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시로 승화시킨 수행자
김수원 (시인)
김진환 시집 『어리연꽃 피어나다』
문학아카데미
『문학아카데미』에서 출간된 〔어리연꽃 피어나다〕는 김진환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인은 2022년 『문학아카데미』에서 시 부문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그 후 2023년 이른 봄에 첫 시집을 출간한 것이라서 첫 시집에 대해 많이 기대되고 가슴이 설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일찍이 다른 부문에서도 등단했었다. 대학생 시절인 1976년에 『원불교 신문』 공모전에서 동화부문으로 당선된 장래가 촉망되는 동화 작가였는데 이제 시의 세계로 입문하여 첫 시집을 낸 것이니 감회가 새로울 듯하다. 이 시집을 시작으로 시인의 문운이 창대하기를 기원해 본다.
시인은 일상적인 사건을, 제행무상을 바탕으로 바라보며 비범하게 엮는 점이 보였다. 마음공부 하는 기본 바탕은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수행자로 입문하는 첫 발자국이라 한다.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으로는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야 할 길다면 긴 삶을 생각할 것이다. 그 회한이 시의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의 시집 첫 장에 수록된 시에서 별리애고를 보았다.
저렇게 앞산이 출렁이는 새벽이면
깔풀나무 한 그루쯤 붙들어 앉히게 마련이다
숲 터럭을 나뒹구는
뜻 모를 바람 소리 수천 가닥쯤
함께 다독이며 볼 따름이다
흔들리는 숲길과 마주친 새벽이면
바삭대는 낙엽 한 웅큼 집어 들고
반걸음쯤 뒤따라온 마음 한 자락
조심스레 닦아내게 마련이다
여기저기 떠도는 당신의 분신
자꾸 발아래 밟히는 나직한 숨소리
돌아오지 못할 길을 돌아올 듯 가버린 사람
아직 거기 서서 쭈뼛대고만 있을 것인가
이 볼 시린 숲길에 다시 오면
숲 안개 흔들리는 떡갈나무 앞에 서면
묵언처럼 가두어 두었던 그리운 얼굴
주섬주섬 꺼내 보게 마련이다.
―「떡갈나무 아래에 서면」 전문
이 시는 소중했던 친구를 갑자기 잃고 인생무상을 절감하는 듯해서 읽을수록 가슴이 저렸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시인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그 사람이 자리 잡고 있어 더욱 슬펐다. 떡갈나무 아래에 묻은 그리운 이의 흔적을 꺼내 보며 반걸음쯤 뒤따라온 마음 한 자락을 조심스레 꺼내 보는 시인이다. 우리도 부모나 부인 형제, 자매 자식, 친구를 잃어본 경험에서 볼 때 시인의 마음이 전이되어 동질감이 느껴지는 시다. 시에는 묘사도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위로가 되는 시도 좋은 시라고 생각된다.
시집 첫 장 시인의 말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길치가 되어간다고, 엊그제 갔던 곳도 쉽게 기억해 내지 못한다고, 무심코 지나쳤다 되돌아섰던 기억들 때문에 발걸음을 선뜻 옮기기 두렵다고 했다. 거리를 기웃거리고, 사람치 마냥 얼굴을 갸웃대다가 멋쩍어 배시시 웃는 일. 시를 쓰는 일이 끊임없이 기웃거리다가 머리를 쥐어박으며 배시시 웃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수없이 확인하며 반조해 나가는 수행의 과정이다. 그는 시를 쓰며 많은 날을 자기 점검을 하고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 챙김을 하는 수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 여러 군데에서 시인의 그리움과 번민이 수행으로 이어지는 마음공부의 글이 보였다.
어리연 하얀 꽃이 성큼 피어올랐다
어스름을 틈타 내려앉은 별처럼 깨끗하다
일찍 잠을 깬 물방개 한 마리
연잎을 깨물고 있다
연잎은 물의 파장에 간지러워 흔들리다
술렁이던 바람을 붙잡는다
연지에서 고요하게 중심을 잡는 일
그 중심을 붙들고 꽃을 피워내는 일
먹장구름이 묵직해져
어리연 하얀 꽃을 하나둘 흔들고
꼿꼿이 피어오른 어리연꽃은
물 아래 중심에서
발뒤꿈치를 바짝 치켜들고 서 있다.
―「어리연꽃 피어나다」 전문
어리연의 “어리”는 “어리다”의 의미로 작다라는 뜻이다. 흰색 어리연은 500원짜리 동전보다 작았다. 꽃 테두리에 촘촘히 난 털이 이 꽃의 매력이다. 꽃말은 ‘수면 위에 요정’ 청순, 순결, 아름다움, 깨달음이라고 한다. 연꽃 중에서 제일 작고 예쁜 꽃이다.
첫째 연꽃을 말할 때처럼 상정이라 한다. 더러운 물과 진흙에서 예쁘고 순결하게 핌으로 불교에서는 속세에서 열심히 불공을 닦아 극락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상징한다.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흙탕물에서 살지만, 그 더러움을 조금도 자신의 꽃이나 잎에 묻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불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 속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다운 신행의 꽃을 피우는 것과 같아서 이르는 말이다.
둘째, 화과동시 라고도 한다. 연꽃은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것을 연밥이라 하는데, 즉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이며 열매의 원인인 것이다. 이 꽃과 열매의 관계를 인(因) 과(果)의 관계라 할 수 있으며 인과(因果)의 도리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라는 인과의 도리는 세상사는 인과를 벗어난 일이 없기에 연꽃이 우리에게 이르는 말 같다.
셋째, 연꽃 봉오리는 불교 신도가 합장하고 서 있는 모습 같다.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경건히 서 있는 불자의 모습은 마치 한 송이 연꽃이 막 피어오르는 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연꽃은 불교의 상징적인 꽃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연지에서 고요하게 중심을 잡는 일/ 그 중심을 붙들고 꽃을 피워내는 일.
연지에서 고요하게 중심을 잡는 일이란
우리는 세속에서 오욕칠정에 얽혀 복잡하게 산다. 복잡할수록 무상을 깨달아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 망상을 알아차려야 한다. 고요하게 가부좌 틀고 앉아 참선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일, 즉 깨우치는 일이 중요하다. 속세에서 살아내는 일도 어렵다지만, 불교에서는 깨우침이 없는 삶은 허망하다고 한다. 깨달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삶은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라 허망하고 무상하다고 했다.
연꽃처럼 구정물 속에서도 예쁘게 살아내려는 꼿꼿한 모습, 중심을 잘 잡고 살아내려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작고 가냘픈 어리연꽃의 모습은 중생의 모습과 같다고 시인은 말한다.
어리연꽃을 모르는 사람들은 가장 오래 피는 꽃으로 느끼는 꽃이다. 같은 자리에서 계속해서 피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어리연꽃은 아침에 피고 저녁이면 지는 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꽃이 계속 피어난다. 같은 자리에서 다르지 않은 꽃을 매일 아침 만나기에 결코 둘이 아닌 꽃, 불이(不二)라고 느꼈다. 불이라는 뜻은 “둘이 아니다”. 둘로 구별해서 인식하는 대별 사항이 실제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이다.
연꽃과 구정물이 둘이 아니듯, 있음과 없음, 나와 타인, 선과 악 등 인간사는 수없이 많은 쌍 개념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분별심이다. 사물을 나의 편견 없이 그대로 볼 수 있는, 둘이 아닌 법문의 경지가 깨달음의 상태다.
김진환의 시집엔 꽃을 주제로 한 시가 유난히 많았다. 나이가 들수록 꽃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무엇일까? 젊을 땐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바쁘게 살았다. 늙고 시들어지니 활짝 핀 꽃을 보면 자신의 젊은 날이 보이고 자신의 모습을 꽃을 통해 보는 투영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한 편의 시는 시인의 맑은 영혼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현생現生의 불길
켜켜이 불타고 있는 분별망상分別妄想
그 화염을 보면서도 장작을 집어 드는구나
돈오頓悟는 아니더라도 눈썰미라도 좋아라
연기 저리도 희고 푸르게 날아
번뇌라도 차츰차츰 내던져지면
성성적적惺惺寂寂
저절로 제 몸을 불사른 부처가 되었구나.
―「설봉산 가마」 부븐
오름가마는 한국식 장작가마의 초기 방식의 가마다. 가마에 장작을 가지런히 쌓으며 불을 지른다. 불타는 장작을 보며 오탁악세에서 번뇌에 물든 자신을 바라보며 부처가 되려고 생각했다. 돈오는 도를 일순간에 깨닫는 것이고 성성적적은 깨어있되 번뇌 망상이 없는 상태다.
시인은 장작을 가마에 켜켜이 놓으며 생각한다.
반가부좌로 터를 잡고/ 중도를 찾는다/ 현생의 불길/ 켜켜이 불타고 있는 분별망상/ 돈오는 아니더라도/ 눈썰미라도 좋아라/연기 저리도 희고 푸르게 날아/ 번뇌라도 차츰차츰 내던져지면/ 성성적적/ 제 몸을 불사른 부처가 되었구나/
시인은 장작불 앞에서 장작의 불타오르는 모습에서 속세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비춰보며 제행이 무상하다고 생각한다. 수행하는 시인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지며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시를 통해 도심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시인은 인연의 상실감에서 오는 허무함과 그리움을 시에 녹였다.
시를 통해 자신의 본 모습을 바라보는 도를 닦는 수행자라고 생각되었다. 앞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기대해 본다. 문운이 항상 깃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