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 사고를 당한지 딱 석 달. 2024년1월12일 모락산 산행 중 다리 골절로 삼 주간 입원하여 수술과 치료를 하고 2월2일 퇴원하여 집에서 재활을 하면서 처음에는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서 점검하고 상처에 약을 바르는 치료를 하다가 그 다음은 네 주 만에 가서 점검을 하는 동안 사고가 난지 꼭 석 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병원에 가는 것이 힘들어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마침 병원에서 도우미가 필요하면 신청을 하라는 안내 문자를 받고 펜케어라는 봉사 단체에 전화를 하여 신청을 하니 봉사료 한 시간에 5,000원, 세 시간 예정하고 15,000원을 이체하여 신청을 하였더니 정확한 시간에 맞춰 남자청년과 중년 여자와 두 사람이 와서 휠체어를 밀고 부축하여 어렵게 병원을 가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세 번이나 도움을 받으며 다니다 보니 이제는 도움이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입원을 한 후부터 휠체어를 타기 시작하여 퇴원하고서도 마침 안양시에서 대여해 주는 휠체어를 빌려서 두 달 하고도 이틀을 더 타고 4월4일 아들이 출국하기 전날 휠체어를 반납하고 목발을 짚는데 이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겨드랑이로 눌러야 하고 양손으로 꼭 잡고 걷는데 팔도, 겨드랑이도, 다리도 힘이 들어서 집에서만 잠시잠시 다니는데도 쉽지가 않은데 집안 사정으로 나 때문에 최대한 날짜를 늦춰서 아들 차를 타고 대구에 갔다 오는데 너무 힘든 경험을 하였다. 대구로 가는 길에 제천의 청풍호 리조트에서 하루를 묵으며 청풍호 한 가운데 우뚝 솟은 541m의 비봉산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여자 직원이 휠체어를 타고 가라며 밀고 오는 게 아닌가. 얼마나 고맙던지.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생각을 하면서 아들이 밀고 비봉산 전망대 까페에서 빵과 차를 한 잔 마시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편하게 구경을 하였다. 하지만 대구에 갔다 오는 동안 휴게소에서 식당을 가거나 화장실 갈 때도 목발을 짚고 가야하고 호텔에서도 마찬가지니 동작도 느리지만 나로서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렇게 목발을 짚고 며칠을 지나다가 다리도 조금 좋아져서 지팡이를 구입해서 짚는데 그것도 발을 맞춰야 하고 한쪽으로 몸이 쏠리니 조금 걷고 나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뻐근하여 금방 쉬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직 발과 다리의 부기도 남아 있고 발목과 무릎이 부자유스러워 계속 아이스 팩으로 찜질을 하다 보니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통증이 거의 사라지고 다리에 힘을 주어도 아프지 않으니 집안에서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도 하고 잠시 그냥 혼자 걷는 연습을 하며 그런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24년4월10일 국회의원 선거를 하려고 첫 외출을 하였다. 비록 지팡이를 짚었지만 나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오는 첫날이라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집 근처 대안여자 중학교로 가는데 3~4백 미터 되는 거리를 중간에 두 번씩이나 의자에 앉아서 쉬어야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벚꽃이 아직 남아있는데다가 나무의 새 순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것을 보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상쾌하고 가슴이 탁 터지는 느낌이 들어서 몸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고 생각하며 기꺼이 선거를 하고 왔다. 그러고 보니 한 겨울에 사고를 당하고 천지에 봄꽃이 만발하는데도 산행을 못하니 그 아름답고 예쁜 봄의 전령사라고 하는 산수유나 생강나무 꽃과 진달래에 화사한 산 벚꽃을 보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많이 아쉽기만 하다. 앞으로 아름다운 봄꽃을 몇 번 더 보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인데 말이다. 11일은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는 치과를 갔다 오는데 역시 힘들었지만 혼자 두 번째 외출을 한 셈이다. 오랫동안 많이 누워있었고 다리는 기브스를 하고 있으며 걷기를 안 해서 그런지 앉았다가 일어서면 허리도 뻐근하고 다치지 않은 다리도 힘이 없는 것 같아서 부러진 곳이 낫게 되더라도 완전하게 회복이 안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불편한 상태가 지속될는지 알 수 없지만 바라기는 우선 부기가 완전히 빠지고 무릎과 발목이 자유롭게 접히면서 움직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늘 기도하며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요, 내가 저지른 거니까 내가 불편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 때문에 안식구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안식구도 칠십대 중반의 할머니인데 삼시 세끼 밥상 차리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우선 옷을 입고 벗을 때도 옆에서 거들어 줘야 하고 자다가 화장실에 갈 수가 없으니 소변 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매일 같이 비우고 시간에 맞춰 갔다 놔야 하며 침대 머리에 물수건도 걸어야 하고 평소에는 둘이서 하던 집안 청소를 혼자 해야 하니 보기에도 미안하지만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보통 때는 내가 하던 쓰레기 버리기와 동네 마트에 가는 것도 안식구가 도맡아 해야 하고 식사 시간에는 나는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는데 식사 후에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주는 것도, 약을 챙기는 것도 모두 안식구에게 신세를 져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양치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싱크대 앞에서 하는데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샤워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발을 전혀 딛지를 못하니 욕실까지 가는 것 자체가 힘들고 한 발로 디디며 한쪽 손으로 문의 손잡이나 문설주를 잡고 겨우 욕실에 가서 의자를 놓고 힘들게 앉아 있으면 안식구가 샤워기로 온 몸에 물을 뿌리고 세제를 바른 다음 다시 샤워기로 씻어줘야 하니 추운 날씨에 나는 처음에는 추워서 힘들지만 안식구는 안 그래도 힘든데다 더워서 더 힘들어 하곤 하였다. 다친 다리는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아서 다리와 발을 씻지를 못했더니 피부도 안 좋아지고 특히 발바닥에 딱지가 생겨서 껍질이 벗겨지는 현상까지 생겨서 안식구가 물에 불린 다음 손으로 몇 번을 밀어서 각질 제거를 하고 다 씻은 후에는 스킨을 발라주는 것까지 하는 안식구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여 이제 됐으니 그만 하라고 해도 듬뿍 발라야 한다며 세세하게 골고루 손질을 해주는 정성과 수고, 역시 부부는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모아야 하며 어려움을 나눠야 하는 관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필요할 때는 일일이 옆에서 손발이 되어야 하니 나를 두고 혼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외출은 물론 교회도 한 동안 못가고 집에서 온라인 예배로 대신하곤 하였다.
몇 년 전에 서울대 분당병원에서 전립선 수술을 하였을 때도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4일간 간호를 해주었는데 그 때도 한 밤중에 자다가도 소변기가 차면 비워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곤히 자는 사람을 깨워서 소변 통을 비우며 옆에서 나를 수발하느라 고생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 때보다 훨씬 기간이 길고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보니 안식구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성경 말씀 위에 손을 얹고 서약을 하여 배필을 정한 후 힘든 세월도 있었고 때로는 의견충돌로 날을 세우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였지만 지금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검은 머리 하얗게 되도록 무사하게 살게 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안식구에게 그동안 48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함께 해주고 어려울 때는 옆에서 손발이 되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다시 한 번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 개방적이고 자유주의 문화가 판을 치며 개인주의가 강하다 보니 양보나 배려보다 우선 자기주장이 먼저고 내 이익이 앞서는 시대에 심지어는 형제자매나 부모 자식 간에도 이해관계로 의절하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부부간에도 사소한 문제로 각자의 길로 갈라서는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함께 하며 내조를 잘 한 아내를 가리키는 조광지처(糟糠之妻)라는 옛말이 무색해지는 지금이다.
사고가 난 지 벌써 석 달이 되었지만 아직은 많이 불편하고 걸음도 시원찮아서 외출도 제대로 못하니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흔히들 오 개월은 돼야 하니 느긋하게 생각하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쨋거나 서둔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세월이 가면 저절로 해결 되리라 믿으며 기다릴 수밖에 별 도리는 없는 것 같다.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리라.
어떠한 표현으로도 모자라겠지만 안식구에게 꼭 하고 싶은 한 마디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