 펴니까 새끼들이 견디다 못해 그 위에 올라탄다. 새끼를 싣고서 공중에 올라 바위 있는 데를 가니까 아비가 짐승들을 잡아넣고 기다리고 있었다. 배불리 먹인 후 둥지에 내려놓으면 ‘아이고 찔리고 있는 것보다도 날개 위에 타고 다니는 것이 좋다.’ 하며 날개 위로 기어 올라간다. 그러면 새끼를 데리고 이번엔 바위 위에 준비된 밥상에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공중으로 올라가서 떨어뜨린다. 그러니 공중에서 안 죽으려고 확 날개를 친다. 그럼 저 밑에서 엄마 독수리가 또 날개를 펴서 받는다. 떨어지면 받아서 올리고 그렇게 훈련함으로 나중에는 자유롭게 날개를 치며 세상을 마음껏 날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독수리 새끼 기르는 것 같이 기른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그렇게 하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게 하신다. 짐승들도 자기 새끼들을 훈련을 시키고, 부모들도 자녀들을 훈련하는데,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얼마나 더 큰 훈련과 연단을 시키시겠는가?
■ 미국의 전 대통령 카터(Jimmy Carter)는 ‘헤비타트’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전 세계를 다니며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준다.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까? 그는 다섯 살 때쯤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아주 호되게 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호기심으로 교회에 가서 헌금하는 척하면서 헌금 주머니에서 돈을 훔쳤는데, 그 일을 아버지에게 들킨 것이다. 아버지는 그에게 절대로 도둑질을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때 아버지가 혼을 내며 교훈한 것을 평생 잊지 않고 정직하게 살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며 살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 흔드는 바람 / (강 영은 씀)
저만치 오는 봄을 빨리 부르고 싶은지 바람이 붑니다.
겨울은 군데군데 잔설로 남아 보채지만
봄은 바람과 함께 의연히 찾아와 겨울을 몰아냅니다.
언뜻 부드럽지만 세차게 휘몰아치는 3월의 찬바람을 맞으며
인생에 부는 바람을 생각해 봅니다.
식물학자의 말에 의하면, 겨울이 지난 후 부는 3월의 강한 바람은 나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추운 겨울을 겨우 견뎌낸 나무에 쌀쌀한 바람이 마구 불어 가느다란 나무가지들이 흔들리면 무척 애처러워 보이지만, 강한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것은 나무들에게 약이 된다. 초봄의 강한 바람에 가지와 나무가 흔들려야 새잎을 내는 데 필요한 영양이 위로 잘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흔드는 바람은 겨우내 활동 않은 나무줄기를 흔든다.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운동 작용은 뿌리로부터 가지와 새싹까지 영양이 원활하게 잘 올라가도록 돕는다. 그래서 바람을 많이 맞은 나무가 빨리 잘 자라게 된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다. 흔드는 바람 때문에 나무는 자기의 뿌리를 더 강하고 튼튼하게 고정하게 된다. 흔드는 바람이 괴롭지만, 나무는 바람 때문에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 우리 인생에도 거센 바람이 분다. 그러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우리도 흔들린다. 우리를 성숙시키시기 위해 주님께서 보내시는 바람에 때로 가지와 몸통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아픔을 겪는다. 가지 많은 나무가 더 많은 바람을 받듯이 가지 많은 나무가 더 많이 흔들리듯이 잔가지가 많이 뻗어있는 마음은 더 많이 흔들린다. 사소한 바람에도 휘청이는 가지 많은 나무처럼 마음속에 뻗어있는 수많은 가지 - 욕심과 욕망, 시기와 질투, 교만과 이기심 – 같은 것들이 더 많은 바람을 부르기 때문이다.
흔드는 바람은 우리의 속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마음속 깊이 가라앉은 것들을 올라오게 하려고 바람은 요리조리 잘도 흔든다. 그러면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처럼 정신없이 흔들리며 안 그런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는 모습에 안 그래야겠다고 했지만, 또 그러는 모습에 낙망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진짜 모습을 드러내 주는 세찬 바람은 우리에게 좋은 약이다. 추한 것들이 주님의 사랑 매질로 고쳐지는 것이기에…
흔드는 바람 때문에 우리는 성장한다. 흔드는 바람 때문에 뿌리가 더 단단하게 고정되고, 흔드는 바람 때문에 몸통이 더 단단해지고, 흔드는 바람 때문에 생명의 양분을 더 뽑아 올리게 되어 결국 가지 끝마다 환한 꽃 피워낸다.
삶을 흔드는 바람을 고마워하자. 바람이 멈추기를 바라지 말자. 바람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흔드는 바람에 날려 보낼 것이 많기 때문에, 흔드는 바람에 빨리 자라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하늘의 사랑 많이 받는다는 표가 되기에, 그만큼 하늘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증거가 되기에, 그리고 그만큼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증명이 되기에 … .
■ 오래전 <타임> 지에 ‘금(金)메달을 위한 혹독한 대가’(The Steep Price for Gold)라는 제목으로 한국 양궁팀의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메달 획득을 위해 운동선수들에게 지옥훈련을 시킨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훈련의 상세한 내용까지 실었다고 한다. 한국의 양궁이 대회마다 금메달을 싹쓸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국가대표들의 지옥훈련은 한밤중에 얼음같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 있기, 진흙탕 속에서 뒹굴기, 자동차 타이어를 메고 3km 행군하기, 200kg 넘는 통나무를 동료들과 함께 머리 위로 들어 올리기, 마지막에는 화장터에 가서 뼈를 주워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해서 담력을 기르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나간 사람들은 어떤 대회를 나가든지 금메달을 가지고 돌아온다. 놀고먹으면서 아무 메달도 따지 못하는 것보다 지옥훈련을 받고 금메달을 따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금메달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금메달을 따려면 금메달을 딸만한 실력과 훈련과정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