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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조화로운 삶, 그리고 사랑]한국시: <사랑아, 길을 묻는다> 외 /서지월(2)
한국시: <사랑아, 길을 묻는다> 외 /서지월(2)
*서지월(1955~): 대구 달성 가창 출생.
대륜고등학교, 대구대학교 졸업.
1985년, 『심상』 신인상에 시<겨울 신호등(信號燈)>외 3편 당선.
1986년, 6월, 『아동문예』신인문학상 동시 <바람에 귀대이면> 외 4편 당선.
1986년, 8월, 『한국문학』 신인작품상에 시 <조선(朝鮮)의 눈발> 당선.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2002년, 중국 「장백산문학상(長白山文學賞)」수상.
20년 가까이 중국조선족 동포 문화예술 교류 발전에 이바지.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2000년대 시인회의」 상임고문. <낭만 시> 동인.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 나남출판사), 『江물과 빨랫줄』(1989, 문학사상사),
『가난한 꽃』(1993, 도서출판 전망),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1994, 시와 시학사),
『백도라지꽃의 노래』(2002, 중국「장백산」문예잡지사),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2003, 천년의 시작).
(참조: <비슬산 참꽃> 외https://m.blog.blog-korea.com/himoon25/222716921387 )
*
사랑아, 길을 묻는다 /서지월
산길에서 쉬고 있을 때
풀대궁에 의지해 두 마리의 곤충이
두 몸 맞대며 사랑을
나누고 있는 광경
한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사랑 한번 제대로 못해 본 내가
아무도 찾지 않는 산길에서
더 이상 거슬러 오르지 못하고
내려오고 싶은 마음일 때
풀숲 뒤적이는 바람과
바삐 흘러가는 개울물소리
그들이 하나 되지 못할 때
이렇게 세상이 나를 등질 때
:
<사랑아, 길을 묻는다>고 한다.
때 때 때 라는 것이다.
먼저 보고, 마음이 들고,
하나 되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이렇게 세상이 나를 등진다는 마음이 들고…
때 때 때 길을 묻는다는 <사랑>은 든 마음인가?
자기 안에 든 <사랑>은 길을 아는가?
*
여름비 /서지월
잠 오지 않는 밤 내게
비가 또닥또닥 내리고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네
그 여인(女人)을
남들도 이쁘다고 하는데
멍든 풀잎세월 함께 해 온건 아니지만
호젓한 산길 가다가
이름없는 풀대궁에
산나비 한 마리 찾아와 앉듯
그렇게 만나는게 인생이듯
아아,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사막같은 내 마음에
이제, 비가
또닥또닥 내리고 있어요
:
<비가 또닥또닥 내리고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는가?
*
사모 /서지월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몸부림 쳐도
그대 없는 밤 별은 돋아나고
그립다 그립다 그립다 말해도
꽃은 피어납니다.
그대가 내 손 잡을 때
우주는 하나인 듯 든든하지만
멀리 있는 그대,
하늘의 별인가요 꽃인가요?
사랑하면서도 연신 부는 바람 속
그대의 얼굴
지울 길 없어라.
:
<사모>,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별이 돋듯, 꽃이 피듯…
*
사랑 별곡(別曲) /서지월
사랑은 물 마시고
천천히 걸어서 오는 것
걸어서 오다가 다리가 아프면
버스 타고 오는 것
버스 타고 오다가 빵구나면
택시 타고 오는 것
택시 타고 오다가 박치기 하면
비행기 타고 오는 것
비행기 타고 오다가 미사일 맞으면
영원히 못 오는 것
:
현 세상과 마음의 세상은 함께 한다.
*
장미꽃 한 다발 /서지월
그대가 건네준
장미꽃 한 다발
가만히 세어보니 열 송이
송이마다 향기 품었네
지금은 어둠을 배경으로 하여
홀로 주무시고 계시겠지만
뿜어대는 장미의 향기
나는 잠이 안 와ㅡ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얼굴, 눈동자, 눈썹, 귀, 코, 입.....
가늘은 손목 죄어주던
그대 손목시계의 초침소리
인생이란 그런 거야
꽃다발을 선사 하고 선사 받고
훌쩍 떠나버려 공허하고 더욱 외로운
그런 거라고 누가 일러주겠지
그대가 내게 건네준
빨간 장미꽃 한 다발
세어 보니 열 송이
다 똑같이 그대 닮았네.
:
<빨간 장미꽃 한 다발>
따로 자라서 꽃피우고 누군가에 의해 묶여져서
<그대가 네게 건네준> 열 송이,
<다 똑같이 그대 닮았네>라고 한다.
*
목마른 밤 /서지월
이밤이 만약
그대와 천리(千里) 안에 든 시간이라면
나는 해바라기 씨를 까먹고
이밤이 만약
그대와 천리(千里) 밖에 놓여있는
놋요강이라면
호박씨를 심겠어요.
밤마다 문지르는 마른 풀들의 몸살과
고장난 시간의 침묵이
빛나보이는 숲에서
빈 컵이 희망하는 물과 장미꽃이
목마른 밤,
만약 그대와 나 사이가 바람부는 절간이라면
구름 쓸린 그 자리
땀나는 비(碑)를 세우고
진정 그대와 나 사이가 비 뿌리는 처마밑이라면
몇날을 서서 기다려도 좋으리.
:
일명 <땀나는 비(碑)>는 <표충비>(경남 유형문화재 제15호)다.
밀양 무안 홍제사라는 절에 임진란때 활약한 사명당(유정 임응규, 1544~1610)의충의를 새긴 비석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관을 무찌르고 전란 후 강화사와 탐적사로 일본에 건너가 외교력을 발휘하여 양국 간의 평화를 이룬 공적을 새겼다.
나라를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으로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
비석에서 땀이 난다는 속설이 있다.
영조 18년(1742)에 대사의 5대 법손 남붕(南鵬)이 건립한 것이다.
이 비는 높이가 380cm, 비신이 275cm, 넓이 98cm, 두께 56cm다.
비신(碑身)과 화강암의 비개(碑蓋)를 갖추었고, 경주석재인 빗돌은 까만 대리석이며 좌대석(座臺石)과 이수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1910년 국권 피탈, 1945년 해방, 1950년 6.25전쟁, 1961년 군사정변 등 30여 차례에 걸쳐 국가적 사건이 발생 시 땀을 흘리는 현상이관찰되었다 한다.
때로는 비석의 4면에서 이슬처럼 몇 시간씩 흐르다 그치는데 신비하게도 글자의 획안, 머릿돌, 조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없다고 한다.
*
나뭇잎은 떨어져 어디로 가는가 /서지월
나뭇잎은 떨어져 어디로 가는가,
내 배고픈 사랑이여
무시로 푸르던 잎들이
죄다 쓸리어가는 이 마른 길 위에
당신은 어디 있고
정작 흰눈 쓰고 가야 할 당신은
어디에 있고
시린 입술 위에 찬바람 몰아칠 때
정작 사랑은 빈 콩깍지 소리를 내고
다시 만나자는 기약없이
두 손 부여잡아도
한숨만 쌓이는
이 형편없는 인간의 마을
나뭇잎은 떨어져 어디로 가는가
내 골병든 사랑과 함께.
:
<하얀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모습~~>이라는 노랫말이 있다.
-눈이 내리네
https://youtu.be/Gk8mEJKqdRE (2:54, 김추자)
https://youtu.be/WCSwnoPYKpE (2:43, 김추자)
https://youtu.be/f23oK96dybo (4:22, 이숙)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
https://youtu.be/k3Qaeo63tws (5:59, 살바토레 아다모)
https://youtu.be/xye66MixD7Y (36:56, 아다모 등 10선)
*
왜 수레바퀴는 굴러가서는 돌아오지 않는가 /서지월
왜 수레바퀴는 굴러가서는 돌아오지 않는가
한참을 생각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두 송이의 꽃과 두 개의 찻잔을 마주하고
내다보는 창밖 눈은 내리고
기별없이 눈 내리는 소리
지금 어디메쯤 언 땅을 딛고
내 마음 천년 수레바퀴는 포로의 강을 지나
어느 잡목숲을 굴러가고 있는가
비운 찻잔을 놓고
마주앉은 사람의 눈을 들여다 본다
바람이 분다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라지만 난로가 없고
저 유리문이 없다면
들짐승과 다름없다는 생각에
왜 굴러간 수레바퀴는 시간의 기름을 치고
돌아오지 않는지
옷깃을 세우고 우리가 일어날 즈음
눈은 멎고 깜깜한 하늘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두 힘의 수레바퀴는 지금
한짐 가득 눈뭉치를 싣고 더욱
미끄럽게 미끄럽게 이 세상 끝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도 그처럼 가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듯
미끄러운 유리문을 밀고 나왔다.
:
앞 시, <나뭇잎은 떨어져 어디로 가는가>처럼,
<왜 수레바퀴는 굴러가서는 돌아오지 않는가>
세월의 수레바퀴를 말하는 것 같다.
*
당신에게로 가는 길 /서지월
별들이 차거운 밤이면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눈덮인 언덕을 지나서
희디흰 달빛을 구부려서
당신에게로 가는 길은 멀고도 아스라하지만
오늘밤 내 마음속에 뻗쳐오르는
한 송이 불꽃,
불꽃을 찾아서 당신에게로 가는 길은
먼먼 고구려적 사내가 꽁꽁 언
겨울강을 건너서 말을 달리고
천변(川邊)의 잔돌들이 이마 맞대고 살 부비는 밤
어디서 호(胡)개가 나타나 정강이뼈
물어뜯을 것 같지만
자작나무 숲속엔 어린 눈꽃송이들이
칭얼칭얼 깨어서 우는 아이와 같이
툭툭 매맞는 소리 들리지만
당신에게로 가는 따뜻한 시간의 역사는
천년 하늘에 수놓인 밤별처럼 아름답습니다.
:
세월의 수레바퀴를 굴려서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것 같다.
*
꽃피는 나의 애인(愛人)을 위하여 /서지월
능금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돌아서 오는 시간까지
그대 손톱에 밀리는 파도소리에
뻐꾸기가 섬을 만드는 시간까지
모두 합해서
조그만 오두막집을 지으리.
바람이 길을 여는
골목 그 어디쯤
천년 묵은 돌거북 한 마리
댓돌처럼 앉혀놓고
능금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돌아서
조약돌 세며 오는
그대를 맞아
올해에도 꽃이 많이 피게
나는 빌고 또 빌었다.
:
능금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돌아서 오는
그대를 맞는 생각을 한다.
*
비 오는 날 /서지월
푸른 하늘을 이고
과일향기 날리며
오던 사람도 뚝 멈추고
연일 비가 옵니다.
새 무명옷 갈아입고
돌담에 기대어 서면,
동백기름 냄새로
머리 빗어 넘기시고
한 걸음 한 걸음
깨끔발로 오던 그 사람.
지금 어디쯤 비듣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출렁이는 머릿단 쉬어놓고
빈 바구니의 하늘 가장자리를
젖어드는 헝겊의 풀밭처럼
바라보고 있을까?
:
누구를 가다리는데
연일 비가 온다고 한다.
*
우리가 정작으로 사랑하려면 /서지월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침이슬과 같다
발가벗은 채 영롱히 빛나더니만
어디론가 흔적없이 사라져 옷가지 하나 남김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물머금은 조약돌처럼이야
매양 지낼 순 없다 해도 찬란히 틔어보이는 햇빛이나 꽃처럼 살 수 없을까
날 흐리고 비 퍼부면 자취없이 숨어버리는
새들이나 그리운 이의 옷자락처럼
살아 무엇한단 말인가
우리가 정작으로 사랑하려면
개울바닥에서도 옷 다 벗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오래 바라볼 일이다
: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침이슬과 같다>
<햇빛이나 꽃처럼 살 수 없을까>
<우리가 정작으로 사랑하려면>…
*
그대와 함께 걷는 밤 /서지월
그대와 함께 걷는 밤은
참으로 밝고 아름다워라
모든 눈물은 잠들고
모든 죽은 자는 슬프고
그대와 함께 걷는 밤은
나뭇잎 정답게 떨어져 내려
발걸음 앞에 머문 사랑
별들은 빛나고
어디에서 밤은 우리들 커텐을
드리우는가
그대와 함께 무작정 걷는 밤은
참으로 밝고 아름다워라
한때는 멀리 떨어져
이름도 모르고 지내다가
한 마리 꽃사슴 꽃사슴같이
내 곁에 와 걷는 밤
:
<그대와 함께 걷는 밤>이고 싶다 한다.
*
능금꽃 사랑 /서지월
님이 웃으면 능금꽃 나무에
능금꽃 벙글어
하, 좋다는 하루가 그냥 지나가고
님이 화내면 뾰죽이 내민
입술모양의 능금꽃 땅에 떨어져
그날은 흰구름만 잘도 떠 가요
님은 나를 따르고
나는 님을 끌어
울타리 넘어 능금꽃 그늘에 오면
님은 말없이 얼굴 내밀고
내 입술 포개어 꼼짝 않고 있으면
바람에 떨리는 능금꽃 모양으로
님의 입술 파르르 떨려요
:
<능금꽃 사랑>을 꿈꾼다.
*
내 사랑 /서지월
길을 가다가도 문득
하늘을 보다가도 문득
지금은 안 보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이 하늘 아래 꽃잎 접고
우두커니 서 있는 꽃나무처럼
내 생각의 나뭇가지는 서(西)로 뻗어 해지는 산
능선쯤에 와 있지만
밥을 먹다가도 문득
다른 길로 가다가도 문득
안 보면 그뿐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
<문득>이란
머릿속에서 생각이나 느낌 따위가
갑자기 떠오르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이 <문득>으로 산다.
*
고귀한 사랑 /서지월
내 아직 그대를 생각하고 있는 등뒤에는 우리들 못다한 사랑 눈물의 손수건이 널려있는 그 하늘에 그대와 짙은 쑥향 맡으며 지나온 길이 보이기 때문, 그대가 와서 이런저런 사유로 돌아설라치면 그 쓸쓸한 남은 사랑의 후회가 얼마나 막심하리요
한평생 살다 간다 해도 짧은 생애 그대가 먼 숲을 보지 않고 발 아래 깔려있는 안개만 보고서 걷는다면 이 또한 슬픈 일이라, 나 그대를 아직 생각하고 있음은 그대가진실로 사랑을 알고 정신적 풍요 누리며 어두운 한 세기의 등불 켜 두고 가는 게 아닐까.
늘 말하듯이, 혼탁한 세상이더라도 깨어있는 꽃이 아름답듯 그렇게 마주하고 산다면 생활의 주위에 널려있는 모든 것들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일 일인 것이다.
:
<그대가 진실로 사랑을 알고 정신적 풍요 누리며 어두운 한 세기의 등불 켜 두고 가는> 것을 바란다.
*
헤매이는 시간 /서지월
오늘도 당신을 찾아 헤맸습니다. 길고 긴 하룻날 밤이 올 때까지, 그만큼 당신은 먼발치에서 나를 불렀습니다. 저녁숲이 일제히 무너져 내릴 때 난 알았습니다. 당신이아직 걸어서 올 때가 이르다는 것을 알면서 왜 이리 마음이 뒤척일까요.
당신을 찾아 헤매던 길에 새옷 한 벌 사서 입었습니다. 물론 당신은 모르실거고 나만의 시간이었습니다. 내 옷의 색상처럼 세상은 수많은 빛깔과 유형으로 새롭게 다가서는 것이지만 당신을 찾아 헤매는 시간은 그대로였습니다.
눈 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그립고 아름다운 시간은 당신의 시간인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 당신이 만드는 나의 시간이니까요
시를 써서 유리창에 붙이고 흘러가는 물살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우리가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오면 다시 무너지는 당신과 나의 육신 보잘 것 없는 육신임엔 틀림없나 봅니다.
:
산다는 것은 당신을 찾아 <헤매이는 시간>이라고 한다.
*
슬픈 밤이 오거든 /서지월
슬픈 밤이 오거든
그대여
창을 열고 별을 보라
나는 거기 지상의 괴로운 꽃으로
피었다가 하늘의 별 되어
울고 있으리니,
그대가 만약 창을 닫고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는 명상에
잠기신다면
나는 나는 별 사닥다리 타고 내려와
그대 창가 부서지는 이슬 되리니,
밤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가슴과 같은 것
실로 우리가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지지 못할 때
그대는 지상에서
나는 하늘에서 하염없는
눈물 흘리리.
: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
연인 /서지월
내 연인은 잠들고
한 시간쯤 전에,
나는 앉아서 소쩍새 울음소리를 듣는다
내 연인은 멀리 있는데
나는 저 새가
내 연인이 잠들고 나서 찾아온
밤손님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연을 넣어 보낼 때 우체부가 배달하듯
잠든 내 연인이 대신 보내온
사연의 소리가 저토록
내 밤의 골짜기를 샅샅이 뒤지는 것이다
내 연인은 세상 등지고 잠들고
나는 아직 세상과 마주하고 앉아 있는데
잠든 내 연인의 창은 어둠으로 가득한데
내 방의 불빛은 환하게 창밖을 내다본다
:
깊은 밤, <연인>을 생각하면서
<나는 앉아서 소쩍새 울음소리를 듣는다>
*
지금 그 사람은 /서지월
나뭇잎은 떨어져 쌓이고
내 사랑은 오지를 않네
오늘 못 오면 내일이면 오시련가
나뭇잎은 떨어져 쌓이고
바람도 못 견디겠다는 듯
불어 눈물나네
*
지금은 가야 할 때 /서지월
그대 더디 오시거나
안 오시거나 간에
꽃 필 때 바람 꽃 질 때 바람
향기 다르고
나뭇잎 흔들릴 때 바람
땅에 떨어져 굴러갈 때 바람
그 기분 영 틀리듯
유리창 밖 하늘이 부옇게 칠해진
낮은 시선일 때
그대 더디 오시거나
영 안 오시거나 간에
*
물 /서지월
그대 눈물
그 빛깔의 반짝임
햇빛의
프리즘을 통하여
나올 때,
온갖 꽃들도
찬란한 눈물을 하고
내 가슴에
안기어 드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
나비와 엉겅퀴 /서지월
땅속 흐르는 물 움켜쥐고
한 세상 펼쳐 보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왔지만
이내 그는 떠나버린 뒤였지
어느 꽃들보다 고운 자태 뽐내며
제일로 여기는 사랑이었지만
달려가서 붙잡을 수 없는 신세,
그는 다른 꽃의 情夫가 되어버린 그 뒤였지
몇 날이 지나가고 다시 새날이 와도
어쩌면 한 목숨 다 바쳐 사랑하려 했지만
홀로 갈 머나먼 길
씨방 하나 간직하며 묵묵부답일 뿐이었지
*
어떤 사랑노래 /서지월
뻐꾸기가 드디어 울기 시작하여서
내 애인의 속눈썹 바람 불기 시작하여서
무화과나무 꽃피기 시작하여서
천오백년쯤의 바다가 길을
열기 시작하여서
바퀴달린 마차 다시 굴러가기 시작하여서
비로소 나는, 안 보아도 괴롭지 않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네
*
길 밖의 사랑 /서지월
당신이 나를 길 밖에 세워두고 말없이 숨어버리면
꽃은 피어나겠지요. 그 꽃은 당신이 숨어버린
그때 그 시간에 피어나 고개 갸우뚱하다가
해지면 해지는 쪽의 바람에 머리칼 헹구고
아무도 그 길을 찾아오지 않는 밤
몰래 밤이슬 따먹고서 다른 이름의
집을 짓기 시작할 즈음
전화를 걸어와 벨을 울리겠지요
당신이 하염없이 벨을 울릴 때는
꽃은 지고 없고
간간이 빠져나갔던 썰물들이
내 무릎까지 차올라 흥건하겠지만
그 길 밖에는 소나기가 또 밤새도록 내려서
잠든 집들의 문간에서 서성이겠지요
*
길 /서지월
저녁이면 붉게타는 숲속에
그대의 호수만 비칩니다
멀리 있어,
나랑 함께 걸어보지 못하는 길 위에
풀들은 일어서고
풀들은 깨어나 길을 갑니다
밤이 오면 숯덩이같은 어둠 속에
그대의 눈빛은 살아 빛납니다
내 아직 가보지 않아 맑은 호수
그대가 부려놓은 시간이 넘쳐나고
그 길 안 보일 때까지
길은 굽어 있습니다.
*
강물과 손 /서지월
내 손이 강물과 만나
더욱 부드러워지고
강물이 내 손 잡아주어
따스한 피 도는 것을
하늘은 알고 있었을까
*
남남 /서지월
그대가 만약 등 돌리신다면
나는나는 찢어진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모란그늘에 시드는
적적한 시간
커피를 마시겠어요
마음이 배고프면 머언 산(山)도
포개어져 보이는 법,
욕심없이 일정한 거리에서
그대와 나를 사수하는
저 나무의 새소리
그대로 있게 하는 하늘이여
그대가 만약 등돌리신다면
밤은 일찍 찾아들어
서로 다른 집의 목소리
방향이 각각 다른 바람 맞으며
사막에서 혹은 숲 속에서
서로 다른 별을 올려다 보겠지요
*
사랑은 강을 건너고 /서지월
사랑은 강을 건너고
그대 실어간 나룻배는 오지 않는다
바람은 불건만
머리칼 젖게 하지 못하고 홑옷
벗겨내기 못한다
때론 우리가 강을 거슬러 만난 햇살과
포옹하고, 강모래밭에 자유의
발자국 찍으며 세상 끝까지 걸어갔었지
밀려드는 물거품 속에 얼굴을 묻고
함박꽃같은 추억을 자아내었지
보라,
강은 흘러 오천년
너와 나의 손수건에 묻은 노을을
누가 닦아주며 누가 쓸쓸한
우리 어깨 감싸안아 줄 것인가
모자를 벗고 강둑에 앉았을 때
저만큼 부서진 역사의 철교와
그 밑을 흐르는 침묵의 강물
사랑은 이렇게 침묵으로 밥도 안 먹고
누워 흐르는 것인가
*
눈 내리는 밤 /서지월
눈이 내리고 있어
그대는 돌아누워 보이지 않지만
옛날의 그 눈이
지금은 새로 찾아온 하늘 위에
눈이 내리는 것 보면
눈이 내리는 것 보면
마음이 아픈 거야
마음이 슬픈 거야,
내 마음의 골짜기 찾아온 꽃사슴
돌돌 이불 말아 가버린 것처럼
그러나 눈이 내리고 있어
싸늘한 등 떠밀어제끼는
설악의 눈, 알프스의 눈,
눈, 눈, 눈,……
눈이 내리고 있어
정말이지 어제의 너와 나
오늘이 있기까지
그러나 돌아누운 그대 편히 잠들리
*
우중(雨中)에 서서 /서지월
사랑하던 사람이여
비가 내리네
어제는 날이 흐리더니만
오늘 비가 오네
가슴을 적시던 비가
이제는, 내 마음 동맥의 강물을 적시고 있네
사랑하던 사람이여
내가 그대의 눈물이라면
그대가 나의 눈물이라면
이 비 맞으면
나는 우두커니 서 있어도 좋아라.
오가는 사람들은 비를 피하고
어깨 나란히 우산 속을 걸어가지만
나는 호을로 스스러운 길목에서
이 비를 맞고 섰네
*
달밤 /서지월
내 사랑 달밤에 치자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치자꽃 꽃그늘에 밤새도 따라 울었습니다
온다던 그대 발자국 소리 십리 안에 들립니다
먼 강물소리 손금따라 흐르는 밤
운명의 나뭇가지도 동창으로 벋친 밤
뜨락엔 어제 내린 찬 빗물 고여 환환 밤
달아 달아 불러봐도 더 높이만 치솟아,
잠든 바람은 어느 풀밭에 가 멎었는지
온다던 그대 발자국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
낙엽 /서지월
그런대로 한 세상 살으시라는
당신의 말씀 잊고 뒷문 밖에 나갔더니
우박처럼 쏟아지는 추억 한 장 두 장……
당신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추억 열 장, 스무 장,…………
셀 수가 없네
*
비릿한 꿈 하나 /서지월
이대로 내가 돌이 된다면
너는 알까?
싸늘한 돌담에 기대어 서서
민들레꽃 피기를 기둘리는 마음
봄은 가고 또 오건만
산딸기 향기로 눈이 내리면
너를 부르며 손짓하던 뜨거운 海溢처럼
여기, 비릿한 꿈 하나 심어두고 가리라
*
새벽 물소리 /서지월
새벽녘이면 당신이 두고 간
흰 손수건의 물살 부서지는 소리 들립니다
간밤 내리던 소낙비에 흠뻑 젖은
함박꽃같이 부풀어 올라서
당신이 깔아놓은 풀밭 쓸어내리며
이제는 아무도 어루만질 수 없는
새벽 물소리만 차고 쓸쓸하게 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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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으면 되는 시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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