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덕
권선옥
살다 보면
옆구리가 가려울 때가 있다
진디가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피를 빠는 때가 있다
꼬리가 빠지게 내둘러도
닿지 않는 데가 있다
피가 나도록 박박 긁고 싶은 때가 있었다
소도 어덕이 있어야 비빈다,
는 어머니 말씀.
생각난다
*어덕: ‘언덕’의 충청도 말
*시작노트
봄이 왔는데 석류나무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수선은 새싹이 돋고, 매화는 벌써 꽃망울을 부풀렸는데. 아랑곳하지 않는 속뜻을 알지 못하겠다. 해마다 그랬었다. 그래도 가을이 되면 주먹만 한 석류를 가지가 휘어지게 매달 줄은 어찌 안다. 석류 알이 굵어지면 또 혼자서 앞섶을 열어 눈부신 속살을 드러낸다.
말도 웃음도 헤프게 함부로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는 것이 다 그렇지 않겠느냐고 자위하면서 잠깐씩 안도하지만 아무래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자잘한 욕망을 쓸어내야 하는데 고인 물을 바가지로 퍼내듯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설령 물을 다 퍼낸다더라도 눅눅한 기운 없이 뽀송뽀송 마르려면 얼마나 걸릴지. 아득하다.
권선옥
1976년 『현대시학』 추천. 시집 『떠도는 김시습』, 『감옥의 자유』, 『허물을 벗다』, 『밥풀 하나』등. 시선집 『별은 밤에 자란다』. 수필집 『아름다운 식탁』, 신석초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