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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의 기적
열왕기상 17:13-16 2024/06/16 성령강림 후 제4주
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7: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7: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주제는 기적입니다.
병원에서 포기한 사람이 다시 건강을 되찾아 멀쩡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바다나 광야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살아 돌아온다면 그 역시 우리는 주저함 없이 '기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스포츠에서 이미 승패가 결정이 났다는 여론을 뒤집고 무명의 선수가 승리를 따냈다면 우리는 그것도 ‘기적’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것입니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비일상적인 경험들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기적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주제이자 핵심이지요.
하지만 ‘기적’이 일상적인 일이 아닌 만큼
‘기적’을 이야기 할 때 우리가 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기적들(마가복음의 경우 70%가 기적이야기)을 이야기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은 기적의 주체가 누구인지, 왜 기적을 일으키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기적의 주체입니다.
기적의 주체 누구입니까?
기적의 주체는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기적의 결과는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야합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반면 사람이 보기에 좋은 마술, 그 마술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사람을 속이는 마술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유리 겔라:숟가락마술/ 신사도운동 알파코스: 금가루 금이빨사역)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기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둘째 하나님은 왜 기적을 베푸시는 것일까요?
앞서 잠시 설명을 드렸듯이 기적 그 자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곧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꽃 안식일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기적을 더 앞세우셨던 것입니다.
눅6: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6: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6: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6: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따라서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생명을 살리는 기적들)을 묵상할 때 꼭 기억해야할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신 분이신지
②하나님이 얼마나 영원하신 분이신지
③그리고 그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아끼시고 사랑하시는지를 깊이 묵상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기적들을 하나님의 자기 증거 즉 표적(세메이온)으로 아주 명확하게 바로 잡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기적들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나타내는 표적이자, 하나님의 영원성을 나타내는 표적이자, 하나님의 성품 곧 하나님의 자비와 의를 나타내는 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시는 구원의 표적, 생명의 표적이지요.
따라서 성경의 모든 기적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내는 치유와 회복이 그 주제가 됩니다. 하지만 교만하고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시험하지요. 그렇게 자신들이 좋아할 만한 마술을 구합니다.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들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마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미 예수님은 여러 번에 걸쳐 하늘의 표적, 구원의 표적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①나병환자의 치유(8:1-5)
②가버나움 백부장하인의 중풍병 치유(8:13)
③베드로 장모 열병의 치유(8:14-17)
④풍랑을 잔잔케 하심으로 제자들을 구원하심(8:23-27)
⑤귀신들린 두 가다라 사람을 고침(8:28-34)
⑥침상에 누인 중풍병자의 치유(9:1-8)
⑦맹인 둘과 말 못하는 사람 하나의 치유(9:27-34)
⑧손 마른 사람의 치유(12:9-14)
이 8가지의 기적들은 하나님의 구원(생명을 살리는)역사를 입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표적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하고 악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흥미를 살만한 또 다른 표적들로 그리스도를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랑, 그 구원의 역사를 보고도 믿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역정을 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선지자 요나의 표적’ 과연 그 표적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하나는 장차 나타날 표적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몸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가 얼마나 전능하신분이신지,
그리스도가 얼마나 영원하신분이신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또 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의 역사입니다.
니느웨 곧 우리처럼 율법이 없는 이방 사람들의 회개입니다.
마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그러니까 마태가 전한 복음서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회개하는 일보다 더 큰 하나님의 표적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멀리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영원하신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신지를 기적의 체험을 통하여 깊이 알아가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르밧의 기적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르밧’이라는 동네가 속한 지방은 시돈입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고장 시돈(아합과 이세벨)이지요.
그 시돈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속한 사람 엘리야를 보내시면서 이렇게 명하십니다.
왕상17: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시돈
이 지명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 과부에 집에 들어가서 그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람답게 엘리야가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사람 엘리야가 시돈 사르밧 성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마침 땔감을 줍고 있던 한 과부를 만난 엘리야가 마실 물 한 그릇을 부탁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지친 나그네에게 물 한 모금은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마실 물 한 그릇을 부탁하는 것 얼마든지 이해되고 용납되는 일입니다.
그런데요.
물을 가지러 가는 여인을 다시 불러 세우더니 정말 염치없는 부탁을 합니다. 물과 함께 자신이 먹을 만한 음식을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그 시대의 의무이자 문화였기에 어쩌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사실 여인 입장에서는 좀 황당한 요구였습니다.
당황한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낯선 나그네이자 이스라엘 사람인 엘리야에게 자기 처지를 설명합니다.
왕상17: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그런데도 엘리야가 17장 9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만 믿고 이렇게 말합니다.
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7: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렇데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른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진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목격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왕상17: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저는 이 기적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상의 도시 시돈
시돈의 작은 마을 사르밧
그 작은 마을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 과부
그 과부 집에게까지 하나님의 기적,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미쳤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어떠하시겠는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나에게는 아예 기적이 없다.’
정말 기적이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평점한 일상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자존심이 센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 것도 기적이구요
욕심꾸러기인 내가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은 것도 기적이구요
내 생각만 고집하는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르게 된 것도 기적이구요. 일용한 양식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도 기적이구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를 용서하셨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 교제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첫째 시돈 사르밧 과부에게까지 찾아오셔서 베푼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도 기적같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둘째 사르밧 과부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희망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기적의 도구가 되었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마지막 희망을 기적의 도구로 쓰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셋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 우리 안에서 마르는 법이 없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마칩니다.
90세를 훌쩍 넘긴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내 주소가 어떻게 되냐고? 몰라’
‘어제 어떤 옷을 입으셨어요?’
‘몰라’
‘오늘 점심은 뭐 드셨어요?’
‘음식’ (멋쩍게 웃으심)
‘할머니 린다(딸)가 누구죠?’
‘린다? 몰라’
‘할머니 폴(아들)은 누군지 아세요?’
‘폴? 몰라’
할머니 그럼 예수님은 누구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아주 또렷하게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날 구원하신 분이야’
‘그 분은 내 마음속에 계서’
‘날 집으로 데려가 주실거야’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는 기적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모해야할 진정한 기적 아닐까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